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가 화려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꿈꾸며 사는 마음은 화려할 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의 기억이다.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아직 찌뿌둥한데 늦잠을 잘까 싶다가 오늘 해결하기로 한 일정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어나 앉았다. 전날 사다 놓고 먹다 남은 크림 카스텔라와 코코아로 남편의 아침을 차려줬다. 대왕 카스텔라를 사서 실컷 먹고도 남았다. 이 정도 양이면 새 모이처럼 조금만 차리는 아침식사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딱 좋은 식사량이다.
현관에서 남편을 배웅한 뒤 빨래를 널고 머리를 감았다. 도톰한 옷을 입고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보니 아직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으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역시 안개와 먼지는 마셔봐야 알 수 있는 것. 코트를 걸치고 에코백 하나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반납할 책 세 권과 예약한 두 권의 책을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안한 얼굴을 하며 한 권의 책을 내밀었다.
“어쩌지요? 예약한 책 두 권 중에 하나는 찾아놨는데 한 권은 못 찾았어요. 죄송합니다.”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화도 안 난다. 평소라면 조금 심통 부리는 얼굴을 했을 나지만(무료로 이용하면서 호불호는 다 티 낸다) 오늘은 어쩐지 싫은 소리를 할 수 없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
“저희가 다시 찾아볼 테니 며칠 지나서 다시 한번 예약해주시겠어요?”
“괜찮아요. 다시 안 찾아보셔도 돼요.”
“죄송해서 어떡해요.”
“아니에요.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음, 정말 괜찮아서 그래요. 그 책 한 권 때문에 고생 안 하셔도 돼요.”
정말 괜찮아서, 안 찾아도 돼서 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난 며칠 후면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이사를 열흘쯤 앞둔 시점에서 예약한 책을 찾아내라고 빽빽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기 전까지 최대한 여러 가지를 읽어보고 싶어 책 욕심을 부리고 있는 마당에 책을 찾아내라고 어찌 말하겠는가. 사실 고생 안 해도 된다는 말 뒤에 하고 싶은 말이 조금 더 있긴 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솔직히 제가 신청한 책 절반은 못 찾으셨잖아요. 결과는 그랬지만 찾느라 사서 선생님들이 고생했을 거예요. 저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책 찾아달라고 고집을 했을까요? 고맙고 미안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그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도서관에서 나왔다.
도서관 1층에 내려오니 무인 대출기 앞에 중년의 아주머니가 허둥대고 있었다. 스마트 인증을 하려는 모양인데 방법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도서관 앱을 화면에 갖다 대고 QR코드를 읽으면 되는데 그것을 몰라 아주머니는 무인 대출기를 양손으로 쓸어가며 온몸으로 당황을 표현하고 있었다. 평소 모르는 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나지만 이사를 앞둔 자로서 용기를 쥐어짜 내 친절을 베풀었다.
“아줌마, 이거요 핸드폰을 여기 화면 앞에 갖다 대면 되요. 그리고 여기 비밀번호 누르면 칸이 열려요. 번호 눌러보세요.”
“어머, 어머 진짜네! 아가씨 고마워!”
곧 이사 간다는 미련에 하마터면 아주머니에게 “행복하세요.”라고 말할 뻔했다. 주책이 심해지고 있음을 느끼며 서둘러 도서관에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건너편 인도의 무성한 가로수들을 바라봤다. 단풍철을 지나 갈색 플라타너스 잎이 가득한 가로수였다. 예쁜 가을색이다. 떠나기 전의 풍경은 왜 마지막 할 말을 못 한 연인처럼 자꾸 아득해지는 걸까?
이윽고 이사 전 하이라이트를 치르러 갔다. 동네 제과점 포인트 사용하기. 우리 동네에는 대한민국에 몇 안 남은 제과명장 한 분이 운영하는 제과점이 있다. 이곳의 여주 밤식빵은 단연 우리나라 최고다. 호두 브리오쉬는 맛있어서 여러 번 사 먹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베이비 슈는 여느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파는 물컹한 슈와 비교불가다. 오동통한 크루아상도 하나 담았다. 계산을 하면서 회심의 한 마디를 건넨다.
“포인트 전부 써주세요.”
마음속 갈증이 한순간 달아나고, 잔액 계산을 위해 건네는 카드는 사뿐히 직원 손에 넘어간다. 이날을 위해 나는 그토록 열심히 빵을 사 먹었던가. 포인트가 얼마이든 관계없다. 2년 치 포인트를 한 번에 쓰는 그날의 쾌감은 이루 말할 데 없다. 제과점을 나서며 제과명장들이 부디 만수무강하길 마음속으로 바랐다.
제과점에서 신호등을 두 번 건너 야채가게로 갔다. 갓 이사 온 시절부터 나의 야채를 책임진 그 야채가게 말이다. 이사가 며칠 안 남아 야채를 많이 살 수 없다. 양파 한 봉지와 깐 마늘 작은 봉지, 청경채 한 줌과 귤 한 봉지를 바구니에 담았다. 계산대에서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돈 계산을 했다.
‘저, 이사 가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찰나에 아줌마는 다음 손님을 위해 “새댁, 저리 좀 비켜봐.”라며 나의 망설임을 싹둑 잘랐다. 이런 쿨내 나는 아주머니 같으니.
양손에 빵 봉투와 야채 봉투를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약 3분의 거리에 안개는 반쯤 걷혀 있었고 하늘은 흐렸다. 별 볼일 없는 풍경, 화창하지 않은 날씨지만 늘 같은 길을 걷고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의 일상이 그리워질 것을 알고 있다.
동네가 화려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꿈꾸며 사는 마음은 화려할 수 있었다. 지은 지 25년 된 아파트는 허술하고 복도 끝 철근이 튀어나왔지만,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책 읽으며 산 2년은 견고하고 튼튼했다. 실수 연발 경비아저씨들 때문에 종종 짜증이 났지만, 그럼에도 날 보면 먼저 인사를 하는 경비 아저씨는 마음의 모서리를 무디게 만들었다.
열흘 뒤면 지은 지 얼마 안 된 깨끗하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그곳의 침실은 따뜻하고 내 전용 서재가 있고 옷을 편하게 정리할 드레스룸이 있다. 4인 탁자 세트를 놓을 여유 있는 주방이 있고 신발을 마음껏 사도 복닥이지 않을 커다란 신발장과 현관이 있다. 대신 이곳의 정취와 기억은 그곳에 재현할 수 없다. 이곳은 나의 첫 신혼집, 결혼생활의 시작, 유부녀로서 첫 시도와 잦은 실수가 가득한 작은 아파트이다.
문득 어울리는 노래가 생각나 CD를 꺼내 윤상의 ‘이사’를 반복해 듣고 있다.
‘전부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너의 기억들을 혹시 조금 남겨두더라도 나를 용서해, 날 미워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