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빵을 먹다가

흔해져서 좋은 빵도 있다.

by 귀리밥

우리 집은 2인 가구니까 웬만하면 서로의 입맛에 공통으로 좋은 빵을 사는 게 좋다. 그래야 남는 빵이 없고 뻣뻣해진 빵 대신 보드랍고 신선한 빵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한 번씩 서로의 입맛에만 딱 좋은 1인용의 빵도 산다. 남편이 좋아하는 슈 볼을 나는 한 개 다 먹기도 힘들고, 찰떡과 쑥이 첨가돼 동서양의 분위기가 믹스된 빵도 오롯이 남편의 취향이다. 장을 보고 오는 길에 가끔 그런 빵들을 사 오면 남편은 흡족한 표정으로 빵을 먹는다. 분명 빵이긴 한데 전설 속 바이킹이 고기 덩어리를 뜯는 것 마냥 거침없이 빵을 먹는 모습이 귀엽다.


그런가 하면 내가 가끔 한 번 사서 혼자 열심히, 그것도 즐겁게 먹는 빵은 잘 만든 모카빵과 초코칩과 슈크림이 들어간 패스트리 정도다. 이 두 가지 빵은 취향이자 어쩌면 향수 어린 메뉴일 것이다.


지금은 어느 동네를 가나 프랜차이즈 빵집 두어 개쯤 있다. 교통이 잘 발달하지 않은 깡시골에도 그런 빵집은 있게 마련이다. 내 기억에 그런 프랜차이즈들이 대학 다닐 무렵 조금씩 서울 외 지역에도 퍼진 것 같다. 그전까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동네에 있는 빵집을 이용했다. 그게 몹시 당연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윔블던 베이커리’‘뉴욕빵집’이 가장 가까웠다. 윔블던이 영국에 있던 도시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그 빵집이 영국식 빵을 굳이 만들던 것 같진 않다. 어느 빵집에 가나 빵은 비슷했다. 가격과 종류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동네 빵집들은 비슷한 얼굴들을 지녔다.

그 동네에는 윔블던 베이커리가 터줏대감이었다. 케이크를 살 일이 있으면 무조건 그 집에서 샀다. 뉴욕빵집은 후발주자였다. 그런데 뉴욕빵집의 바게트를 처음 먹어본 날, 나는 반해버렸다.


당시 바게트 한 개의 값은 천이백 원. 겉은 바삭한데 속은 솜털처럼 보드라운 바게트였다. 게다가 팔만큼 긴 크기의 빵은 가성비에 환장하던 내 어린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다. 1일 1바게트를 하던 어느 날, 빵집 아줌마가 넌지시 권한 게 있었다.

“모카빵도 먹어봐. 천오백 원밖에 안 하는데 되게 맛있어.”


‘모카’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날로부터 모카빵을 몇 년 간 ‘목화빵’으로 알고 살았지만, 어쨌든 삼백 원 더 얹어 맛있다는 그 빵을 사 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또 반해버리고 말았다. 목화빵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겉면의 딱딱한 부분은 쌉싸름하면서 달콤했고, 그 안의 갈색 빵은 단 맛은 덜하지만 군데군데 박힌 건포도가 제 역할을 엄청 열심히 하고 있었다. 커피를 먹어본 적 없던 시절이니 여기서 모카의 커피맛을 깨우칠 리 없었다.

다음 날 나는 빵집 아줌마의 영업에 홀려 또 목화빵을 사 왔다. 이날은 언니에게도 목화빵을 전수했다. 나 못지않게 빵을 좋아하던 언니도 홀랑 빠져버렸다. 문제는 이날 빵을 나눠먹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언니가 자꾸 달콤한 겉면만 뜯어먹는 거였다.

“언니, 그것만 먹으면 어떡해. 이 빵에선 달콤한 게 맛있는 건데.”

“내가 겉면 먹을 테니까 너는 속을 먹어.”

“싫어. 그럴 거면 먹지 마!”


이 사소한 다툼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형제자매끼리 먹을 것으로 싸우는 것은 이렇게 하찮은 주제에서 번진다. 서로 뜯고 싸우던 우리는 이내 화해했지만 앙금은 남았다. 목화빵을 먹을 때마다 언니는 내 눈치를 보며 자꾸 겉면을 뜯어먹었고, 나는 언니가 겉면과 속을 번갈아 먹는지 감시했다. 각자 하나씩 사 먹으면 될 것을 우리는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살았을까.


훗날 한참 지나서야 내가 좋아하던 그 빵의 이름이 ‘모카빵’이란 걸 확실히 알았다. 어쨌든 모카빵에 대한 애정은 도무지 식지가 않아서 지금도 빵집에 가면 한 번씩 사 온다.


한 번은 자취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던가.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내게 빵 봉투를 건넨 적 있다.

“누나, 이거 가져가서 먹어요. 여기 있는 초코칩 들어간 패스트리 되게 맛있어요.”


아마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대충 끼니를 때우던 나를 걱정해서 준 거였을 것이다. 프랜차이즈에서 팔던 빵이긴 했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빵 몇 가지가 들어있었다. 신상품이었나 보다.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열심히 고른 내색이 군데군데 서려있는 빵들이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으로 동생에게 받은 빵을 우물거리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그중 동생이 말한 초코칩 패스트리를 꺼냈다. 트위스트 모양으로 꼬인 패스트리 위에 슈크림이 엷게 발라져 있고 초코칩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이 맛은 아마도 고칼로리의 살찌는 맛이겠지만, 이렇게 맛있다면 감수하고 싶었다. 그날 이후 한 번씩 그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르게 되면 꼭 사 오는 빵 중 하나가 됐다.

홍대 근처에 들르면 한번씩 사오는 야끼소바빵. 이곳의 카츠 버거와 야끼소바빵은 저의 오랜 최애 메뉴랍니다:)

지금 사는 파주의 동네에는 맛있는 빵집이 꽤 있다. 프랑스에서 제빵을 공부하고 돌아와 빵집을 차렸다는 젊은 사내의 가게에는 정성스레 만든 크루아상이 있다. 파주와 일산에 지점 몇 개를 가지고 있다는 유명한 빵집들이 근처에 있어 대표 메뉴들만 사도 입이 호강이다. 학원이 많이 들어선 어느 건물에 있는 빵집은 아이들의 식사대용으로 좋은 빵이 다양하다. 느끼하지 않게 산뜻한 케이크가 일품인 제과점도 있다. 또 흔한 프랜차이즈 역시 빠질 수 없는 지라 모두 지척에 있다.


그 빵집들 중 어딜 가나 모카빵을 흔하게 만나볼 수 있다. 프랜차이즈 중 어딜 가든 내가 좋아하는 초코칩 패스트리가 있다. 이제는 빵이 남지 않도록 짧은 기간 안에 먹는 게 숙제가 됐지만, 예전처럼 먹을 것으로 뜯고 싸우지 않는 시절이라는 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보통 ‘흔하다’는 건 덜 좋은 의미로 이야기한다. 흔한 것은 특별하지 않기에 받는 이도 사는 이도 흔한 것보다 특별한 것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빵들이 흔해져서 좋다. 모카빵이 흔하지 않았다면, 초코칩 패스트리를 파는 프랜차이즈가 흔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들을 얼마나 귀하고 궁하게 바라볼까. 가끔이나마 흔해져서 좋은 것들이 있다면 내겐 이런 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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