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은 냥 따스하게 지내고픈 겨우살이
올 겨울에는 제법 눈이 왔다. 집안에서 창밖을 보며 “오, 눈이 많이 온다!”라고 습관처럼 말한 날이 여럿 된다. 잔뜩 흐린 가운데 굵은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이 있었고, 옅은 햇빛과 함께 날리는 진눈깨비도 있었다. 비에 섞여 내리는 눈은 어쩐지 불쌍했다. 눈이라는 존재로 세상에 드러난 짧은 순간이 비에 섞여 비의 일부가 돼버리는 것이 가엾다.
눈이 잔뜩 내리고 나면 햇살이 비추고 얼추 녹아야 거리를 걸을 수 있는데, 이번에는 눈에 내린 후 찬바람이 훅 하고 몰아붙였다. 길이 온통 빙판이 됐다. 아파트 단지 안쪽 길은 관리실에서 제설작업을 했고 일부 주민도 제설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다만, 눈이 펑펑 내려도 아침에 일어나면 단지 안쪽은 대체적으로 말끔했다.
단지 안에만 머문다면 건조하게 잘 닦여진 길을 걷겠지만, 출퇴근을 하는 남편이 걱정이었다. 매일 아침 빙판이 서린 돌계단을 내려가 전철역으로 걸어가고, 전철역 인근에는 눈이 녹아 미끈거린다. 이런 계절은 걱정이 만연할 수밖에. 걱정스러운 남편에게 아침마다 “조심해!”라고 하는 말이 부적이 될는지 모르겠다.
추운 계절이니 아침 식탁에 약간의 당분을 허락한다. 대체적으로 무염, 저당의 식사를 준비하는 나지만, 남편의 아침만큼은 힘이 나는 음식을 차려주고 싶다. 가볍게 먹고 나가는 아침식사면서 맛있고, 엔도르핀이 도는 메뉴가 되도록 준비한다. 주로 귤차나 유자차를 싱겁게 타고, 콩가루를 묻힌 떡이나 크림빵을 아침 메뉴로 내놓는다. 가끔 남편이 먹고 싶어 하는 떡국을 끓여주거나, 프렌치토스트를 구워주기도 한다.
아침에는 가급적 염분을 전혀 먹지 않도록 식단을 짠다.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의 혀와 감각에게 자극을 주는 건 해로운 느낌이다. 염분이 없거나 소량 들어간 음식, 당분이 들어가더라도 지독히 달지 않은 싱거운 당분이 필요하다.
유자차를 맛있게 마시려면 밥숟갈로 크게 하나 뜨고 머그컵 가득 물을 붓지만, 아침에 마시는 유자차는 밥숟갈로 반 개 정도를 담고 컵 가득 뜨거운 물을 붓는다. 한 모금 마시면 첫맛은 달지만 끝 맛으로 갈수록 새콤함이 일어나는 맛으로 아침 입맛을 깨운다.
밀크티를 내놓는 경우엔 평소 설탕을 한 티스푼 정도 넣지만, 아침의 밀크티는 설탕 없이 뜨거운 우유에 얼그레이 티백만 담근다. 홍차가 잘 우러나도록 티백을 우유에 퐁당퐁당 넣었다 빼는 과정을 반복한다. 잘 우러난 밀크티에 토스트 한 장만 먹어도 아침은 충분하다.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있는 집은 난방 덕에 훈훈하다. 하지만 오전 10시경이면 난방을 중단한다. 아무리 혹한기가 찾아온들 절대 쉬지 않는 시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환기 시간. 밤새 쿨쿨 자면서 몸속에서 꺼낸 이산화탄소, 아침식사를 하며 켜켜이 쌓인 탄수화물의 냄새를 내보내는 시간이다. 함께 하기엔 불편한 그 냄새들을 창밖으로 쫓아낸다.
난방을 중단해도 두어 시간은 집에 포근하다. 환기 시간에는 도톰한 카디건을 입는다. 온 집안의 문을 활짝 열고 밖의 찬 공기를 들이고, 집안에 쌓여있는 냄새들을 내보낸다. 하루 두 번 십 분씩 환기하는 습관은 겨우내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영하 14도까지 떨어진 날은 하루 한 번으로 족해야 했다. 5분만 열었는데도 집이 얼어붙는 게 실감이 났다.
환기와 함께 창가에 서서 멀리를 쳐다보는 것도 하나의 일과인데, 이때는 저 멀리 쌓여 껌처럼 떨어지지 않는 하얀 눈을 바라본다. 창밖으로 보이는 삼학산의 능선, 저 멀리 공사 중인 철골 더미에 쌓인 눈, 인도는 말끔하지만 미처 치우지 못한 화단의 눈.
눈은 조용히 그 자리에 있되 옹골지게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는 듯, 내려앉은 곳에서 좀체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가끔 도로변에 시커멓게 때가 탄 눈은 미련이 많아서 그렇다. 내려앉은 곳에 머물고 싶어 떼를 쓴 흔적이다.
그동안 마무리를 짓지 못해 몇 년째 미완성으로 갖고 있는 퀼트 매트도 꺼냈다. 끝단 처리만 하면 되는데 마음만 조급하고 좀체 손이 가질 않는다. 솜을 넣어 만드는 작은 담요 사이즈의 매트인데, 이 작업은 미완성 상태로 무릎을 따뜻하게 덮고 해야 할 것만 같아 겨울에 완성하고 싶다. 며칠 전에 다시 꺼내 눈에 잘 보이는 의자 위에 두고 연일 ‘내일부터 시작해야지!’를 되새기고 있다.
추위 속에 새 식구도 맞이했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다육식물 두 그루를 들였다. 식물 키우는 데 젬병이지만(이미 몇 그루 죽었으니) 언제나 다육식물만큼은 키우고 싶은 욕심이 난다. 예쁜 비커에 담긴 오동통한 다육 식물을 사와 거실 책꽂이 옆 칸에 차례로 세워뒀다. 이 장소는 낮 시간 햇빛을 다복하게 마실 수 있는 곳. 만난 계절은 겨울이다만, 다육식물이 우리 집에서 느끼는 계절은 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한창 추운 날이었다. 기온이 쑥 올라가지 않는 한 예쁜 옷 대신 보온이 잘 되는 옷을 입어야 하는 매일이다. 나와 남편은 오리털 코트를 입고, 코트 안에는 셔츠와 니트 등을 겹겹이 입었다. 이날은 나의 사랑스러운 조카들을 만났다. 조카들은 8살, 6살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은 추위를 잘 모를뿐더러 이동 과정에서 늘 차량이나 실내에 있기 때문에 겉옷을 잘 입지 않는다. 차에서 집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바로 겉옷을 훌렁 벗고 엄마의 침대 위에서 깡충깡충 뛰거나 어른들 사이를 겅중겅중 뛰놀았다. 입은 티셔츠마저 더웠는지 조카들은 내복 차림으로 뛰놀았다. 지금 나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천진한 차림새다. 아이의 겨울에 어울리는 차림새이기도 하다.
주말의 어느 하루, 나와 남편은 아파트 단지 뒤의 산책로를 걸었다. 넓은 길의 눈을 다 치우기엔 버거웠는지 절반을 갈라 제설작업을 했다. 남은 절반에는 높이 5센티미터 이상은 족히 될 눈이 쌓여있었다.
이날은 산책로를 걷고 필요한 것을 구매한 뒤 조금 더 걸어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커피와 빵을 먹기로 했다. 산책로를 걷고 필요한 것까지 구매는 마쳤으나, 우리는 베이커리에 가지 않았다. 베이커리까지 가는 길에 몰아치는 바람을 참아낼 재간이 없었다. 몹시 추워서 빨리 집으로 돌아갈 마음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핫케이크를 구웠다. 각자 마실 홍차와 커피를 만들고 두껍게 구운 핫케이크를 접시에 담아 함께 먹었다. 우리는 같은 감정을 토로했다.
“와, 오늘 진짜 춥다!”
오늘은 영하 12도의 찬바람을 무릅쓰고 도서관에 다녀왔다. 아무리 춥다한들 도서 반납일은 지키고 말아야 하는 것이다.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 아파트 단지 내 제설작업이 빨리 진행된 이유를 조금 알아냈다.
색색의 파카를 입은 초등학생들이 건물 입구마다 비치한 눈 치우는 기구를 들고 자기들끼리 눈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눈을 걷어내고, 누군가는 그 눈을 뭉쳐 큰 덩이를 만들어 서로 경쟁하듯 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놀이로 동네가 깨끗해질 수도 있다는 점에 놀랐다. 아이들의 볼은 붉게 상기됐고, 스키 장갑을 낀 아이들은 눈덩이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새해를 맞이한 겨우살이는 이렇게 흐르고 있다. 다육식물 옆에 앉아 봄을 맞은 냥 모른 척하며 따스하게 지내고픈 겨우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