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을 읽었습니다.
내일 있을 독서모임의 지정도서다. 지난주 ebook으로 구매해 놓고 출장 가는 기차 안에서 오며 가며 읽었다. 종이책을 좋아하지만 이동이 많은 시기에는 전자책만 한 게 없다.
비행운을 읽던 무렵 내가 탄 기차가 하필이면 무궁화호였다. 말끔한 ktx 속이었으면 좀 덜 다가왔으려나. 책 속 인물들의 불행이 무궁화호가 덜컹거릴 때마다 내게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았다.
비행운이라는 제목에서 대략 내용을 짐작하긴 했다.
비행기가 남긴 비행운이라기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 암울하고 막막해서 아닐 비의 한자를 쓴 '아닌 행운', 행운이 없는 이야기였다.
행운 없는 사람들은 엄청난 불행을 타고난 게 아니라 살다 보니 겪을 수도 있는 당연하고 일상적인 불행을 살고 있었다. 읽는 내내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의 연상을 자주 하게 됐다.
특히 편지글 형식의 '서른'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 우리는 서로 닮아있다고 느꼈다. 어차피 나 정도로 어려운 사람은 수두룩하고, 모두 번듯하게 살 날을 꿈 꾸며 현재를 불태운다. 나는 하얗게 된 얼굴의 아이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재수 시절의 암담한 생활이 떠올랐다.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얼마 전에 어떤 장애인 교사를 만난 적 있는데 그분이 그랬다.
장애를 극복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극복이 안 되기 때문에 장애로 분류하는 거다,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평생 적응해갈뿐이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 속 인물들이 고통스럽고 불행해서 그로 인해 성장을 하고 행복해질 거라 기대할 수 없었다.
지독한 비극을 읽고 나니 나의 아픈 구석들까지 살펴보게 됐다.
이렇게 남의 불행을 혹은 허구의 불행을 읽으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의 외로움이나 불행한 면을 돌보지 못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