-<원라이너> 23화.
"141쪽에 오타 있더라."
책을 읽어보시고 아버지가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엥? 설마?"
아버지가 뭔가 맞춤법을 잘못 아시고 하시는 말씀일 거라 생각하고 141쪽을 찾았는데, 아뿔싸! 141쪽 셋째 줄에 '와서'라고 써야 할 글이 '와고'라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해할 수 없는 실수였다.
오타를 잡아내신 아버지는 84세다.
눈이 시리도록 들여다보며 수없이 퇴고를 해서 다른 건 몰라도 오타만큼은 없을 거라고 자부했는데, 84세 아버지 매의 눈에 딱! 포착되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다정하거나 편안한 느낌이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 기억에도 아빠라고 불러본 기억이 없고, 존댓말을 썼다. 늘 바쁘시고 엄격하고 불편하고 무서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려운 말은 엄마에게 주로 했고, 아버지와는 정서적인 교감이 잘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릴 적에 동생이 교통사고가 나서 발목이 부러졌고, 큰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다. 아침에 담당 의사 선생님과 레지던트들이 회진을 도는데 동생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문제가 있는 듯이 소곤거리며 오래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고 잘 붙고 있다고 알려주었다고 했다. 아비 된 사람의 피의 감각이었을까? 아버지는 의사들 몰래 엑스레이 사진을 훔쳐서 다른 잘하는 정형외과 병원에 가져다 보여주었고, 그 병원 원장이 말하기를 '조각난 뼈들이 잘 못 붙어서 이대로 굳으면 바로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했다. 당장 병원을 옮겨서 재수술을 받았고, 동생은 오랜 재활의 시간을 거쳐서 아무런 문제 없이 보행의 자유를 획득했다.
쉰이 넘은 언니와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폭풍눈물을 흘렸다. 쉽사리 그쳐지지 않는 긴 눈물이었다. 그 눈물의 실체를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 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존경이었다. 한때 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을 참 많이 욕했다. 이해가 안 간다며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나 동료, 지인들과 흥분해 가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열이 나도록 흉보고 욕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좀 풀린다고 생각했지만 임시방편이고, 결국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참 많이 낭비한 셈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유용하고,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열릴 때 나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되고, 내가 더 확장되고, 마침내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뭔가 차갑고 늘 바쁘고 살가운 느낌이 없어서 불편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엄마같이 푸근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성향이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대로 기능하면서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천사가 있는가 하면, 정신을 차리도록 날개로 내려치는 천사도 있다. 모두 다 나를 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