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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視力)을 잃고 눈(觀點)을 얻다

인린이 (인생 어린이) #03

by 딸리아

가만히 앉아 있다가 루테인을 먹고 있는 동료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겨우 한 알이지만 왠지 세상이 환해진 것 같아 잠시나마 기분이 좋다.

하루가 다르게 눈 나빠짐을 느끼며 새삼 어른들이 지저분하게 해놓고 사는 이유를 알겠다. 집이 왜 이리 지저분해 하면 아침에 치웠다고 하는데, 설거지를 했다고 하는데 여전히 뭔가 묻어있고 뭔가 개운치 않다.

하지만 치웠다고 씻었다고 한 그들을 이제야 알겠다. 보이지 않아보니 이제야 알겠다. 거짓말이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게다.


이렇게 물리적 시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빠져 간다. 핸드폰의 폰트 크기가 커지고,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횟수도 줄어든다.

반면 생각지도 않은 수확이 있다.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주위를 본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향수에 젖어 자연을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눈이 자연을 향하고 있다.

봄이면 꽃들의 활기참에 흐드러짐에 흠뻑 젖는다. 길가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노란 수선화가 눈에 들어온다. 초록의 나뭇잎이 색을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인생을 논한다. 예쁘기 그지 없는 이 순간을 지나칠 수 없어 꽃을 산다.

생각지도 않은 나의 변화에 기분이 좋다.


눈을 잃게 되면서 핑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접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책을 보기 위해 안경을 찾고 코에 걸린 안경 무게에 온통 신경이 쓰이고 그러한 과정이 귀찮아 책 읽을 생각조차 안 한다.

책을 통해 얻었던 지식과 경험의 양이 점점 줄어든다. 책을 읽는 것에서 유튜브를 보는 것으로 오디오북을 듣는 것으로 행동이 옮겨간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통영 시민들을 앞에 두고 '비창'을 연주한다. 주민들의 앉아 있는 모습이 화면 속에 내비친다. 그런데 피아노를 백건우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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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다가도 아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지가 뭣이 중요해. 난생 처음일 수도 있는 무대 위 피아노 연주를 바라보고 듣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베토벤이고 비창이고 백건우이고 그 무엇이 중요하랴.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는 이 순간이 중요하지.


살면서 기회를 얻기 위해 온갖 수단과 노력을 다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프로페셔널로 나아갈 기회를 잡기 위해 오디션이라는 기회를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준비한다.


애석하게도 뜻하지 않게 찾아 온 기회에 삶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뭔 개소리?


백건우라는 양반이 우리 마을에 온다더라, 사량도 덕동 물양장에서 피아노를 친다더라 하는 소식을 듣고서 ‘가봐야지’ 하는 것과 ‘온다더라’ 하는 것의 차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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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인다면 새로움에 관심을 갖는다면 기회의 가짓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흥미와 관심은 ‘개인의 취향’이라기 보다 기회가 찾아올 수 있는 물꼬이다.

개취이든 아니든 어느 날 찾아온 변화에 나의 물꼬를 틀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행하는 자, 기회를 얻을 것이다!!!"




눈이 나빠져가는 헛헛함을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 다른 눈을 얻으며 스스로 만족해가며 헛헛함을 달랜다.

애를 쓴다.


<영상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TqtdehDHz_4&list=RDTqtdehDHz_4&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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