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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하나의 문

-<퇴근길 도서관> 6화.

by 오렌




도서관에서 하는 일이란 보통 책을 읽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책을 읽는 즐거움 보다 내가 더 누리는 것은 어쩌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기분,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 내가, 있다!




어제는 퇴근길이 아닌, 휴일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노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므로 저녁과 밤의 도서관뿐 아니라, 아침과 오후의 도서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한다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존재하고자 했고, 이것은 하나의 진지한 놀이, 즐거운 퍼포먼스처럼 여겨졌다.



지금, 여기, 내가, 있다!




도서관 앞 커피 가게에서 아메리카노를 사서 도서관 옆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올랐다. 피윗 피윗~! 귀여운 새소리 들리는 벤치에 앉아 '보르헤스 세계문학 컬렉션' 허버트 조지 웰스의 <마술 가게> 중 '벽 안의 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읽었다기 보다 나에게 들려주었다가 적합한 표현일 것 같다.) 내 첫 번째 책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에서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해서 흐지부지 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 "이런 식"으로 쓰면 되었겠구나! 회한과 발견의 기쁨이 동시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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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라고 느끼게 한 문장 몇 개를 옮겨 적어본다.


그 기억들은 내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그게 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건 말로는 설명 불가능한 경험일지도 몰랐다.

"난 말이야, 뭔가에 사로잡혀 있다네. 무언가로부터 나온 빛에 갇혔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가슴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기도......"

그것은 모든 세속적인 흥미와 관심거리들을 지루하고 공허하고 허무하게 느끼도록 만든, 아름답고 행복이 충만한 어떤 추억과 관련된 것이었다.

웨스트 켄징턴에 갑자기 천국이 들어섰다면 대체 누가 믿겠나. 비로소 '집'이라는 곳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네.



인용한 문장 그대로, 뭔가에 사로잡힌 듯한, 무언가로부터 나온 빛에 갇힌 듯한,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가슴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은, 모든 세속적인 흥미와 관심거리들을 지루하고 공허하고 허무하게 느끼도록 만든, 아름답고 행복이 충만한 어떤 추억, 현실에 실재하는, 일상 속의 천국, 비로소 '집'이라는 곳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도서관은 나에게 그런 곳이라고,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일치하는 순간의 희열을 맛보았다.



지금, 여기,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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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네모난 것들, 책은 작고 네모난 모양의 문과 닮았다.

한 권의 책을 펼치는 건,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같은 설렘을 준다. 어떤 문은 화려한 디자인에 이끌려 호기롭게 열었다가 슬며시 다시 닫기도 하고, 어떤 문은 소박하여 별 기대 없이 열었다가 뜻밖의 아늑한 공간에서 잠깐의 휴식과 위안을 얻기도 하고, 어떤 문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빠져들어 또 다른 문으로 이어지고 이어져 출구를 못 찾게 되기도 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서관을 찾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해준 사람이 있다.


“사랑의 기쁨은 한 권의 책과 만나는 기쁨이다. 그 책을 읽는 독서의 기쁨이다. 사랑하는 한 권의 책이 없었다면,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부호가 없었다면, 나는 내 욕망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 내 안에 있었지만 있는 줄 몰랐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토록 찾았지만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내 욕망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고독의 흔적들이 욕망의 기쁨으로 울리는 내 육체의 초인종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롤랑 바르트



지금, 여기, 내가, 있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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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나서면서 들은 음악


[Official Audio] 박소은 (Park Soeun) - 너는 나의 문학 (You Are My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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