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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05. 2017

'일단'과 헤어지는 방법

일단 해보겠다, 는 말이 발목을 거나하게 붙잡는다면


“일단 해보겠습니다!”

나의 단골 멘트다. 해본 적이 없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일. 혹은 어려움이 뻔히 보이는 일이라도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탓에 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일단 해보겠다니, 얼마나 무모한가.


간혹 어렵다는 의사를 표현하긴 하는데, 그게 또 보기에 시원하지 못하다. “그게,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제가 좀 부족하니까요.”처럼 평소와 달리 작은 목소리로 얼버무리곤 한다. 지금 당신이 내게 의뢰한 일이, 그리고 지시한 그 일이 얼마나 어렵고 뜬금없는지 또 얼마나 부당한지 속으로 이글이글 타올라도 말을 못 꺼낸다.


회사생활을 할 때는 지금보다 더 심했다. 인정받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 내가 이것을 거절하는 게 기회를 잃을 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어려운 일을 받아도 늘 단골 멘트로 답했다.

“일단, 해볼게요!”


나 혼자 하는 일이면 괜찮은데 팀원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면 항상 문제가 생겼다. 중소기업의 특징이라면 처음 해보는 일이 수두룩하다는 것인데, 내겐 그 수두룩한 일이 참 많기도 했다. 특히 후배 직원들을 가르치며 일 하던 시절에는 일단 해보겠다고 선언하는 내 성격이 팀원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일단 해본다고 한 덕에 나와 팀원들의 야근은 언제나 보장됐고, 함께 저녁 먹는 날이 많았다. 내 가족과는 고작해야 한 달에 두어 번 함께 식사를 해도 팀원들과는 매일 같이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는 상황이란.


아마 일단 해보려는 습관은 혼자 오롯이 솟아난 게 아닐 것이다. 그럴싸한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데다 굵직한 대기업의 경력도 없는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자리를 굳건히 하려면 성실 말고는 재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해서 안 될 게 세상에 어디 있나, 싶은 철없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팀원들이 편의를 생각한다면 엄한 일에 ‘칼 거절’도 할 법한데 그것을 참 못했다. ‘차라리 사내 정치라도 잘 했으면 뭉개고 넘어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도무지 내 영역이 아니었다. 정치의 ㅈ도 모르는 나는 그저 묵묵히, 그리고 쾌활하게 ‘일단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 말고는 잘 하는 게 없었다.




그리고 프리랜서가 되면서 ‘일단’의 독주를 톡톡히 마시게 됐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는 일단 한다고 회신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내야 한다. 도움받을 곳도, 조언을 구할 곳도 시원치 않다. 오로지 PC와 책상, 도서관의 자료만이 동료일 뿐이다. 거절 못 하는 성격에 불편한 감정싸움은 일단 피하고 보는 나는 ‘일단’의 먹잇감이었다.


그런 내가 제대로 일단에 휘말린 게 작년 겨울이었다.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널을 기획하고 있는데 혹시 맡아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글 쓰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또 마침 한 업체와의 계약이 만료돼 새로운 클라이언트와의 일을 찾던 중이었다. 이메일로 기획안을 받았다.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단어로 채워진 기획안을 읽고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왔다.


“기획안만 보면 어렵죠? 무슨 말인지 감도 안 오고…. 일단 만나서 설명드릴게요. 사무실에서 봅시다!”

알겠다고 하고 약속시간을 정한 뒤 다음날 출판사로 찾아갔다. 다들 퇴근하고 저녁이나 먹으러 나갈 무렵의 시간이었는데, 작은 출판사의 사장님이 혼자 PC 앞에서 끙끙거리며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출판사의 사장님은 상상한 바와 같이 업무가 많은 사람이었다. 잠시 기다린 다음 기획안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저널이었다. 관련 지식이라곤 한 톨도 없는 내가 감히 시도했다간 망신당하기 딱 좋은 일이었다.


“제가 이 저널을 맡기엔 많이 모자라네요.”

“괜찮습니다. 다 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글을 쓰면 독자들도 실망할 텐데요.”

“아닙니다. 에디터님만 괜찮다면 저는 맡기고 싶은데요. 제가 요즘 사람 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요즘 글 쓰는 분들 섭외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는 괜찮으니 같이 일해 보시죠. 자료는 저도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아니, 그게….”


이런 식의 대화를 두어 번 반복한 뒤 나는 결국 그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일단 해볼게요.”


다시 일단에게 발목을 잡혔다. 등 뒤에서 ‘일단’이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소주 한 사발 들이켠 것 같은 쓴 맛이 목으로 넘어갔다.


 일은 일단에게 호되게 당한 대표 사례가 됐다. 관련 지식이 전혀 없던 나는 이 저널의 기사를 쓰기 위해 엄청난 공부가 필요했다. 한 개의 원고를 쓰기 위해 책 한 권은 읽어야 했고, 모르는 용어가 수두룩해서 짧은 원고 하나를 쓰는 데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또 원고마다 감정소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계약서에 도장은 찍었고, 분야가 분야다 보니 새로운 에디터 구하기가 쉽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알게 모르게 사명감도 생겼다. 필요한 인터뷰 상대가 있으면 핸드폰이 뜨거워지도록 전화를 붙잡는 것도 내 몫이었다. 나는 일단을 쉽게 사용한 죗값을 톡톡히 치렀다.




이 저널에 글을 쓴 지 벌써 9달째. 오늘은 바쁜 사장님과의 대화가 있었다. 아마 이 저널이 이번 연말로 마감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혹시 ‘서비스 종료’라는 안 좋은 결말을 맞더라도 충격이 덜 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 저널은 사장님이 어떤 기업으로부터 외주를 받아 진행하는 건이었는데,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잠시 뒤를 돌아보니 킬킬거리던 일단이 훌쩍이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을 남발하는 바람에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고, 이 업무가 종료되면 시간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을 줄 알았건만 이 훌쩍임이라니.


그래서 사람들이 ‘시원 섭섭’이란 표현을 쓰는 걸까? 이제 자료 조사와 낯선 분야를 캐는 고생이 덜 하다고 생각하면 시원한데, 그래도 열심히 닦아놓은 소중한 저널과 이별하는 건 섭섭하다.

몹쓸 ‘일단’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섭섭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일단 덕에 무모한 일도 덥석 베어 물고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걸까, 싶기도 하다.


연말에 저널을 마무리하면 앞으로는 애증의 일단을 정리하고 싶다. 장담은 못하겠다. 훌쩍이는 일단을 보니 그나마 나를 구축해오던 패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이 가니 말이다. 일단 해보겠다는 자신감이나 호기 없이 단단하게 일하려면 나는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이 성장해야 할 것이다. 일단 없이도 잘 해내는 삶, 그런 튼튼한 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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