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큼 숙련되는 각자의 개인기
어제저녁, 침대 맡에서 스마트폰을 보던 남편의 미간에 팽팽한 주름이 잡혔다. 주로 공부하거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의 표정이다.
“여보, 뭘 그렇게 심각하게 봐?”
“낙법.”
“뭐?”
“낙법!”
낙법을 보고 있다고? 나도 봐도 되냐고 물은 다음 옆으로 가서 보니 정말 낙법을 가르치는 영상을 보고 있다. 그것을 보며 “이건 어렵겠는데.”, “이렇게 해도 되겠군.” 등의 감탄사도 연발한다.
“낙법을 왜 그리 열심히 보는 거야?”
“얼마 전에 빙판에서 넘어졌는데 낙법으로 떨어져서 덜 다쳤어. 고통이 분산되는 방법으로 떨어졌거든.”
“그럼 평소에 낙법을 알아뒀어?”
“응. 넘어질 상황을 대비해 알아뒀지.”
나는 그저 넘어질 순간에 무방비 상태로 넘어지고 말았는데, 낙법이란 걸 미리 연마하는 사람이 있다니 실로 놀라웠다. 그동안 무수히 넘어진 나의 무릎이 ‘삐그덕’하며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낙법, 어떻게 하는 거야?”
남편은 내 앞에서 낙법 시범을 보였다. 두 팔을 모으고 공중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안전하게 떨어져 덜 다쳤다니 다행이긴 한데, 낙법 시범을 보니 빙판 위에서 두 팔을 모아 착지하는 남편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안 봤기를 바랐다.
격주로 모이는 독서모임 사람들과도 소소한 기술에 대해 공유한 적 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아주 동그랗고 예쁜 달걀 프라이가 나왔을 때였다. 달걀 프라이를 잘 못 하는 나는 그게 마냥 신기했다.
“이렇게 예쁘게 부치다니, 이것도 기술이 있겠죠? 노른자도 이렇게 잘 살아있고 말이지.”
옆에 있던 언니가 얼핏 들었다는 듯이 설명해 줬다.
“누구한테 들었는데, 달걀을 깨서 넣고 물을 재빨리 넣고 뚜껑을 닫으면 된대.”
“네에? 프라이팬에 물을 넣는다고요? 그건 너무 위험한 것 아니에요?”
“그렇지? 나도 들어보긴 했는데 겁나서 해보진 못했어.”
달걀을 예쁘게 부치는 데도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중에 생활용품점에서 달걀 프라이 틀을 발견했지만, 뭐랄까 도구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직접 익히는 기술의 영향력이 훨씬 크게 다가왔다.
소소한 기술이 또 하나 있었다. 마찬가지로 모임 사람들과 대화중이었다. 맛있다는 만둣국 가게를 다녀온 사람이 깨알 같은 팁을 알려줬다.
“만둣국 위에 고명이랑 국물이 정말 맛있어요.”
“오, 거기 진짜 맛있나 보다.”
“거기다가!”
“거기다가?”
“공깃밥을 시켜서 비벼 먹어보세요. 우리 아들도 한 그릇 뚝딱 먹더라고요.”
“아, 밥을 비벼서!”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며 “밥을 비벼야겠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무슨 밥을 비비는 것까지 공유하나 싶지만 아주 소소하게, 어떤 가게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굳이 공들여 알아둘 필요는 없지만 흘려들어두면 언젠가 활용할 만한 아주 소소한 기술.
그러고 보면 생의 매 순간이 기술의 연마가 아닐까 한다. 나는 야채를 씻을 때 식초를 사용한다던가, 이불 커버를 빨리 묶는 방법이라던가, 장조림의 남은 간장으로 잡채를 만들거나, 다육이의 분갈이를 할 때 살짝 기울여 흙을 넣는다던가 하는 작은 기술들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는 동안 조금씩 손으로 익혔다. 그 기술들이 쌓이다 보면 나는 ‘만렙 주부’가 되고, 또 남편의 경우 ‘만렙 낙법자’가 되는 게 아닐까.
어릴 때 엄마는 여러 개의 반찬을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 내거나,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뜨개질을 하곤 했다. 빵이나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큰언니는 가족들과 나눠먹기 위한 과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곤 했다.
손님이 많은 외가에서 숙모는 빠른 속도로 기어가 사물을 입에 넣는 아기들을 번개처럼 막아내는 기술이 있었다. 내 친구는 닭발을 쉽게 발라먹는 기술이 탁월해 내게 전수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언니는 아이 셋을 동시에 돌보는 기술이 날이 갈수록 좋아져 몸놀림이 바람 같았다.
모두 나이 들어감에 따라 각자의 개인기를 갈고닦은 ‘기술자들’이었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기술을 연마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