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Jan 17. 2018

맛있게 홈베이킹

실패 없이 정량으로, 맛있고 따뜻하게.

영단어이면서 모두 주방기기를 뜻하는 ‘오븐’과 ‘가스레인지’는 묘하게 다른 어감을 갖고 있다. 아마 두 기기에서 만들어내는 요리의 종류 때문이리라.


오븐에서는 빵이나 디저트 종류를 주로 만든다. 물론 육류나 생선 요리도 가능하지만 주로 엄마의 요리 방식을 보고 자라서인지 육류나 생선요리는 가스레인지에서 만든다.


결혼 이후 처음 만들어 본 고기나 생선요리도 오븐보다는 가스레인지에서 불 조절을 해가며 만드는 게 편했다. 가스레인지에서는 무언가 끓어오를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불길에 휩싸인 식재료가 바글바글 끓어오르고, 습기가 피어오르는 요리는 가스레인지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 오븐에서 자주 탄생하는 것은 빵이나 쿠키, 그라탱 정도다. 오븐에서 구워내는 것은 주로 빵, 부풀어 오르는 음식이다. 이스트 혹은 베이킹파우더가 들어가 달걀과 버터와 가루가 섞인 물체가 서로 부딪히고 밀어가며 팽창한 음식. 오븐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얼굴을 달리하는 것. 그것이 내게 베이킹이다.




결혼 직후 당면한 문제 중 하나는 ‘내가 요리를 못 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였다. 엄마는 매일 다른 음식을 뚝딱뚝딱 잘 만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에 뜨는 음식을 만드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을 만들지 주제가 떠오르지 않으니 한동안 비슷한 음식을 먹어야 했다.


고민 끝에 남편과 동네 서점에 들러 요리책을 구입하기로 했다. 나 혼자 골라도 상관없지만 남편이 원하는 종류의 음식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서점의 요리책 코너에 가니 정말 많은 요리책들이 등짝을 보이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국과 찌개가 있었구나.’, ‘김밥 종류가 이렇게 많았다니!’, ‘이 책만 따라 하면 나는 볶음밥의 신이 될 수 있겠다!’ 이런 식의 감탄을 하며 몇 가지 요리책을 골랐다.


남편에게도 원하는 요리가 소개된 책을 고르라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남편은 본인 취향에 아주 정직한 요리책을 골랐다. 마카롱 만들기, 카페 메뉴 만들기, 케이크 만들기와 같이 달달한 디저트 요리책만 잔뜩 골랐다.


“여보, 내가 아직 요리 초보니까. 좀 현실적인 요리책을 골라줄 순 없을까?”

“집에서 마카롱 못 만들어?”

“뭐, 어떻게든 만들 수야 있겠지만 내가 아직 그 수준이 아니니까, 좀 쉬운 것으로 고르자는 말이지.”

“그래? 오븐 있으면 케이크 같은 거 다 만들 수 있는 거 아니야? 여자는 원래 그런 거 잘 만드는 줄 알았는데.”


남편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내가 시도할 수준의 홈베이킹 책을 함께 골랐다. 함께 고른 책은 어떤 요리 블로거가 출간한 홈베이킹 책이었다. 데코레이션이 예쁜 케이크,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쿠키, 발효가 생명인 식빵, 크리스마스나 명절에 어울리는 빵과 과자들까지 다채롭게 담긴 책이었다. 이 책을 포함한 요리책 몇 권을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요리책을 둘러보며 어떤 음식을 만들지 구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내 나는 걱정에 휩싸였다. 홈베이킹 요리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메뉴는 설탕이 한 컵 정도, 버터도 한 컵 정도 들어갔다. 이렇게 설탕과 버터가 많이 들어가면 몸에 해로울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이미 제과점에서 사 먹는 디저트와 빵에는 설탕과 버터가 가득 들어갔을 텐데, 막상 만드는 입장이 되니 걱정이 말이 아니었다.

제가 주말에 가끔 만드는 얼그레이 머핀이에요. 으하하하하핫


돌아온 주말, 나름의 고민을 거친 후 요리책에서 말하는 재료를 구입하고 기초적인 수준의 쿠키를 만들었다.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베이킹 중에 쿠키가 제일 쉽다고 했다. 설탕과 버터의 양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일단 버터는 정량으로 가고 설탕의 양은 레시피의 절반을 사용했다.


거품기를 사용해 묽은 재료를 섞고, 설탕과 가루 종류를 나눠 넣고, 주걱으로 썰 듯이 반죽을 섞은 다음, 동그랗게 빚어 오븐에 구웠다. 오븐에서 따뜻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쿠키 완성. 접시에 담아 커피도 한 잔 내려 식탁에 놓고 따뜻할 때 먹어보자며 남편을 불렀다. 우리는 각자 쿠키를 한 입씩 깨물고 서로를 바라봤다. 몇 초쯤 서로를 바라본 뒤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보, 왜 아무 맛이 안 나?”

당황스러운 나도 물어봤다.

“그러게, 왜 아무 맛이 안 날까?”


역시 설탕이 문제였다. 우리가 평소 맛있게 먹는 빵과 쿠키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설탕이 들어가야 어느 수준의 맛이 나는 것이었다. 건강 생각하느라 내 멋대로 줄여버린 설탕은 턱 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처음 만들어본 쿠키는 김치 빠진 김치전, 소스 빠진 피자처럼 밍밍하고 목이 멨다. 상심한 내 표정을 본 남편은 갑자기 연기를 시작했다.


“아니야. 여보. 맛있네! 나 이렇게 맛있는 쿠키 처음이야!”

“여보, 맛없으면 안 먹어도 돼.”

“아니야, 정말 맛있어서 먹는 거야! 쿠키 정말 맛있다!”


대충 씹어 넘기며 맛있다고 마음에 없는 칭찬을 하는 남편을 보니 애잔해졌다. 남편은 쿠키를 몇 번 씹어 삼키고 목이 메는지 자꾸 음료를 마셨다. 그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설탕을 정량으로 넣자니 당뇨나 비만이 올 것 같고, 설탕을 줄여 넣자니 음식 본래의 맛이 안 나고. 나는 설탕의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남편과 피칸파이를 만들어봤어요.

그 이후로 설탕을 조금 줄여 넣거나, 버터를 적게 넣어 몇 번 베이킹을 시도해봤는데 그때마다 맛이 맹탕이었다. 오래전 큰언니가 직접 만든 쿠키를 갖다 주면서 “네가 직접 만들어보면 버터와 설탕 때문에 엄청 놀랄걸?”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제대로 실감이 났다.




설탕과 버터의 양 때문에 놀라버린 나는 홈베이킹 횟수를 줄이는 선에서 타협했다. 그래도 가끔 남편의 생일, 긴 연휴,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에는 눈 딱 감고 정량의 홈베이킹을 한다. 요리책의 지시에 철저히 따르며 만든다. 건강도 중요하지만 맛있게 먹는 순간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니 말이다.


맛있게 만들기 위해 요즘은 약간의 요령을 피우는데, 바로 믹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시중에 판매하는 브라우니, 머핀, 쿠키, 스콘 믹스 등을 가끔 구입한다. 믹스로 만들면 내가 비율을 맞춰 만드는 빵보다 훨씬 맛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하지만 믹스로 만드는 빵은 왠지 커닝하는 기분이랄까. 온전한 홈베이킹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곧 다가올 주말에는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드는 파운드케이크를 구워볼 예정이다. 실패 없이 정량으로, 맛있고 따뜻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