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부 여중생의 남다른 책임감

by 딸리아

서울 마포의 한 여자중학교. 이른 아침 등교 시간, 나는 예절부 완장을 찬 재로 교문 앞에 서 있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향해 아침 인사를 건넨다. 학생들의 두발과 화장 여부, 복장 등을 꼼꼼히 점검한다. 만약 규정에 어긋나는 사항이 발견되면, 해당 학생은 교문에 함께 서서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받거나, 담임선생님께 통보되거나, 벌점을 받는 등의 조치를 당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생의 교복 자율화는 1983년 3월 2일부터 시행되었고, 사복 착용으로 인한 빈부 격차에 따른 위화감, 가계 부담 증가, 생활지도 어려움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1986년 9월 1일부터는 각 학교장이 교복 착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정책이 변경되었다.


1980년대 학교에서는 체벌이 자주 이루어졌고, 엄격한 규율은 일상이었다. 교사의 발길질에 학생이 교실 저만치로 튕겨져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대걸레 자루를 몽둥이 삼아 복도 바닥을 치며 순찰하는 교사도 있었다. 시험성적이 지난번보다 떨어진 만큼 엉덩이를 맞거나,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반성을 해야 하는 일이 교실마다 일어났다.


과산화수소수로 머리카락 전체 또는 일부를 탈색한 학생, 화장을 하거나 매니큐어를 바른 학생, 소위 ‘날티나게’ 입은 학생들은 교문이나 현관에서 학생부 선생님에게 걸렸고 어김없이 바로 얻어맞았다. 교사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머릿속은 ‘오늘 내가 뭘 잘못했나? 이렇게 입었다고 혼나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에 띄는 외모나 행동은 늘 단속의 대상이었다. '예절부, 선도부'라는 이름 아래 학생이 학생을 지적하는 일이 당연시되었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덜 지적받거나 가벼운 훈계로 끝났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인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무참히 짓밟히곤 했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그들은 교문이나 복도에 한 줄로 서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얻어맞아 뻘겋게 달아오른 뺨을 하고서도 이따금 고개를 돌려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생에게 예절부 활동은 많은 시련을 주었다. 아침 일찍 등교해야 했고, 졸음과 싸워야 했고, 어쩌다 준비물을 깜빡하더라도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3학년 언니들이 규정 위반으로 적발되어 내 앞에 서 있을 때였다.


“3학년 언니들이 불만을 터뜨리며 따지기 시작하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니들은 우리가 1, 2학년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듯 대들었고,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떤 언니는 욕설을 퍼부으며 "이게 뭐가 어떠냐?"라고 항의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예절부로서 학교의 규율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예절부 활동은 친구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예절부는 성적 좋은 학생이 지원할 수 있었는데 내 친구는 아니었다. 완장을 찬 내 모습과 그렇지 않은 친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났다. 친구를 일부러 멀리한 것도 아니지만, 소속감이 우리 사이를 조금씩 멀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친구가 불편할까 봐 조심스러웠고, 친구는 예절부원들과 함께 있는 나를 보며 왠지 어색함을 보였다.


예절부에는 나름의 위계질서가 있었다. 어느 날 선배 언니들이 크게 화를 내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확히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2학년 언니들은 1학년인 우리에게 무릎을 꿇게 했다. 황당하고 부당한 마음에 속이 부글거렸는데, 하필이면 전날 먹은 변비약의 효과가 그 타이밍에 나타났다. 나는 급박한 얼굴빛과 떨리는 목소리로 선배언니들에게 가도 되냐고 간절히 요청했다. 쥐가 난 다리를 질질 끌며 화장실로 향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와서 다행이다'라고 쾌재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1, 2학년의 어린 학생들이 서로에게 무릎을 꿇리고 꿇고 했다는 게 우스우면서도 무섭기까지 하다. 이런 행동은 어디선가 보고 배웠을 것이다. 누군가는 묵인했을 것이다.


그런 어마무시했던 예절부 생활은 역설적이게도 내게는 첫 사회생활이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었고, 1년 차이였지만 엄연한 선후배 관계가 있었다. 학교가 정한 규칙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조직(예절부)에서 '나'라는 개인이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늘 고민이었다.


당시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난 싸우는 것이 제일 싫다. 그러나 언니들이 항의를 할 때는 나도 맞서서 대항해야 한다. 그 이유는 내가 예절부인데 순진하게 가만히 있으면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예절부 전체가 욕을 먹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분명 울게 될 것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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