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도서관> 7화.
인용문
몸에서 맥주와 오물 냄새가 나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줄 책들.
나의 사랑하는 책,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16페이지 아래쪽에 연둣빛 형광펜으로 마킹해 놓은 문장으로, 읽을 때마다 힘이 나는 마력을 지녔다.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간듯한 순간에도 새로운 힘이 나게 하는 작가를, 책을, 페이지를, 문장을, 단어를 알고 있다는 은밀한 기쁨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지금의 상황보더 더 나아지기를, 더 나은 곳으로 건너가기를 바라고 있지만, 낮에는 호텔에서 일하고, 밤에는 도서관에서 노는 이 시절이 참 좋았다고 기억될 것이다. 내 가방 속에 책이 들어있는 한. 가느다란 실로 엮인 꿈일지라도.
공간
도서관 사물함을 신청했고, 1층에 있는 락커 5번을 배당받았다.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듯 하루는 바닥에 깔 천을, 다음 날은 도서관에서 사용할 텀블러를, 휴대용 자판을, 충전기를, 비타민을 가져다 놓았다. 오래전 신혼집에서 말이다. 커다란 침대가 있는 안방과 근사한 서재도 마련했지만 나만의 공간이 없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식탁과 벽이 붙은 공간에 스탠드를 놓고 책 몇 권과 메모를 할 수 있는 탁상 달력과 연필꽂이를 놓았다. 그게 점점 늘어나서 옆에 작은 책장을 두게 되었고, 작은 책장 옆에 또 다른 책장들이 들어섰던 기억... 생각해 보면 언제 어디서라도 이와 비슷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생긴 정육면체 철제 공간에 나는 또다시 대출한 책들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고, 이 책들이 지나간 흔적이 나의 뇌에, 마음에 중첩된 어떤 무늬를 만들게 될 것이다.
반납과 대출
반납한 책 3권
뤽 다르덴 에세이 <인간의 일에 대하여>
우연히 집어 들게 된 눈에 잘 띄지 않는 옅은 회색의 얇은 이 책은 2011년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자전거 탄 소년>을 제작한 다르덴 형제의 뤽 다르덴이 주 주인공 시릴과 사만다에 대해 생각하며 2007년 5월부터 틈틈이 적은 글의 모음집이었고, 역시 오래전 우연히 보게 된 <자전거 탄 소년>의 좋은 여운이 떠올라 읽게 되었다. 영화 속에 배경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다르덴 형제가 시릴을 위로하기 위해 고심 끝에 삽입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도 함께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엄숙한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조르주 페렉, <보통 이하의 것들>
매일 일어나고 날마다 되돌아오는 것, 흔한 것, 일상적인 것, 뻔한 것, 평범한 것, 보통의 것, 보통 이하의 것, 잡음 같은 것, 익숙한 것,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묘사하면서 시간의 횡포에 저항하고, 유희적 정신을 일깨우며, 삶의 파편들을 붙들어 고정시킨다. 무엇보다 일상적 글쓰기의 힘을 다시금 환기시켜 준다.
<빨간책>
최근에 마친 내 연재 브런치 <RED : 빨강에 관한 패치워크>를 떠올리게 한 온통 빨강색 표지의 <빨간책>.
작가소개, 인상 깊었던 문장 등을 성실히 쓰고 싶을 만큼 불꽃을 튀기지 못한 책이었다. 톡톡 튀는 감각적이고 생동하는 문장들이 언젠가의 내가 쓰고 싶었거나 흉내 내었거나 썼던 스타일이긴 했지만, 지금의 내 에너지는 달라져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RED : 빨강에 관한 패치워크>도 그랬다. 내 삶에서 인상적이었던 빨강에 관해 참 쓰고 싶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연재였는데, 뭔가 철이 지난 과일처럼 그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빨강은 이미 숙성된 와인빛으로, 석양의 주홍빛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사랑이 타이밍이라고 하지만, 글도 타이밍이란 걸 씁쓸하게 가르쳐준 빨강!
대출한 책 5권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 그림자로 물든 버지니아의 13작품 속 문장들>
이 책을 대출한 건
"당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한,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 문장을 읽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로 돌아가다 :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리고 어머니에 관하여>
#피아노 #바흐 #골드베르크 #어머니
읽지 않을 수가 없는 키워드들의 나열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
언제 알았다고 반가운 이름이 된 얀 마텔!
그에게서 101통이나 되는 편지가 왔다고?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 반다나 싱 소설집>
오래전에 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 책인데, 흥미로왔던 기억이 나서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SF소설을 쓰고 싶었고, 레퍼런스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SF소설은 쓰지 않고, SF영화만 주구장창 보았다.
<젊은 남자>
젊은 남자! 제목만으로도 호기심 천국! 늙어가는 여자로서 젊은 남자를 동경해 마지않는다. 생명력, 에너지, 열정, 가능성, 내 안에 영원히 살아있는 아니무스
♪ 밤의 도서관을 나서며 들은 음악
Seong-Jin Cho –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second st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