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손원평

서른의 반격, 을 읽었습니다.

by 귀리밥

전작 <아몬드>는 정말 재미있어서, 책 추천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엄청 떠들고 다닌 작품이었다. 그 흡입력이란. 어떻게 첫 장부터 사람을 이렇게 마구 사로잡을 수 있나 감탄했던 기억이다. 그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려던 차에 도서관에서 <서른이 반격>을 발견했다. 제목만 보면 조금 뻔할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빌려왔다. 그리고 간밤에 나는 첫 장부터 또 마구 사로잡히는 바람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 글을 잘 쓰고 그래'하며 화들짝 놀랐다.


내가 아는 건 그 정도다. 그전에 벌어진 피, 광장, 투쟁의 흔적은 사진과 다큐에서나 본 겪지 못한 옛날 얘기일 뿐이다. 세상은 몇 발자국쯤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 몇 발자국이 전부인 것 같다. 여전히 부당함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고 당연히 보통 사람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대신 대세에 머리를 조아려 수긍하면서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나는 남들과 달리 몹시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제발 나를 좀 주목해달라고 온몸으로 외쳐야 하는 세상이 왔다. 나는 하필이면 이 시대에 청춘의 끝자락을 맞이한 숱한 여럿 중 하나이다. 8p.


나 역시 그랬다. 83년생이었던 나는 광주항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맥락을 알았고 그 일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음에 소름이 끼쳤다. 사진과 기록, 영화로만 접하던 민주화의 역사가 떠올랐다.

이후 어느 시절이 다가오진 나는 올림픽을 바라봤고, 굴렁쇠 어린이를 부럽게 쳐다봤고, 정치에 일절 관심 없는 나의 부모님이 투표 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랬던 1988년.


그때 아마 민주화의 소용돌이에 빗겨있는 사람이었다면 그저 호황이 던져주는 즐거움을 낚시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며, 우리 자식들은 뭐라도 배워 잘 살지 않겠나 막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식 세대들은 별로 잘 살지 못하게 됐다. 다들 뭐라도 배웠으니까, 경쟁은 심해졌는데 윗선에서 손에 잡은 것을 절대 놓지 않으니 말이다. 후손의 황금시대를 예감했던 어른들이 우리에게 "대학 나오면 다 잘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그건 상처다.


88년에 태어난 주인공이 살아온 시대와 경험과 현재를 서술하는 동안 나도 많은 것을 회상하게 됐다. 이를테면 촛불집회의 기억. 그 대형집회가 생기게끔 했던 장본인이 구속되서 개운(?)한 요즘, 다시금 회상하고 또 우리는 그 다수 중의 하나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먼발치에서 바라보게 된다.


광장의 맞은편 주택가 안쪽의 담장에 올라섰다. 조용하고 어두웠다. 멀리서 함성과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촛불이 공기를 태우고 난 향긋한 냄새가 그곳까지 바람을 타고 왔다. 그때 나 홀로 결심했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있을 때 혼자였던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특별히 그 결심에 무슨 이름을 붙여주고 싶진 않다. 집단의 기억이 아니라 온전히 내 가슴에만 새겨진 외롭고 아름다운 그림 조각이다. 거기서 나는 조금 슬픈 예감을 했다. 모두가 오늘을 잊어버리고 말 거라고. 지금의 열기는 곧 사그라질 불꽃같은 거라고 말이다. 90p.


마지막 문장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잊어버리고 말 거라고. 그래서 다시 처음에 메모한 구절로 돌아간다. 그 시절의 시위에 참여하고 민주화를 간절히 바라던 어르신들은 잊어버리고 말았을까?


이렇게 적어놓으니 책이 다소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전혀 아니다. 88년에 태어나 만년 취준 상태인 주인공과 조금씩 '낙오'한 이들이 소소하게 복수하는, 복수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그들만의 놀이를 하는 이야기니 말이다.


나는 주인공보다 아주 조금 먼저 태어나 IMF를 지독하게 겪었는데, 오히려 나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일수록 취업난이 심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언젠가 고교시절 담임선생님이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게 아니야. 독하게 하는 거야!"라고 하셨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던 자신이 종종 불쌍해졌다. 이제야 나는 "독하게 살아야 뭐라도 된다는 현실이 슬픈 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왜 독해져야 하는지 이유가 불분명했음에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던 시간, 그 에너지가 불쌍하다.


그래서 이젠 편안해지고 싶은 것뿐이에요. 꿈같은 거, 하고 싶은 거 따위 생각할 필요 없이 남한테 치이지나 말고 하루하루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어요. 내가 제일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말이 뭔 줄 알아요? 치열하다는 말. 치열하게 살라는 말. 치열한 거 지겨워요. 치열하게 살았어요, 나름. 그런데도 이렇다구요. 치열했는데도 이 나이가 되도록 이래요. 그러면 이제 좀 그만 치열해도 되잖아요. 169p.



어느덧 이야기는 흘러 그들의 놀이는 엉뚱한 방식으로 끝난다. 그래도 놀이 과정이 꽤 시원했다. 잘못됐다고, 내가 지금 화가 난다고, 억울하다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빛깔은 개선되는 거라고 느꼈다.


놀이가 끝난 후 인물들은 각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간다. 먹방을 찍던 아저씨는 우동집을 차리고, 공모전에서 상처받은 작가는 다시 글을 쓰고, 서른 살까지 인턴생활과 짤막한 정규직을 맛봤던 주인공은 진정한 정규직을, 그리고 놀이를 주도했던 누군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운다.


무거운 마음을 실어 터벅터벅 걷는데 갑자기 발밑에 무지개가 떠서 걸음을 멈췄다. 어디선가 흘러온 기름이 작은 물웅덩이에 고여 찬란한 무지개 띠를 만들어낸 거였다. 그런데 모양이며 색이 어찌나 선명한지, 진짜 무지개보다 더 진짜 같았다. 그 묘한 아름다움이 생경해서 기름띠가 물 위에 자리 잡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꼭 비 온 뒤 청명한 하늘에 뜨는 무지개만 아름다운 건 아니구나. 아무런 사건도 등장인물도 없는 그날의 기름 무지개가 내 인생에서 꼽는 몇 장면 중 하나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232p.


한차례 열중하던 게 끝나면 늘 이렇게 늦여름처럼 고요해진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기름 무지개를 표현하는 장면이 눈앞에 생생했다. 이 소설의 첫 제목은 <보통 사람>이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 그 어려운 이름을 달성하는 그들의 삶이 실제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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