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린이 (인생 어린이) #02
네덜란드에서 온 69세 Isabel과 73세 Pedro는 老연인으로 서로를 mi novio(나의 남자친구), mi novia(나의 여자친구)라 소개했다. 얼마 전까지 Pedro는 안경사로, Isabel은 대형선박의 선장이었다고 한다.
Isabel은 Pedro의 대머리 쓰다듬기를 좋아한다. 둘이 앉아 있을 때면 Pedro의 머리에 항상 그녀의 손이 올라가 있다. Pedro는 선장이었던 Isabel이 자랑스러운지 Isabel이 옛날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를 향해 엄지 척, 입 삐죽, 눈 똥글, 고개 끄덕 그러면서 듣는다.
그들은 만난 지 5년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각자 수영과 걷기로 체력을 단련시키고, 매주 토요일이면 Pedro의 집과 Isabel의 집을 오가며 일주일의 회포를 푼다. 똑같이 돈을 내서 주말 장을 보고,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밥 먹고 차를 마시는 것까지를 함께 한다. 경제권은 Isabel이 쥐고 있고, Pedro는 웃으면서 따른다.
2020년 1월 어느 날, 스페인 남쪽 Malaga로 2주 일정의 어학연수를 왔다. 각자의 작은 배낭 속엔 최소한의 옷가지와 세면도구, 노트와 펜 정도가 들어있었다. 그들은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얇은 에코백을 들고, 아침 7시 30분이면 기숙사에서 나와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고 각자의 강의실로 향했다
한 주가 지난 금요일, 매주 있는 레벨 테스트에서 낙방한 69세 Isabel이 울었다. 지금까지 보아 온 활기차고 당당했던 Isabel은 온데간데없고 시험 못봤다며 훌쩍대는 소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연인 Pedro는 그의 옆에서 이해한다는 듯, 알고 있다는 듯, Isabel은 상당히 감성적인 여인이라며 우리를 진정시켰다.
레벨이 달라지고 Isabel과 반이 달라지자 Pedro는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간혹 농담도 던지고 지나온 과거도 얘기하며 우리 반을 이끌었던 그인데 유쾌한 그가 Isabel이 옆에 없다고 책만 봤다. 쉬는 시간이 되어 문이 열리고 Isabel이 ‘¿Cómo estás?’ 하고 Pedro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자 그제서야 Pedro는 웃었다. 내게도 말을 건넸다.
비로소 내가 아는 그들이다.
저녁 나절,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Pedro는 싱긋이 웃으며 그들의 역사적 사건을 내게 말했다. 5년 동안 연인으로 만나왔지만 드디어 이곳 스페인 Malaga에서 합방을 했다는 것이다. 73세 할아버지에게도 여전히 쑥스러운 토픽임에 틀림없다. 허허 웃으며 얼버무리며 긁적이며 Isabel을 쳐다보며 상당히 분주하다. 담담히 들으며 globally 세련되게 반응하려는 나 역시도 쑥스럽다.
Pedro와 Isabel은 수업이 끝나면 그날 배운 스페인어를 함께 복습하고 연습한다. Pedro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 수도원에서 일을 하기로 되어 있다며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함께 온 Isabel은 다가 올 70살 생일을 스페인에서 스페인 사람들과 보내겠다며 스페인어를 배운다.
Pedro가 살며시 공책을 가리키며 Isabel에게 3인칭 동사를 잘못 썼다며 짚어 준다. 그러면 Isabel은 아이쿠 하며 실수했다고, 역시 Pedro는 스페인어를 잘 한다며 서로를 향해 연습하고 대화하고 테스트 했다.
그렇게 2주일을 공부하더니, 73세 Pedro와 69세 Isabel은 그들의 나라인 네덜란드로 떠났다.
우리가 잘 아는 책 제목,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스페인어로 번역하면 Vivir Amar y Aprender 이다. 책 제목과 딱 들어맞는 이들이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이보다 더 충만한 삶이 있을까?
나이만큼 우리의 신체는 녹슬어 바로 입력되거나 출력되거나 하지 않는다. 현재를 받아들이고 그만큼 더 노력하며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빨리 앞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조금씩 어제보다 나은 내일은 바라며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이곳에서 멋진 연인을 만났다.
둘이라서 힘을 낼 수 있고, 둘이라서 도움을 줄 수 있고, 둘이라서 위로하며 함께 한다. Pedro와 Isabel을 동반자로 둔 이들이 부럽다.
둘이어서 좋고 둘이라서 좋은 그래서 보는 이도 함께 즐거운 연인 Pedro와 Isabel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