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Jan 04. 2018

연말, 전쟁을 치르다

당연한데 당연하지 못한 지금

지난 연말, 시외가족과 모임이 있었다. 나는 남편의 외가 식구들을 매우 좋아한다. 어른들은 늘 밝고 다정하게 대해 주시고, 사촌들은 나이차는 있어도 격조하는 분위기 없이 지낼 수 있어 그렇다. 가장 늦게 가족 구성원이 된 내가 어색할까 싶어 농담도 곧잘 건네주시는 외가 어른들을 뵐 때마다 ‘이런 어른들과 가족이 돼서 참 다행이다’하고 안도할 정도다.


이렇게 좋은 가족들이지만 세대 간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유난히 그 간극을 느낀 것이 이번 연말 모임이었다. 예약된 중식당에 도착해 외가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고, 최근에 본 영화며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변에 흘렀다. 대화 중 1차전이 벌어졌는데, 타깃은 남편이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신 어른들이 남편에게 골프와 테니스를 권유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회사생활하려면 골프랑 테니스 정도는 해야지. 좀 배워두렴.”

“골프를 칠 줄 알아야 윗사람 접대도 하고, 접대 자리를 나가야 승진도 잘 되지.”

“원래 사회생활하면 접대를 안 할 수 없는 거야. 남잔 다 그렇게 일하면서 가정을 지키는 거지.”


여기에 남편은 소신껏 방어를 했다.

“저는 접대하기 싫고, 골프도 치고 싶지 않아요. 접대하려면 골프를 해야겠지만 접대 생각이 없으니 배울 필요도 없어요. 접대해야만 승진할 수 있다면 그건 제가 원치 않는 회사생활입니다.”


확고하게 말했음에도 골프와 테니스 공세는 계속됐다. 워낙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신 분들이고, 아들과 조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씀인 건 알겠지만 웃으며 방어하는 남편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나 역시 남편이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골프를 배우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그 조언들이 껄끄럽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남자니까 골프도 치고 접대도 해야 한다.’는 굴레가 딱딱하게 느껴졌다. 나는 여자지만 일도 하고, 접대는 안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은데 아무도 내게 그런 종류의 조언은 하지 않으니 말이다.




1차전을 겪으며 요리를 계속 먹었더니 금방 배가 불렀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이모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기로 했다. 이곳에서 2차전이 벌어졌다. 1차전이 가벼운 조언과 방어전이었다면 2차전은 조금 날카로워졌다.


남자 어른들은 거실에 앉아 계셨고, 여자 어른들은 주방에서 다과를 준비하셨다. 나와 남편은 사촌들과 방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시어머니가 나를 콕 집어 부르셨다.

“상미야, 손 씻고 와서 과일 깎아라.”


일제히 모두의 눈이 내게 쏠렸다. 나는 남편과 사촌들과 동등한 입장이라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며느리인 나만 콕 집어내 과일 준비를 시키니 불쾌함이 엄습했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데도 그랬다.


시가에 가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내게 이것저것 시키셨다. 그동안 아버지는 거실에서 남편을 데리고 이런저런 훈계를 하셨다. 남편이 내 옆으로 오려고 하면 굳이 붙잡고 훈계를 이어가셨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과일을 깎았지만 머릿속은 지글거렸다.

‘친정에 가면 나와 친정가족은 남편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데, 왜 시가에서는 나한테 당연하게 일을 시킬까?’


친정은 내가 살던 집이고 당연히 모든 물건이 나와 내 가족에게 익숙하다. 그런 곳에서 남편에게 일을 권유하고 싶지 않았고, 익숙한 사람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친정에서도 나는 여자라서 일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시가에서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연히 여자니까, 며느리니까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여기시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며느리라서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동안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받아먹고만 싶진 않아서 함께 준비한 것뿐이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나는 서로 다른 명분을 갖고 부엌일을 한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이 몇 차례 있었는데, 사촌들까지 있는 방에서 나만 데려가 과일 깎기를 시키시니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 남편이 나를 따라 나와 직접 과일을 깎았다. 그리고 2차전이 벌어졌다. 어른들이 다들 한 마디씩 시작하셨다. 특히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몹시 높아졌다.


“네가 왜 과일을 깎니? 얼른 내려놓고 상미가 깎게 놔둬라.”

“네가 이러면 상미가 더 힘들어지는 거야.”

“처음에만 그러는 거지. 나중엔 절대 이렇게 못 할 거다.”

“이런 건 여자들이 하는 거야. 넌 들어가서 사촌들이랑 하던 얘기나 마저 해.”


이 궤변 속에서 나와 남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함께 과일 준비 좀 하면 어때서, 남자라고 과일 깎으면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사촌들과 대화는 나도 하고 있었는데. 게다가 남편이 과일을 깎고 내가 마무리를 하게 돼서 나는 힘들어지기는커녕 아주 편했다. 우리가 말없이 함께 과일을 준비하는 내내 시어머니의 야단은 계속됐다.


다과 준비가 끝나고 모두 둘러 앉았을 때 내게는 몇 마디가 덧붙었다.

“네가 맏며느리잖아. 상미 네가 잘 해야 밑에서 보고 배우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잘 해야 돼. 네가 잘 해야 동생들이 결혼하면 따라 한단 말이야.”




이 말들까지 듣고 나니 그동안 조심스러워 드러내지 못했던 다짐이 더욱 확고해졌다. 앞으로는 더욱 남편과 일을 나눠해야 한다는 다짐이다. 맏며느리이자 집안의 첫 며느리인 내가 며느리란 이유로 차출돼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다른 며느리들에게 보여준다면, 그들도 눈치 보느라 나를 따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구습의 연장을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가 입은 피해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동서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명절이나 가족모임마다 며느리들이 주방에 모여 허덕이는 풍경은 없었으면 한다.


양손이 있는 어른이라면 함께 요리나 다과를 준비해 나눠먹고, 함께 치우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야 준비 시간이 금방 걸리고 일부 가족만 종처럼 일하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아마 거실에서 벌어지는 훈계 시간도 단축될 테니 분위기도 더욱 화기애애하고 좋아질 게 틀림없다.


아마 이 다짐을 실천하려면 몇 년간 더 많은 야단을 듣고, 불편한 다과 준비가 이어질 것이다. 살면서 알고도 참아야 하는 고비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일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르면 당연한데 당연하지 못했던 지금에 대해 시원한 소회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살고 싶어서 나는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 함께 기술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