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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28. 2019

나의 생일은 어떤 생일?

요즘은 소수로부터 진한 축하를 받는다.

생일이라는 단어는 각자 다르게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생을 시작하는 날, 온갖 축복에 둘러싸여 행복한 날. 누군가에게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 평소보다 외로움이 갑절이 되는 날, 그것도 아니면 더 이상 무미건조할 여분조차 없는 의미 없는 날, 각종 쇼핑몰에서 쿠폰 받는 날, 소수로부터 진한 축하를 받는 날.


30대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꽤 많은 축하를 받았던 기억이다. 생일이 시작되는 밤 12시를 기다렸다. 친구든 애인이든 그날을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누군가가 꼭 있었다. 그저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기다렸다가 축하해주는 관계가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상황이자 자랑거리였다. 밤 12시에 받은 특별한 노래 선물이나 메시지, 선물 따위를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여기저기 자랑하기 바빴다.


생일날은 그 무렵 산 옷 중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속눈썹도 열심히 붙이고 집을 나섰다. 저녁시간이 되면 당연히 친구들과 바글바글 모여 실컷 마시고 떠드는 생일파티를 열었다. 언젠가는 생일파티에서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아 친한 지인 2명이 차를 가져와 선물을 운반해준 적도 있다. 케이크도 잔뜩 받는 바람에 며칠 내내 온 가족이 내가 받아온 케이크를 먹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생일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생일이 항상 좋지만은 않았다. 세상에는 ‘싫은 생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무렵에 어렴풋이 알게 됐다. 새내기들은 대체적으로 예상 못하는 부분인데, 회사에 입사하고 나면 딱히 친분과 애정이 없어도 그들의 ‘생신’을 챙겨야 한다는 게 다소 충격이었다.


생일이란 것은 서로 친근한 사이에서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 그리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날 인 줄만 알았다. 나와 오래 알고 지낸 것도 아니고, 직장 상사의 존재가 내게 기쁠 리가 없지 않나. 그럼에도 그들의 약소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는 것은 부하직원들에게 의무였고,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던 나의 숙제이기도 했다.


난생처음 중년 남성의 옷을 구입해본 것도 직장 상사의 생일 준비 때문이었다. 부하직원들이 각출한 돈을 모아주면 나는 퇴근 후 백화점에 들러 상사의 옷이나 넥타이 따위를 사야 했다. 생일날 아침에는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와 제과점에 들러 케이크를 사서 선물과 함께 들고 출근했다. 생일파티가 예정된 시간이면 음료수와 나무젓가락을 챙겨 작은 생일상도 차려놔야 했다.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생일 축하노래였다. “사랑하는 누구누구님”이라는 노래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끼리 무슨 사랑. 사랑하는 부하 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그렇게 시킬 리가 없잖아?’


자신을 속일 수 없던 나는 “사랑하는 누구누구님”은 조그맣게 “으음하는 으음으음님”하며 얼버무리며 불렀다.

떨떠름하고 어색한 사무실에서의 생일파티는 약 10분 내외로 끝난다. 사실 서로 할 말도 별로 없으니, 굳이 테이블 앞에 불편하게 서서 생일파티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은 모두에게 고역인 것이다. 케이크를 나눠 접시에 담아 각자의 자리로 떠나고, 신입사원인 나는 그 테이블을 치우고 접시 설거지까지 끝내야 생일파티가 마무리됐다.

취직을 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직장 상사의 생일 못지않게 내 생일 역시 떨떠름해졌다. 어느 날부턴가 밤 12시에 울리던 메시지의 수가 줄었다. 직접 만나 건네주던 케이크는 기프티콘으로 바뀌고, 간지럽게 불러주는 생일 축하곡은 온 데 간데 사라졌다. 그저 나와 친구들이 나이를 먹은 거라고 참아내기엔 서글펐다.


가장 슬픈 생일은 친구들이 축하의 몫을 애인에게 떠넘길 때였다.

“생일날 남자 친구랑은 잘 보냈어?”

“남자 친구가 잘해줄 텐데 뭐. 그래서 연락 안 했어.”

“남자 친구한테 좋은 거 받았어?”


이런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슬펐다. 내가 딱히 입을 열지 않아서 모르는 이들이 많았겠지만, 나는 항상 쟁여놓듯 남자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남자 친구가 없는 시절이 많았고, 몇 년씩 짝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주말에 혼자 집에서 웅크린 날도 많았다.


평소보다 외로움이 갑절이 되는 생일 케이스는 바로 나였다. 왜 다들 내게 당연한 것처럼 남자 친구에게 축하를 받으란 식으로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연애라는 게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예비 남자 친구가 대기번호를 받고 기다릴 리도 없는데 말이다. 그럴 땐 철저히 버려졌다는 기분이 들었고, 생일 다음날은 언제나 쓰라렸다.


이런 생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밤 12시의 메시지도, 거창한 파티도, 손발 오그라드는 생일 축하곡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됐다. 기프티콘을 받으면 잊어버리고 소멸되기도 일쑤였다.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더 이상 무미건조할 여분조차 없는 의미 없는 날이 되기를 바랐다. 생일에 아주 무딘 사람이 되길 바라던 나는 여전히 마음속에서 생일을 축하받던 20대의 추억이 반복되길 욕심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삼십 대의 후반으로 달려가는 요즘의 생일은 소수의 인원으로부터 진한 축하를 받는 날로 바뀌었다. 생일로 넘어가는 밤 12시면 남편이 케이크에 초를 켜고 간지러운 노래를 해준다. 내가 초콜릿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번번이 잊어먹는 남편은 몸서리나도록 달디 단 초콜릿 케이크나 과일 케이크를 사 온다.


그래도 케이크 앞에서 노래해주는 남편만큼 내 존재의 탄생을 진하게 축하해주는 사람은 없다. 케이크를 조금 먹고 잠이 들면 아침 일찍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여준다. 평소의 아침상 차리는 것은 내 몫이지만, 생일 아침상은 당당히 받는다. 남편에게 반찬을 만드는 재주는 없어서 내 입맛에 조금 짠 미역국 하나를 끓일 뿐이지만, 아침 일찍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보다 더 맛있는 국은 먹어본 적이 없다.

올해 생일엔 웬일로 예쁜 떡케이크를 주문해놨더라고요. 성장하고 있는 남표니!

남편 외에는 소수의 친구들로부터 메시지를 받는다. 반대의 경우에는 생일 축하를 덜 받아서 외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나는 친구들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그 무렵에 함께 밥이라도 먹으려고 먼저 연락을 하곤 한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거창한 말까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존재하니까 내 친구로 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사실이다.


몇 해 전까지 회사생활을 할 때는 나 역시 상사의 입장이 돼서 어색한 생일 축하를 받았고, 몇 가지 소소한 선물도 받았다. 나이 어린 직원들이 사회에 나와 이런 것까지 챙기게 되는 반복이 싫어서 나는 빨리 생일파티를 치르고 제 자리로 가고 싶었다. 특히 직원들이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며 “사랑하는 누구 대리님”, “사랑하는 누구 팀장님”을 할 때는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편 결혼과 동시에 애매한 생일이 몇 개 늘었다. 남편처럼 진하게 축하할 정도의 열정은 없더라도 성의껏 준비해야 하는 이를테면 집안 어르신의 생신이다. 이런 날은 선물을 고르고 축하인사와 안부를 전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할 때 어르신에게 나의 축하는 소수의 축하인지, 주위 온갖 사람들에게 받는 축하 중 하나뿐인지, 직장 상사의 입장에서 부하 직원에게 받는 듯한 어색한 축하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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