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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공대생 Aug 11. 2019

엇박자 D

김중혁 단편소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틀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획일화된 경계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틀을 깨고 나오는 행위들에 대해선 거부감을 느낀다. 그 행위가 결코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이다. 틀을 깨는 이들은 혼자서 할 때는 얼추 맞을 거라 생각해도 단체로 행동할 때 틀을 깨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기 일쑤다. 아예 그 행위 속에 맞추지 않도록 그 사람을 매도하고 쫓아내거나, 어떻게든 맞춰놓기 위해 그 사람을 매도하며 교정하는 것이 현재 이 세상의 모습이다. 허나 틀을 깨는 행위가 경계 내에선 조화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가지더라도, 경계 바깥에 나왔을 때마저 조화를 이루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세상을 너무 비좁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태어난 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가지게 된 모든 특성들은 절대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모든 것들은 제각기 비슷한 짝끼리 모이게 되면 하나의 거대한 가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엇박자 D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아니다. 한 인물을 가칭하는 단어로, 학창 시절 박치이자 음치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진지하다는 이유로 생긴 한 인물의 별명이다. 축제 때 부를 합창곡을 연습할 때 엇박자 D의 목소리가 들리면 음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로 박자가 제멋대로 변했다. 음악 선생은 D에게 축제 당일 립싱크를 당부했으나 D는 2절이 시작되려고 할 때 반박자 빨리 부르게 되고, 결국 공연은 엉망이 된다. 이 사건 이후 D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원에 다니면서 음치들을 찾아 무반주로 부르는 노래들을 녹음했고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공연기획을 한다. 그리고 그는 고등학교 때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했던 친구들을 초대했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관객들은 앙코르를 외쳤다. 그러자, 모든 조명이 꺼지고 아무런 반주 없이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십 년 전 축제 때 불렀던 그 노래였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 사람으로, 그렇게 마침내 스물두 명의 목소리가 합창을 이루게 된다. 음도 맞지 않고 박자도 제각각이지만 묘하게 어울리고 어둠 속에서 들리는 노래는 아름다웠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은 이십 년 전과는 달리 립싱크로 음치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입을 벙긋거렸다.


 틀 바깥의 행위를 계속 고수하고, 또 다른 틀 바깥의 행위들과 서로 상생하면서, 이 거대한 파도는 바깥으로부터 우리가 정해놓은 틀을 강타하게 된다. 물론, 그저 전부 모여 외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엇박자 D가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들을 심도 있게 배치한 것처럼, 그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 아름답고 조화롭게 살리느냐에 따라 파도의 진동수는 공명을 일으킬 수도 있고, 불협화음을 이뤄 결국 0으로 수렴할 수 있다. 사실 엇박자 D의 마지막 작품도 이 사실을 얼추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22명의 음치들이 부르는 20년 전 바로 그 노래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치들의 목소리로만 믹싱한 거니까 즐겁게 감상해줘.”


 믹싱. 듣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이 속에는 굉장히 깊은 고뇌와 노력이 담겨 있다. 엇박자 D 역시 이 작품을 만들면서 몇 번의 고뇌를 거쳐왔을 것이다. 과연 내가 정말로 사회에 녹아 흐를 수 있는 음치들의 합창을 이뤄낼 수 있을까? 경멸만 받고 마지막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내가 20년 전 합창 공연을 망쳤던 것처럼? 그렇지만 그는 결국 해냈다. 그 모든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도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마주했고, 그들로부터 많은 공감과 추억을 공유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치들로부터 힘을 가질 수 있었고, 결국 끝을 창대하게 이뤄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것들은 제각기 비슷한 짝끼리 모이게 되면 하나의 거대한 가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 연대로부터의 보이지 않는 힘을 믿어왔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을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향을 고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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