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이향규

후아유,를 읽었습니다.

by 귀리밥
넓은 물을 직선거리로 한달음에 건너는 부부가 있을까? 살다 보면 같은 배에 타고 있는 게 죽기보다 싫은 순간도 오고, 노 젓는 게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고, 혼자 애쓰느라 배가 뱅뱅 돌기도 하고, 노를 빠뜨리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한다. 어떤 결혼도 누구의 삶도 '전형적'이지 않다. 전형적인 것을 굳이 찾으라면 누구나 늘 행복하지도 늘 불행하지도 않다는 것, 그 정도가 아닐까. 결혼,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으로 시작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남자와 그 여자이기 때문에 만났고, 시작했다. 그리곤 한배에 타고 변화무쌍한 큰 물을 건넌다, 내리기 전까지는. 24p.


저자는 영국 남자와 결혼했다. 이 한 줄만으로도 이 부부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나 역시 몇 살 어린 남자와 결혼했다고 해서 "왜 어린 남자랑 결혼하느냐", "연하 킬러냐", "어린 남자랑 살면 뭐가 좋으냐" 등등 해괴한 소릴 다 듣는 마당에, 외국인이면 오죽하겠냐고.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나는 "그래서 연상이랑 결혼해야만 정상이고 보통이냐"라고 꽥꽥거렸다. 연하 킬러는 무슨. 내가 연하를 죽였니? 그런데 지나고 보면 굳이 그렇게 뾰족하게 말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일들이었다.


사회에서는 '보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기준을 힐끔거리며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 이런 기준 아닐까. 두 살쯤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는 하나 아니면 둘 정도, 둘이라면 두 살 터울, 남들 사는 정도의 평수에 살아야 하고, 남들 타는 만치 차는 뽑아야겠지.


그래서 그렇게 사는 삶이 얼마나 자기 것일까? '전형적'인 삶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 아닐까. 평범과 보통은 흔한 것과는 다르다. 자기 삶이 소중하고, 존재감이 분명하다면 그런 비교와 기준이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할 터다.


이 책의 소개글을 볼 때 소수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소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가르치려는 책은 결코 아니란 생각을 프롤로그에서 만났다.


영국에서는 내가 이주민이 되었다. 비로소 알았다.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봐 달라거나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봐주자고 하기 전에
내 자신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먼저 물었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나를 고유한 존재로 본다면
다른 이도 그런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8p.


소수는 어떻게 다뤄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얼마나 가식적이었나. 개인을 고유한 존재로 인정하면 모든 갈등이 끝이다.


저자는 외국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쓰는 용어로 치자면 다문화 가족이었고, 자녀들은 혼혈이었다. '다문화'라는 이름은 처음 들을 때 그럴싸했다. 혼혈 가족, 이런 노골적인 표현도 아니고. 여러 문화가 존재하는 가족. 하지만 그것조차 내 시선이 공평하지 못했다는 점을 알게 됐다.

KakaoTalk_20180331_171150523.jpg
다문화 가족이라는 이름이 알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문화(多文化)가 이름 그대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상태를 말하고, 문화가 생활양식이나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나는 세상에 다문화 가족이 아닌 가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단문화(單文化) 가정이 있을까? 모든 결혼은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남녀가 만나서 함께 사는 것이므로 문화의 차이는 일반적인 결혼에서도 늘 있는 게 아닐까? 또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들의 언어, 취향, 놀이 방식이 우리 세대하고 다르다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지 않나? 자녀와 문화 차이를 느끼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또 우리 부모님 세대하고는 어떤가? 다들 부모님 세대와 문화적 장벽 없이 순조롭게 대화할 수 있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54p.


내가 주로 이용하는 경의중앙선에 가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이 있다. 그들은 항상 나보다 먼저 타고 있는데, 아마 파주 조금 위쪽에 외국인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 있는 게 아닌가 짐작만 한다.


어쩌다 그들 앞에 서면 이상하게 그들이 나를 쳐다볼 때가 있었다. 훑어보는 건지, 그냥 본 건지. 피부가 나보다 조금 짙어서인지 그들의 눈 흰자가 유난히 도드라졌는데. 나는 그것을 '나를 범죄대상으로 탐색하는 것' 쯤으로 짐작하고 다른 칸으로 옮겨간 적이 많다. 그냥 앞에 서있는 사람을 쳐다본 걸지도, 혹은 반대로 그들이 '이 여자는 한국 사람일까? 무서운 한국 사람 아닐까?'하고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외국인이란 이유로 나 역시 차별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운 나라에서 산다고 해서 불쌍한 존재, 돈만 생긴다면 뭐든 할 존재로 여기고 있던 내 속의 모순된 감정이 책을 읽으며 얼굴을 붉히게 했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리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 때마다 내 자아가 참으로 허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의 자아를 이렇게 약하게 만든 한국 사회를 탓하고 싶었다. 제 이름 없이 일련번호로 불렸던 학창 시절부터 우리는 고유한 '나'로 자랄 수 있게 격려받지 못했다고, 일상의 집단주의는 우리 마음을 전방위에서 구속했다고, 집단 안에서 개인의 이름을 잃어버린 것은 다문화나 탈북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그렇다고. 우리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그렇게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249p.


개인의 자아가 유약했던 걸까. 인간을 경제적 최소 단위로 나누면 '개인'이라고 한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 그 개인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힘이 나약한 나머지 의심하고 비교하며 사는 데 나도 어느 정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수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건강하지 못한 것은 자아와 자존감이 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된 책이었다. 우연히 좋은 책을 만나 기뻤다. 읽는 내내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