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딸리아

1970년,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태어난 나는, 동갑내기 부모님 아래에서 세 자매와 함께 자랐다. 부모님은 아들을 원하셨지만, 하늘은 딸 넷을 안겨주셨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야망도 탐욕도 없던 부모님. 딸 넷을 키우는 일은 버거웠고, 서로를 알아갈 겨를도 없이 결혼한 두 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셨다. 네 명의 딸들은 ‘82년생 김지영’보다 이전에 태어났으니, 일상 속에서 겪는 성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은 말해 뭐할까 싶다.


1980년대의 교실에는 손찌검과 몽둥이가 일상처럼 오갔다. 교사들의 권력과 압박 속에서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눈치를 봐야만 했다. 전교 석차가 학교 게시판에 나붙었다. 교실에서는 성적대로 자리가 정해졌다. 4당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니 하면서 모든 것이 대학 입시와 성적에만 올인하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하는지도 모른 채, 학교-도서관-집을 오가며 책 속에서 방황을 했다.


학교 밖에서는 희뿌연 최루탄 가루가 날렸고, 교실 안에서는 물 묻힌 손수건을 코와 입에 갖다 대고 수업을 했다. 저 멀리서 대학생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힘들게 들어간 대학에서 무슨 일로 돌을 던져 가며 시위를 하는 건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1983년 농구대잔치 출범 등, 연일 TV에서는 야구와 농구 중계 방송이 흘러나왔다. 야구는 ‘OB 베어스’를 응원했고, 농구는 ‘현대’ 이충희를 응원했다. 형제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다를 땐, 팀과 선수들의 전력을 브리핑하며 기를 쓰고 달려 들었다. 경기장 밖에서까지 이기려고 했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내 일기장에는 그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험과 공부, 친구들과의 소소한 일상, 그리고 가끔은 사춘기의 고민까지. 그 속에서 나는 성장했고, 방황했다.


각 페이지를 넘기면서 드는 생각은 ‘참 잘 자랐다, 많이도 힘들었네’, 내가 나를 다독인다. 헤집고 빠져나올 수도 없었을 텐데, 그 시간들을 어찌 잘 버텼을까, 고민하고 괴로워하다 가도 엄청난 회복력으로 다음 날을 살아냈던 일기장 속, 나를 보듬어주고 싶다.


1980년대,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과 그 시절을 추억하며, 잠시나마 다 함께 위로를 받고 싶다.


다들,

그 시절, 그렇게 자라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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