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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ug 26. 2019

마지막 캐러멜

우리는 말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

얼마 전 글에서 언급했던 NGO의 취재가 있던 날이었다. 전날이 초복이었다. 짐작이 갈 만한 여름날의 날씨에 집을 나서자마자 머리카락 켜켜이 흐르는 땀이 줄을 이었다. 오늘 하루도 무덥겠구나, 생각하며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철을 갈아타고 취재 장소 부근에 도착했다. 지도 앱을 켜고 이동하는데 취재 장소인 장애인 쉼터는 주택가의 숨겨진 구석에 있었다. 구불구불 시멘트로 메운 계단을 여러 개 올라 간판도 못 찾아 다른 회사 건물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겨우 쉼터를 찾았다.


쉼터가 되기 전엔 아마 작은 빌라였거나, 다가구 주택이었을 비좁은 건물이었다. 건물의 계단은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날 정도로 폭이 좁았다. 활동보조인이 함께 올라가거나 몸집이 큰 사람이 지나려면 꽤 힘들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날은 청각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체육 프로그램을 취재하는 날이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인데 내가 도착한 시간은 10시도 채 되지 않았다. 주변에 임시로 들어갈 곳도 없고 덥기도 해서 일단 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쉼터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하지 않고 청인과 청각장애인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들도 청인과 청각장애인이 섞여 있었다. 몇 명의 사회복지사와 인사를 나눈 다음 한쪽의 작은 교실에서 프로그램 시작을 기다리기로 했다.


낯선 얼굴이 대뜸 와서 앉아있으니 지나다니던 사회복지사들이 와서 수화로 말을 걸었다. 여전히 나는 수화를 할 줄 몰라서 이렇게 청각장애인 단체를 취재할 때 조금 애를 먹었는데, 대답도 못하고 있으니 내게 “청인이세요?”라고 물었다. 만약 “비장애인이세요?”라고 물었다면 청인과 청각장애인의 구분을 인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인사를 몇 번 주고받았고, 내가 앉아있던 교실에서 수업이 예정돼 있던 청각장애인들도 한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 내 또래로 보이던 남자가 다시 내게 수화로 말을 걸었다. 또 대답을 못 하고 절절 매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회복지사가 통역을 해줬다.

“어디서 오셨는지 궁금하대요. 글씨로 대화하고 싶대요.”

“아, 네!”

급히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에 글씨를 적어 알렸다. 나는 NGO에서 취재를 나온 기자라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본인의 자리에 앉았다. 간혹 무슨 몸짓을 보이긴 했는데, 나는 여전히 못 알아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끼리 수화하는 모습을 보면 대강 무슨 내용을 주고받는지 짐작이 갔다. 그들은 손으로만 대화하는 게 아니었다. 수화에 맞는 표정과 입모양도 열심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기쁨을 그들은 얼굴에 더욱 큰 기쁨으로, 우리가 말하는 놀람을 더 큰 놀람으로 드러냈다.


표정만 봐도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지, 지금 어떤 느낌인지 짐작이 가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입과 목을 사용해 편리하게 주고받는 말을 손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 나름의 소통 방식이 그들의 감정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 짐작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체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와 인터뷰를 할 때였다. 담당 사회복지사 역시 청각장애인이었다. 곁에 통역을 맡아준 사회복지사가 앉았다. 나는 체육 프로그램에 대해 질문하고 그 담당 사회복지사의 표정과 수화를 바라봤다. 해당 활동에 참여하는 연령대가 몇 살 정도냐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곁에서 통역을 거치기 전에 나는 그 질문의 대답을 알아들었다.

“아, 연령대가 다양하다고요?”

곁에 통역을 위해 앉은 사회복지사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머, 기자님. 수화할 줄 아세요?”

“아니요. 수화 못하는데요. 표정이랑 입모양 보니까 조금 알 것 같아요.”


대답해놓고도 못내 부끄러웠다. 뻔질나게 장애인들의 현장에 취재를 다니면서도 그들만의 언어를 못 알아듣는 건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움이기 때문이다. 한편 몇 번의 취재를 위해 내가 수화를 익혀올 깜냥은 안 되지만, 작은 말이나마 알아들은 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수화와 함께 풍부하게 표현하는 표정이 내게 경이로운 경험을 건넨 것이다.

담당 사회복지사와의 인터뷰 후 체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님과 여기에 참여하는 청각장애인 회원과 각각 인터뷰를 진행했다. 봉사정신과 다정함으로 똘똘 뭉친 강사님과 이 프로그램에 열성인 어르신 회원이었다. 난청으로 청각장애를 겪고 있는 어르신은 자리에 앉자마자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외쳤다.

“삼삼****!”


툭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짧은 인터뷰지만 자신을 제대로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주민등록번호부터 말씀하신 듯했다. 그나저나 1933년생이라니, 매우 고령이시다. 이 어르신은 난청이기 때문에 크게 말하면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수화 없이 큰 소리로 질문을 외쳐가며 인터뷰를 했다. 어르신도 내게 큰소리로 대답하셨다. 목이 아프도록 큰소리로 질문하면서 진행했더니 오히려 인터뷰 시간이 유쾌하게 흘러갔다.


어르신은 지금 참여하는 체육 프로그램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전신운동이 되고 집중해서 게임 규칙을 생각하며 하다 보면 치매 예방도 되는 것 같다며, 언젠가 대회가 있으면 출전해 1등을 하고 싶다고도 하셨다.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체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 비장애인과 달리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살펴봐야 글도 정확히 쓸 수 있다. 이날 진행되는 종목은 ‘슐런’이었다. 네덜란드의 전통 게임인 슐런은 나무로 만들어진 보드 위에 납작한 나무토막인 ‘퍽(puck)’을 밀어 통과시키는 실내 스포츠다.


3달 가까이 슐런을 배운 청각장애인들이 열심히 손으로 퍽을 밀고 있었다. 게임 규칙을 계산하며 아주 신중하게 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드 옆에는 심판 두 명이 앉아 심판을 보면서 응원도 겸하고 있었다. 수화로  응원을 주고받는 그 풍경이란. 고요함 가운데 눈으로 확인하는 그 떠들썩함이 상상이 가는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슐런 강사님이 나를 지목하셨다.

“취재 오신 기자님도 한 번 해보세요. 아주 재미있어요.”

당황스러움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3달간 해온 분들 앞에서 시도했다간 망신살 뻗치기 십상이었다.

“아하,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거절 말고 해 보세요. 처음 하시는 분들도 재밌게 할 수 있어요.”


곁에 있는 사회복지사들과 강사님의 부추김, 한창 슐런에 빠져있던 회원들도 소리 없이 손짓으로 권하기 시작했다. 가끔 취재를 나오면 그들이 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 흔한 편이긴 하다. 체험도 취재의 일종이니까. 그렇지만 나 같은 슐런 초보가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퍽을 던지자니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것이다. 하지만 도무지 뺄 수가 없어 보드 앞에 섰다.


보드 옆에 앉아 심판을 보던 청각장애인들이 내게 ‘파이팅’의 손동작을 보였다. 일면식 없는 내게 어쩜 이렇게 순수한 응원과 웃음을 보일 수 있는 걸까? 얼결에 나도 파이팅을 했다. 그리고 퍽을 던졌다. 막상 시작하니 어딘가 숨겨져 있던 승부욕이 꼬물꼬물 비집고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열심히 퍽을 밀었다. 나는 처음 해본 것치고 높은 점수가 나왔다. 심판을 보던 분들과 곁에서 구경하던 회원들이 내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손바닥을 마주하며 짝짝짝. 처음치고 잘한 내 점수에 그들은 웃고 있었다.

수화를 알아들었을 순간보다 더 부끄러워진 상태로 가방을 놨던 벤치로 왔다. 옆자리에는 좀 전에 인터뷰했던 1933년생 어르신이 앉아계셨다. 어르신은 입고 있던 낚시 조끼 주머니에서 뭔가를 조물조물 꺼내 내미셨다. 캐러멜 한 알이었다. 어르신은 엄청 큰소리로 말하셨다.

“이거 한 알 남았어!”


갖고 계시던 캐러멜이 딱 한 알 남아있었고, 그걸 내게 주신 거였다. 넉넉지 않은 환경인 데다 장애까지 갖고 계신 분들은 작은 간식에도 그리 기뻐한다는데, 마지막 캐러멜을 내게 주시다니.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왜 다들 이리 웃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캐러멜까지 주시는 걸까. 나는 그저 일을 하러 와서 그들 사이에 비집고 끼어 퍽을 밀었을 뿐이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한 뒤 캐러멜 껍질을 얼른 까서 입에 넣었다. 내가 지금 맛있게 먹고 있다는 점, 이 작은 캐러멜 한 알에 은근히 감동했다는 사실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아, 달다. 달아. 폭염의 날씨에 어르신의 낚시 조끼 안에서 뜨뜻하게 데워진 캐러멜이 혓바닥 위에 찰싹 달라붙어 달콤함을 퍼뜨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년에 나올 책의 초고에 포함했다가 뺀 원고입니다. 낯선 이에게 티끌 없이 순수한 호의를 보여주신 분들께 많이 배운 날이었습니다. 일 년도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는 그날을 이렇게나마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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