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의 향유 #16 _ 독서노트
최재천은 책 읽기도 일 하듯이 기획해서 빡세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책을 많이 읽고 그 권수를 높이는 동안 머릿속에 남지 않더라도 반복의 효과로 어느 순간 기억이 나고 활용하게 될 것이다. 기획없이 저질러진 일은 효과성과 효율성이 낮은 것은 분명하지만, 책 읽는 목적에 따라 일 하듯이 하든 설렁설렁 하든 달라질 수 있다. 그는 학자이기에 책읽기가 공부이자 일이며 삶이었고, 게다가 찾는 이는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당연히 기획을 하고 빡세게 읽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일반인들에게 일 하듯이 빡세게 독서하는 것을 추천한다? 글쎄, 일반인들에게 독서는 어떤 의미일지 우선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독서를 하면서 장소가 주는 편안함, 시간적 여유, 책 읽는 행동을 자각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일 하듯이 기획을 하고, 일 하듯이 페이지와 시간 계산을 하고, 일 하듯이 책 속에서 인사이트를 뽑아내야 한다면 읽는 즐거움이란 게 있을까.
책 읽기를 ‘삶을 즐기는 어떠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건 일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제대로 빡세게 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엔 전자책으로 읽다 보니, 직접 책에 동그라미를 치며 그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남기기가 어렵다. 메모 기능이 있지만, 전체 레이아웃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순간을 담기엔 아쉬움이 있다. 그러면서도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종이책을 곁에 두고도 글씨 크기, 무게, 이동의 편리함 때문에라도 전자책을 선택하게 된다.
책 읽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 느끼는 여유, 감정도 있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고, 모르고 지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며,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감정을 경험하는 등 일상과 다른 새로움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왜 이런 생각을? 아 이런 것도? 그렇지 하며 하이라이트한 부분을 가져와 봤다.
1. 무얼 가르쳐야 할까요?’를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인데요 (page 16)
글쎄, ‘가르치다 = 배우다’ 라고 단순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무얼 가르쳐야 할까요? 는 교사나 국가의 입장에서의 질문이고,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는 학생이나 시민의 입장에서의 질문이다. 국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제한된 시민, 실용적인 시민을 양성하고자 가르친다면, 시민은 개인의 삶을 위해 돈과 성취,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고자 한다.
최재천은 미국 하버드를 중심으로 교육관을 설명한다. 그는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생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면에서는 동의하지만, 교육 전체 시스템적으로 접근하지 않아 툴툴대는 듯 불만으로 들렸다. 나라의 다름, 지배 세대 교육관의 다름, 현 정부 권력자와 개인 최재천 경력의 다름 등을 고려해서 접근을 했다면, 구조적 다름을 조율해서 방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2. 우리 국민의 60퍼센트 이상이 “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 스스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답을 했어요. 그런 생각이 ‘서양 교육을 받아서 습득한 합리성인가요?’라고 반문하면 아닐지도 몰라요. (page 15)
질문 문장이 다소 이상하다. 앞서 가르치는 것을 배우는 것으로 전환해서 답하듯이.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자. 국민들이 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과 배려를 서양 교육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서양 교육에 의해 잘못 길들여졌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책은 문답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논리적 비약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답자들의 사고가 서양 중심적인 편협한 시각을 반영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3. 한 아이가 “우리가 풀어야 하는 걸 x라고 두자.” 하면, 다른 아이가 “x로 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뭐지? 아는 걸 a와 b라고 할까?” 하고 생각을 나눠요. 이 과정이 수학이에요. 상황을 관찰하고 구조를 분석하고 그것에 요소들을 부여해서 관계를 찾아가는 겁니다. (page 35)
우리의 수학이 너무 깊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학습의 사고 전개가 아닌 문제풀이식이어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와 교수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대화 속에서 나온 예시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수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프로그래머로 1년 여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는 기업교육 분야로 방향을 전환하여 HRD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나는 분석을 통해 의미와 관계를 찾는 것을 즐기며, 나름 잘한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런 나의 특성이 수학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학에서 알고리즘, 그리고 컨설팅으로 이어지는 나의 직업적 경로가 나름 연관이 있어 현재 즐기고 있다. 학부 4년 동안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았더라도 수업시간을 지배했던 수학적 사고체계가 지금 업무의 Foundation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4. 생태사상가인 사티쉬 쿠마르 Satish Kumar를 인터뷰할 때 큰 힘을 얻은 말이 있는데요. 제 말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다재다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특질은 다재다능함에 있다.’ 그는 강조했어요 (page 102)
인간의 특질은 다재다능함에 있지만, 그 다재다능함을 얼마나 남들과 다르게 애써서 보이는가가 특별한 사람을 만든다. 선과 후가 바뀌었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당신은 남들 속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이다. 만약 그렇다면 다재다능한 능력을 전략적으로 남들과 다르게 발휘할 수 있어야 행복을 찾아야 한다. 반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자신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활용하여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벼랑으로 몰아넣는 습관을 들이고, 이를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착각하여 빡세게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 힘든 삶을 나름 즐기는 것은 아닌가 싶다.
5. 요즘은 정보의 파편을 모아서 하나의 상으로 완성할 수 있는데, 예전에는 책처럼 잘 짜인 완성본을 읽어야 제대로 봤다고 여겼잖아요 (page 118)
‘쓰기’ 능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예전에는 책처럼 잘 짜인 완성본을 읽고 외워 시험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내보이면 됐는데, 지금은 정보의 파편을 사용자가 논리적으로 모아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하기에 논리적 글쓰기가 필요하다.
순간순간 성찰적 사고를 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정보를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정보로서 근거로서 사용하려면 평소 자기만의 사고 매트릭스(체계, 트리구조 등)를 가지고 있다가 눈에 띄는 정보를 적절한 자리에 배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습관적으로 기억 속의 사고 매트릭스를 펼쳤다가 정보를 입수함과 동시에 조직화하는 과정이 자동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6.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서 자기 행동에 반영하는 자료로 쓰는 것을 단순한 차원이지만 ‘생각’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기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을 글과 말을 통해 배워서 한다(page 121)
'경력탐색'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두 권의 책을 읽고 reflection paper를 쓰도록 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reflection이란 개념을 단순히 읽은 내용에 대한 감상이나 느낌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성찰적 사고란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를 말한다. 이는 단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가 있는 연속적인 사고를 말한다. 존 듀이는 성찰적 사고를 ‘어떤 신념이나 지식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그 원인이나 궁극적인 결과를 적극적이고 끊임없이 주의깊게 고려한 것’으로 정의했다. 또한 Kolb는 구체적 경험, 성찰적 관찰, 추상적 개념화, 능동적 실험의 과정을 통해 학습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숙고함으로써 문제 상황에 필요한 지식과 이론을 정립할 수 있다.
학생들이 ‘일과 삶’에 대한 책을 읽고, 수업시간에 배우는 ‘일’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기 바란다. 자신의 삶을 위해 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개념, ‘일’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다음은 최재천 교수의 현재를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 제가 구멍이 뻥뻥 뚫린 인생을 살아왔지만 나름대로 과정을 지나왔고, 무언가를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깊이 이해하고 체계를 잡아내는 결과를 냈습니다.
- 조금이라도 더 힘을 가진 쪽이 조심해야 해요
-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조건과 그 시간을 제법 잘 운용했다는 데 있어요
한 시대의 전문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공부와 도전, 극복의 굴레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기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