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어디선가 책 추천글을 보고 읽으려고 적어둔 책이었다. 그렇게 적어둔 게 벌써 3년쯤 된 걸 보면 선뜻 손이 안 간 것도 사실이다. 영화로도 나와있으니 읽기 싫었다면 영화를 봐도 될 것을 고집스레 책으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넣었다 반복한 시간.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앞둔 마음이었다.
어느 날 운전 중에 눈앞이 하얗게 되며 실명한 남자가 생긴다. 남자는 차를 멈췄고 도로 위 운전자들의 항의를 듣는다. 그때 어떤 이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선의를 베푼다. 낯선 이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온 남자는 아내와 함께 안과를 찾는다. 그 과정에서 선의를 베푼 자가 자신의 차를 훔쳐갔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안과를 방문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지만 아무 이상 없다는 소견을 듣는다. 하지만 남자는 너무나 불안하다.
안과 의사는 눈앞이 하얗게 밝아지며 실명하는 병을 들어본 적이 없어 집에 돌아와 서적을 살펴본다. 그리고는 자신도 눈이 멀었다는 걸 깨닫는다. 안과에 있던 환자들과 간호사 모두 눈이 멀었다. 남자의 차를 훔친 도둑도 눈이 멀었다. 의사는 전염병을 의심해 친한 병원장을 통해 보건당국에 신고를 하고 모두 외딴 정신병원에 격리당한다. 이때 의사의 아내는 남편을 돌보고자 자신도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하며 함께 격리생활에 동참한다.
그리고 격리된 곳은 예상하다시피 수백 명의 실명자로 가득 차고 그 안에서는 인간의 존엄이 모두 말살된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눈먼 자들은 갈등하고 대립한다. 타인의 차를 훔치고 성추행한 자는 죽어 마땅한가. 정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제를 믿을 수 있는가. 비정상적인 체제에서 여성은 성범죄에 노출되는가. 여성이 성적 유린을 당한 뒤 얻은 보상은 남성과 나눠야 하는가. 눈먼 자들 사이에서 대표를 선출하면 어떻게 권위를 가질 수 있는가. 생명유지에 기본인 식량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눈 뜬 자들이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갈등이 벌어진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지금의 우리 사회와 몹시 닮아있다. 그렇기에 눈 뜬 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진정 눈 뜬 자들의 도시인지는 다시금 곱씹어볼 만한 주제다.
단지 시력을 잃었다는 변화 하나로 세상은 희망 없이 꺼져든다. 눈이 멀게 되면 사람들의 직업, 부, 관계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진다. 본다는 것은 우리 곁의 가치를 확인하고 인정할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눈 뜬 자인 의사의 아내는 차라리 눈이 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 모든 광경을 보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조금 더 희생하고 연대하면서 곁의 사람들을 끌어안는다. 잼 한 숟갈로 하루 식사를 하는 상황도 감내하는 와중에도 함께 있던 사람들을 내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하나둘씩 눈을 뜬다. 눈먼 자들로 인해 세상의 체계가 바뀔 거라며 희망 없이 연명하던 이들이 눈 뜬 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된 것처럼 의사의 아내는 눈앞이 하얗게 멀어버린다. 희생하고 연대했다는 사유는 인과응보를 만들지 않았다.
더위가 심해지면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
의사가 말했다.
이 쓰레기들이 사방에서 썩어갈 거 아냐, 죽은 짐승들도 썩어갈 거고, 심지어 사람 시체도 그렇게 될 거고, 틀림없이 집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있을 거야,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조직이 없다는 거야, 각 건물마다. 각 거리마다, 각 지역마다 조직이 있어야 해.
정부가 필요하다는 거로군요
아내가 말했다.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눈먼 사람들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어요.
스스로를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실명의 경험은 우리에게 죽음과 고통만을 주었어요, 내 눈도 당신 병원처럼 쓸모가 없어요.
작가 상상 속의 재난을 읽으며 두 가지를 떠올렸다. 한 가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코로나19 시절 붕괴되던 사회였다. 정부가 눈먼 자들을 격리하고 동선을 파악하고 식량을 배급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 속 정부를 눈먼 자들을 포기하고(혹은 그들도 눈이 멀어서) 인간 존엄이 훼손된다. 만약 코로나19가 몇 년 더 지속됐다면, 혹은 종식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존엄도 위태롭지 않았을까.
또 하나는 눈먼 자들 사이에 단 한 명의 눈 뜬 자가 있는 설정과 같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존재할 때 장애인이 다수고 비장애인이 단 한 명인 세상이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비장애인이란 이유로 의사의 아내처럼 희생과 연대를 감내해야 할까. 세상 모두가 장애인이라면 단 한 명의 비장애인이 갖는 가치는 의미가 있을까.
다수가 눈을 뜨고 단 한 명이 눈이 멀면서 끝나는 소설은 해피엔딩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눈을 떴지만 눈이 멀었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형상뿐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가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항상 끝맛이 쓰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끝맛도 쓰고 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