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라는 게 꿈으로 나타난다면
며칠 전 꿈을 꾸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머그컵에 드립퍼를 얹고, 여과지를 깔아 그 안에 원두를 담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었다. 어쩐 일인지 갈색의 커피는 컵에 담기는 게 아니라 스며들었다. 도자기 소재의 컵은 마치 종이로 만든 컵처럼 커피가 스며들더니 손잡이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닌가.
꿈속에서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재빨리 다른 컵을 꺼내 커피를 담았는데 또다시 물에 불어난 종이죽처럼 흐물거리더니 컵의 절반이 찢어지며 떨어져 나갔다.
이런 괴이한 꿈을 꾸다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입에서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네.”
함께 잠에서 깬 남편이 무슨 꿈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꿈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모든 꿈을 긍정적으로 풀이해주는 굉장한 능력이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편의 ‘긍정 꿈 풀이 시간’이 이어졌다.
“여보, 그건 내 생각에 말이지. 그동안의 안 좋은 일이 찢어진 컵처럼 사라지고 좋은 일이 생긴다는 꿈같아. 컵이 두 개나 망가졌다고 했지? 나쁜 일이 두 개나 없어지나 보네.”
남편의 긍정적인 꿈 해석을 들었음에도 나는 오전 내내 기분이 찝찝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쁜 해석만 가득하다. 화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말이 또 새어 나온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구수한 ‘뒤숭숭’이란 말을 쓰게 된 걸까. 사실 나는 꿈이나 미신을 믿지 않는다. 그런 해석은 남편이 하는 것처럼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모두 달라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가끔 엄마나 어른들이 전날 밤 나쁜 꿈을 꾸고 와서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라고 걱정을 하면 “꿈은 그냥 꿈이다”라고 맞받아치곤 했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가 있어서인지 꿈이든 뭐든 겁날 게 없었는데, 삼십 대의 중반에서 조금 빗겨 난 나이가 돼서일까. 나는 불안해하던 어른들의 얼굴이 이해 가고, ‘뒤숭숭’이라는 마음에 안 드는 그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작년에는 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꿈에서 남편이 바람이 피웠다. 남편과 낯선 여자가 둘이 사랑하게 됐으니 나를 떠난다고 선포하고 나와 싸움을 벌이는 꿈이었다. 일어나 보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축축했고, 가위에 눌렸다 깬 것처럼 머리가 혼곤했다.
옆에서는 남편이 쿨쿨 자고 있었다. 왠지 얄미운 얼굴이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나를 두고 바람을 피우다니. 너무 미워져서 남편을 꼬집었다. 자던 중에 꼬집힌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자는데 왜 꼬집고 그래!”
“여보가 바람 폈잖아.”
“그게 무슨 이상한 소리야? 잘 자다가 왜 그래.”
“여보가 꿈에서 나 두고 다른 여자 만났어.”
그때의 허탈한 남편의 얼굴이란.
“내가 바람피운 것도 아니고 여보 꿈에서 그런 거잖아. 그것 때문에 자던 사람을 꼬집냐?”
“그래, 나도 알아. 꿈에서 나온 거니까 여보 잘못은 아닌데. 기분이 나쁜 걸 어떡해!”
“여보 꿈을 내가 어떡하라고!”
맞는 말이다. 내 꿈인데 남편에게 어떡하라고. 그럼에도 나는 잘한 것도 없으면서 기분이 나쁘다고 바락바락 성질을 부렸다. 새벽이니 다시 자자고 남편이 나를 토닥여 재웠다.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다시 옆의 남편을 봤다. 한숨 더 자고 일어났는데도 남편이 다른 여자랑 바람피웠던 꿈이 지워지지 않았다. 꿈은 꿈일 뿐인데 감정은 왜 이렇게 제어가 안 될까? 나도 모르게 옆의 남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남편도 알람 소리에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다 노려보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왜 째려보고 그래! 귀신 같잖아!”
아침식사를 차려 식탁에 마주 앉고도 계속 분이 풀리지 않아 앞에 앉은 남편을 째려봤다. 이날도 남편은 긍정 꿈 풀이를 했다.
“여보가 날 너무 좋아해서 그런 꿈을 꾼 거야. 너무 좋으니까 뺏기기 싫어서 그런 거지.”
그러면서 한 술 더 떠 나를 놀렸다.
“내가 얼마나 좋으면 꿈에서 집착을 하고 그래. 내가 그렇게 좋아?”
얄밉지만 꿈에서 일어난 일로 계속 노려봐야 남는 것도 없었다. 내 눈만 아플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남편이 바람피우는 꿈을 꾸진 않았지만 몇 가지 악몽을 꾸기도 했고, 고민거리가 있고 안 좋은 일을 겪으면 항상 그날 밤에는 ‘뒤숭숭’한 꿈을 꾸곤 했다.
꿈은 무의식을 반영한다는데, 스트레스가 많은 날 내 무의식은 꿈으로 어떤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다. 지금 네가 이렇게 힘들고, 괴롭다고. 어떤 영상을 짜 올려 잠든 내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시어머니와 대화 중 꿈 이야기가 나왔다. 이십 년 전쯤 시어머니의 건강이 매우 안 좋을 때의 꿈이라고 했다.
“그때 내가 정말 많이 아플 때였거든. 병원에서도 비관적인 이야기만 하고. 집에 와서 보면 어린 아들 둘이나 있는데, 내가 이렇게 아프면 우리 아이들은 어쩌나 걱정이 많은 시기였어. 근데 어느 날 내가 꿈을 꿨단다.”
“어떤 꿈이요?”
“네가 이런 건 안 믿을 수도 있겠지만. 꿈에서 내가 누워있는데 하얀 깃털 같은 게 내 몸을 천천히 쓰다듬는 거야. 꿈속인데도 마음이 되게 편해지고 말이지. 그 꿈을 꾸고 난 다음날은 정말 아픈 게 씻은 듯이 나은 것처럼 몸이 가벼웠어.
그리고 며칠 있다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비관적이었던 수치가 모두 낮아지고 정상이 된 거야. 병원에서도 기적이라고 했어.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꿈이 좋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
네, 하고 대답했지만 나는 꿈으로 인해 병이 나았을 거란 미신적 속성은 여전히 부정하고 있었다. 다만 그 시절 시어머니가 간절히 바라던 것, 건강을 빨리 회복해 자녀들을 온전히 키우고 싶다는 확고한 소망이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분명 감정의 영역이고, 감정은 무의식과 맞닿아있으니 그런 꿈을 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닿았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도 시어머니처럼 간절히 바라는 게 있고 그것을 꿈으로 꾼 다음 이룰 수 있다면 말이다. 꿈에서 지금보다 5kg을 감량한 나를 만나고 싶다. 내가 요즘 정말 간절히 바라는 5kg 감량을 꿈에서 이룬 다음날 아침,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고,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정말 꿈처럼 몸무게가 빠져있다면! 아, 생각만 해도 정말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