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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Nov 30. 2019

상복의 기억

하나쯤 있어야 할 슬픔의 준비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 너도나도 샀던 게 검은 정장이다. 남자들은 재킷과 바지가 세트인 검은 정장에 셔츠, 여자들은 바지 대신 스커트가 들어간 투피스를 주로 산다. 나는 검은색은 어쩐지 답답해 보이고, 그 당시 내가 검정이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고 생각한 나머지 검은 정장을 구입하지 않았다. 


엄마도 내게 “그냥 말끔한 검은 정장을 사라”고 하셨는데, 한 귀로 흘리고 구입한 것은 흰색 바지 정장과 감색에 흰색 굵은 무늬가 들어간 투피스였다. 면접 때 입고, 어쩌다 잡히는 결혼식에도 입었다. 다들 산다는 검은 정장의 역할을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부고를 듣게 되는데, 빈소에 방문하려면 당연히 입어야 하는 게 상복이다. 그럴 때 입어야 하는 게 검은 정장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당연히 빈소에 갈 일이 없었다. 고작 친할머니의 빈소를 지킨 게 전부였다. 빈소에 상복을 입고 가야 한다는 것은 내 상상의 범위에 없었다. 

취직을 하고 얼마쯤 흘러서였다. 옆 팀 차장님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전해졌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평소 인사를 주고받던 차장님의 책상은 그날따라 휑했다. 오후에 팀원들끼리 협의해 다음날 빈소에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나를 야근을 하고 말았다. 밤 10시경이 다 돼서야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을 탔다. 서울에서 일을 할 때여서 인천 집까지 꼬박 한 시간 반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운이 좋아 자리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던 중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게 떠올랐다. 

‘내일 뭐 입지?’


순간 등골에 소름이 일었다. 맞다, 상복. 생각도 못했던 상복. 빈소에 가게 될 거라 상상도 못 했던 내게 없는 그것, 바로 상복. 발등에 불이 활활 타올랐다. 지금이라도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시간은 밤 11시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지금과 달리 무채색 옷을 끔찍이 싫어해서 핑크색, 주황색, 노란색, 민트색 등 밝은 색 옷만 줄곧 사 입고 있었다. 입에서 ‘망했다’는 소리가 조그맣게 새어 나왔다. 


일단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면 엄마도 있고, 언니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려니 싶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급히 외쳤다. 

“엄마, 나 검은 옷! 검은 거!”


방에서 엄마와 언니가 나와 내 얘길 듣고는 옷장에서 검은 옷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언니에게 아무 무늬 없는 검은 투피스가 있었다. 문제는 사이즈였다. 키를 비롯한 신체 사이즈 모두가 나보다 월등히 큰 언니의 옷은 내가 입자마자 허수아비처럼 변했다. 


재킷의 어깨는 날개처럼 내 어깨 옆으로 비죽 나오고, 소매는 손등을 덮었다. 치마는 허리가 커서 옷핀으로 찔러 겨우 고정시켰다. 언니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가 내 무릎은 덮고도 남아 종아리까지 내려왔다. 누가 봐도 언니 옷 빌려 입은 티가 났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우리 셋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치마허리에 옷핀을 끼우고, 소매를 접고 어색한 언니의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팀장님이 사무실을 들어서는 나를 잠시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상복 골라 입고 오느라 수고했네.”

다시 한번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날은 누군가의 빈소에 방문객으로 가는 첫 경험이었다. 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조의금은 어디에 내야 하는지 모두 그날 배웠다. 파리해진 옆 팀 차장님의 얼굴을 보며 ‘조사’의 무게감도 엿볼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검은 옷이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돼 평소 입지 않아도 재킷은 하나씩 구입해놓았다. 검은 재킷과 검은색 바지를 하나씩 사두었고, 조문이 있거나 정중한 자리가 있는 날 한 번씩 소환했다. 여름에는 재킷이 더우니까 얇은 검은색 카디건과 원피스를 샀다. 그 옷들을 사면서 늘 생각했다. 이런 옷은 그냥 안 입고 싶다고, 그냥 누구의 부고도 듣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20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부고는 줄곧 찾아왔다. 주로 친구의 가족이나 회사에서의 부고였다. 특히 친구의 가족을 떠나보내는 부고는 오래도록 마음이 쓰였다. 친구가 초상을 치르는 장소에 다녀오면 늘 소화가 안 되고 체기가 있었다. 핏기 없는 친구의 얼굴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도 힘든 일들이었다. 

제일 힘들었던 부고는 내 가족에게 찾아왔던 부고였다. 내 가족의 초상이니 어차피 소복을 입기야 하지만, 빈소를 향할 때는 상복을 입는다. 어느 봄엔가 네크라인에 레이스가 촘촘한 검은색 블라우스를 하나 구입했다. 당시 상복으로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사놓고는 ‘이것은 상복으로 입어도 되겠구나.’하고 생각은 했다. 


두 해 전, 둘째 삼촌과 외할머니를 먼저 하늘로 보내드려야 했다. 그분들의 빈소를 향할 때 우연히 그 옷을 입고 나는 몹시 슬펐다. 어차피 하나쯤 있어야 할 검정 옷은 내게 슬픔을 예고하는 매개체와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검은 블라우스는 빈소를 향하는 길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흉한 물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뜻밖에 읽은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에는 상복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을 때 사두는 게 좋아.”
누가 말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무슨 일이 생긴 후에 허둥지둥 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탈의실에서 거울을 보고 섰다.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울리는지 확인하는 자신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옷장 안에 감추듯이 걸어두었다. 슬픔을 사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읽는 도중 내가 소유한 상복의 기억이 슬그머니 책 위로 올라섰다. 당연히 하나쯤 필요한 물건이지만, 이토록 필요성을 부정하고 싶은 물건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잊어버리고 싶은 상복의 기억, 하지만 사는 동안 또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검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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