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겨울, 우리 집에서는 언니의 대학 입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1981년부터 1992년까지 시행된 학력고사는 현재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전국 규모의 대학입학 선발 시험으로, 시험 당일에는 전국이 긴장감 속에 숨죽이는 분위기였다. 11월 22일에 치른 학력고사는 그 해 특별히 어려웠다고 했고, TV에서는 300점이 넘는 학생의 비율이 3%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시험 전날, 나는 언니에게 엿을 사주었고, 시험 당일, 엄마는 학력고사 시험장까지 언니와 함께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셨다. 당시 대학입학 학력고사는 공부하는 이유였고, 고작 중학생인 내게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삶의 목표가 되었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아직 '어느 대학, 어느 과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은 없지만, 지금부터 기초를 튼튼히 다져서 좋은 대학, 좋은 과를 선택할 것이다. 내게 대학 입시는 멀었지만 나중에 후회 말고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
12월 말, 언니의 학력고사 성적이 발표되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성심여대(현 가톨릭대학교)와 숭전대(현 숭실대학교)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불안한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1984년 1월 18일, 마침내 기다리던 언니의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그날 저녁, 할머니께서는 우리를 종로 5가 의류도매센터로 데려가셨다. 언니에게는 3만 5천 원짜리 반코트와 7천5백 원짜리 청바지를, 나에게는 1만 원짜리 코트를 사 주시며 축하해 주셨다.
그리고 며칠 후, 뜻밖의 편지가 도착했다. 큰아버지께서 쌀 한 가마니를 보내주신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덧붙임과 함께.
평소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는 욕심 많은 분으로 알려져, 가족 누구도 쌀 한 톨 받아본 적 없던 큰아버지였다. 그런 큰아버지가 언니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이런 큰 선물을 보내시다니! 그때서야 나는 대학 합격이 얼마나 큰 경사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1980년 대 당시 대학생은 지식인 그룹으로 사회적 책임감과 역할이 강조되었고, 가정과 지역사회에서는 큰 자부심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대학 진학은 계층 상승의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전문직이나 안정된 직장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딸 넷을 둔 부모님에게 맏딸의 대학 합격 소식은 아들을 둔 집안 못지않은 자부심이 되었다.
그러나 합격 소식은 반짝하다 사그라들었고, 바로 등록금 걱정 모드로 전환되었다. 주위 어르신들도 축하 말씀과 함께 등록금 걱정을 함께 해 주셨다.
“어떡하니, 등록금이 한 두 푼도 아닌데”
당시 언니 대학교 등록금은 65만 원이었고,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10만 원 이상이 들 꺼라 했다. 나는 중학교 공납금으로 4만 8천 원을 냈고, 엄마의 하루 일당은 5천 원이었다. 1988년에 대학을 졸업한 언니의 첫 월급은 28만 원이었다.
당시 언니의 대학 등록금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큰 금액이었다. 아니나 달라 아빠는 언니의 대학 합격 소식이 들리기도 전에 이미 집을 처분한 상태였고, 우리 가족은 곧 방 두 개 딸린 반지하 전세로 이사를 했다. 그 후로 엄마는 아빠와 싸울 때마다
“그렇게 잘 났는데, 그 집 하나 건사하지 못했냐”라고 아빠의 무능력을 탓하신다.
어린 나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대학에 갈 때는 등록금이 100만 원쯤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를 못하면 어떡하지? 공납금이 아깝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 후로도 일기장 곳곳에 등록금 걱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난 공부만 하면 등록금 걱정이 없게 되었다. 지금이 아니라 대학교 등록금을 말하는 것이다. 그 악랄하고 무서운 우리 친할아버지께서 대주실 모양이시다. 우리 집 경제 사정보다 퍽 좋은 편인 할아버지댁, 한 달 방세가 80만 원가량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내외분이 살아가는 데는 충분한 돈이다. 그래서 대학교만 들어가면 대주신다고 하셨는가 보다.”
1983년 겨울, 그렇게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학생이 탄생했다. 우리 가족에게 대학은 단순한 배움의 장이 아니었다. 가난한 살림살이 속에서 더욱 간절했던 꿈이었다. 쌀 한 가마니로, 새 옷 한 벌로, 그리고 집을 팔아 마련한 등록금으로, 언니는 마침내 대학생이 되었다.
**당시 고등학교 졸업자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27.2%, 취학률은 11.4%에 불과했다. 2020년의 진학률 72.5%, 취학률 70.4%과 비교하면, 그 시절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하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