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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Nov 13. 2017

용돈 투쟁의 역사

3년 넘게 벌어지고 있는 우리 집 용돈 투쟁의 풍경


“정말 너무해!”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의한다. 화를 내는 건 아니지만 어느 한 구석이 억울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내는 목소리다.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작년보다 3만 원 올려줬잖아.”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래도….” 같은 말만 종알거리다 삐쳐버린다. 결혼하고 3년 넘게 반복되고 있는 우리 집의 용돈 투쟁 풍경이다.


우리 집은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비정기적으로 여러 번 입금되는 내 월급은 모두 대출금을 갚거나 저축하는 데 사용한다. 남편의 급여는 생활비에 사용하고, 여기서 남은 돈도 저축한다.


아마 계획과 돈의 분할 없이 사용한다면 즐겁고 보다 안락한 생활을 하겠지만 남는 돈은 별로 없을 터. 매달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을 짠다. 물론 계획대로만 사용하진 않아서 더러 부족하기도 남기도 한다. 뜻하지 않은 지출은 얼마든 일어날 수 있지 않은가. 일단 남편의 월급이 들어오는 날 첫 번째 미션으로 각자의 용돈통장에 정해둔 금액을 입금한다.


나와 남편 모두 회사에 다닐 때는 똑같은 액수의 용돈을 입금했다. 각자의 용돈으로 교통비를 하고, 각자 친구를 만날 때 필요한 돈을 쓰고, 가끔 서로에게 간단한 선물을 사주곤 한다.




그런데 남편은 항상 용돈을 부족해했다. 지출의 차이는 각자의 약속에서 드는 돈에서 나는 것 같다. 친구를 만나는 방식이 나는 식사 후 차를 마신다면, 남편은 식사와 술을 겸하는 날이 많다는 차이일 것이다.


남편에게 돈이 너무 없다 싶으면 몇 만 원씩 더 송금해주곤 했는데, 뭐랄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넘어 도로변에 공기 청정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허무했다. 추가로 준 것만큼 남편은 빛의 속도로 돈을 써버렸다. 추가 용돈에도 남편은 부족하다고 했다.


“친구 몇 번 만나면 돈이 없어. 밥 먹고 술 한 잔 하면 돈이 금방 나가.”

“내가 중간중간 돈 더 줬잖아. 나는 추가로 용돈 받은 적도 없고 친구도 여보만큼 만나는데 왜 여보는 부족하고 나는 용돈이 남아?”

“몰라, 암튼 부족해.”


뚜렷한 근거 없이 부족하다고만 하는 남편의 용돈 인상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프리랜서를 시작하면서 교통비가 줄어들게 돼 스스로 내 용돈은 삭감을 했다. 아무래도 그게 형평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로 넘어오며 남편의 용돈은 3만 원을 올렸다.


3만 원의 인상에 만족하지 않은 남편은 나름 여러 모로 용돈 인상을 강구한 모양이었다. 이후 수시로 용돈 인상을 위한 설득이 있었다.


“여보, 우리 부서 사람들하고 이야기해봤는데 내가 용돈이 제일 적어.”

“그래서?”

“올려주면 좋겠어.”

“이유가 그게 다야?”

인상 실패.


“여보, 내 용돈을 올려주면 내가 여보 커피도 자주 사주고 선물도 사줄게.”

“커피랑 선물 안 받을게.”

또 인상 실패.


“여보, 용돈 올려주면 내가 청소 더 열심히 할게.”

“그럼 지금까진 용돈 액수가 마음에 안 들어서 청소를 더럽게 했어?”

또 실패.


이런 식의 요구가 여러 번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한 남편은 삐치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많이는 올려줄 수 없지만 당연히 매해 조금씩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이번엔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여보,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매년 2만 원씩 용돈을 올릴래, 아니면 물가상승률이 맞춰서 올려 받을래?”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물가상승률!”을 외쳤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은 다시 사색이 돼서 돌아왔다.

“여보, 나 그냥 매년 2만 원씩 올리는 걸로 바꿀래. 계산해봤는데 물가상승률로 하는 게 더 적어.”

“그래, 알겠어.”


물가상승률을 계산하며 여러 모로 계산기를 두들겨 봤는지 이번에는 남편도 제안을 한다.

“아니면 5% 인상은 어때?”

“지금 액수의 5% 인상?”

아니, 매달 복리로.”


복리까지 나오니 용돈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이러저러한 대화 끝에 결국 2만 원 인상으로 되돌아갔지만, 여전히 남편이 삐쳐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젯밤이었다.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회사 팀원들하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다들 내 용돈 너무 적대. 게다가 나랑 친한 과장님은 무조건 용돈 올려야 한다고 엄청 뭐라 하시더라. 여보가 다른 집 용돈 수준을 잘 몰라서 지금 나한테 이 정도를 주는 것 같아. 여보, 정말 너무해. 팀원들 용돈에 비하면 나는 아주 형편없었어. 정말이야.”

“그래?”

“응응. 정말 그랬다니까. 과장님이 엄청 열 내셨어. 너무 하대. 어떻게 그 돈으로 사냐고 막 엄청 성토하시더라. 자기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과장님 용돈 정도는 받아야 살 수 있다고 막 그러셨어.”


흠, 남편 회사에 용돈 안 주는 아내로 소문이 짜하게 났을 것을 생각하니 입이 텁텁했다. 그리고 그 과장님은 얼마나 받으시기에 남편이 이토록 억울해하는지 궁금했다. 정말 과장님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이 많은 용돈을 받는 데 비해 내 남편만 하잘 것 없이 소액이라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조금 망설이다 물어봤다.


“그래서 그 과장님은 얼마 받으신대?”

장난 아니야. 나보다 5만 원이나 더 받는대.”


아니, 이럴 수가. 그렇게 열 내며 성토하던 과장님이 받으시는 액수가 5만 원 높았던 거였다니! 당당하게 자신만큼 받아야 한다기에 지금 남편 용돈의 두세 배쯤 될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 5만 원 더 많다는 그 소박함에 웃음이 터졌다.

“뭐? 5만 원이라고?”

“응. 나 5만 원만 더 주면 아주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눈을 반짝이며 5만 원을 갈구하는 남편을 보니 거절하기도 참 어렵다. 하지만 호락호락 올려주자니 이 재밌는 순간들을 어찌한담.

“만약에 5만 원 안 올려주면?”

이 한 마디에 다시 남편이 발로 이불을 차며 씩씩거렸다.

“여보, 진짜 너무해!”


남편의 “너무해!”가 귀여워서 연말까지는 속내를 감추고 몇 번 더 놀릴 생각이다. 이렇게 간절한데, 5만 원이면 아주 풍족하다는데. 안 올려줄 아내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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