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걷기 _ 피드먼트 공원 산책

여행의 이유

by 딸리아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드넓은 대지를 걷는다.

주위의 뾰족한 고층빌딩들이 이곳이 미국임을 말해준다.

아침 8시 30분,

17번가에서부터 10번가까지 길게 뻗은 공원에는 조깅을 하거나, 개와 산책하는 이들뿐이다.

그들과 같은 무리인 양,

원래부터 이곳에 살았던 주민인 양,

나도 걷고, 숨 쉬고 있다.

몸과 행동에서 자연스레 여유가 묻어난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길 바라서도 아니고,

낯선 문화나 멋진 풍경이 내 삶을 바꿔놓을 거라는 기대도 없다.

나는 그저 떠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채,

그렇게 낯선 공항에 내린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행은 성장이라고.

교훈을 얻고, 시야가 넓어지고, 삶이 깊어진다고.

20대, 30대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뭔가를 놓칠세라 메모하며 부지런히 다녔다.

여행은 책에서 보지 못한 것을 알려주었고,

내가 누구인지 몰랐던 시절,

나를 찾아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여행도 변했다.

40대가 되었을 무렵, 나의 여행은 더 이상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몸에 새겨진 주기처럼,

정해진 시기에 떠나야만 하는 무엇이 되어 있었다.

성장도 깨달음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을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매년 방학이 되면 어디론가 떠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떠난다.

낯선 장소에 나를 놓아두는 것.

익숙한 언어와 환경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지켜본다.

그렇게 나는 나를 인식하고,

내 삶을 다시 확인한다.


이번 여행도 그렇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때가 되었기에 이곳에 와 있다.

어디에나 있는 공원을 걷고,

빌딩숲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바라본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걷고, 바라보고,

때때로 멈추는 것.

그래서인가,

많은 이들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묻지만,

딱히 뚜렷한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어느 오후, 훔볼트 대학의 잔디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을.

그때 나는 살아 있었고,

그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여행은 실존을 위한 행위이다.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삶.

고도가 오지 않더라도,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의 삶이듯,

나는 그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때론 떠나기 전, 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밀려온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알면서,

또 떠날 것을 알면서,

이 반복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또 짐을 싸고 어딘가로 향한다.

일상으로 가려진 나를 드러내기 위해,

익숙함으로 잊힌 나의 감각을 꺼내기 위해.


이제 나는

의미를 묻지 않는다.

그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알 수 없고,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 속에서,

내 삶은 어쩌면

이때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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