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다들 저마다 ‘작은 성공’ 하나쯤 챙기고는, “아, 잠깐 쉬자!” 하는 마음으로 이번 여행에 모인 듯했다.
이번 기수는 총 25명의 한국인. 여자 17명, 남자 8명으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직업도 정말 가지각색이다.
퇴직하신 분들, 파릇파릇한 대학생들, 젊은 의사들, 공무원들, 그리고 교사, 간호사, 회사원 등등 다양하게 구성됐다.
한 방에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지냈는데, 대부분은 팀을 짜서 왔다.
깨 볶는 젊은 부부 한 쌍, 65세 이상 퇴직 남성 어르신 두 쌍, 40대 여성 둘이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나는 스페인어 수업에서 만난 ‘찐친’과 함께 왔고, 대학생 중엔 교환학생을 마치고 온 여자 대학생 둘이 한 팀이었다.
혼자 온 분들도 꽤 있었는데, 나중에는 다들 친해져서 서로 인생샷 찍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의사 세 분 중 두 분은 ‘의료대란’이 터지자 “아 몰라, 여행이나 가자!” 하고 떠난 케이스였고,
한 분은 의사 국가시험 합격 기념으로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이 여정을 택했다.
공무원 세 분은 사무관 승진하고 해외 석사 과정 중이었다.
다들… 너무 훌륭하지 않나?
여행 초반에는 25명이 우르르 몰려다녔다.
남미는 척박한 땅이라 갈 만한 곳도 한정적이고, 숙소나 버스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며칠을 그렇게 붙어 다니다 보니, 나이대별 특징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20대: 인사성 밝고 말도 예쁘다. ‘님’ 자 꼭 붙여가며 예의 바르면서도, 할 말은 또 똑 부러지게 한다. 신세대 바이브, 인정.
30대: “나, 인생 좀 살아봤지” 하는 묘한 여유와 함께, 은근 눈치를 본다. 발은 뻗되 절대 선은 넘지 않는다. 함께 일하면 정말 든든할 스타일.
40대: “이제 나이 좀 먹었지…” 하면서 점잖은 척하지만, 윗세대 앞에선 애교 만점. 슬쩍 어리광 피우는 모습은 은근히 귀엽다.
50대: 아랫세대 보며 ‘나도 저랬지’ 하고 회상에 잠기는 듯. 뭐든 귀엽게 바라보는 여유가 있다. 진짜 ‘어른’의 포스.
60대: 꿀팁 나눠주고 싶어 하고, 농담으로 분위기 띄우는 데 주저함이 없다. “나 여기 있소!” 하고 존재감 제대로 뿜어내신다.
결국 우리 모두, 자기 나이만큼의 방식으로
“나 여기 있소!”
하고 부지기수로 외치고 있었다.
공자의 말씀 중에 나이대별로 삶의 단계를 나눈 구절이 있다.
지금 들어도 참 절묘하다.
삶이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 비로소 형태를 갖추는 것 아닐까.
함께 여행한 분들을 그 기준에 맞춰 본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약관(弱冠, 20세): 사회적 책임감이 막 움트는 시기
→ 우루밤바 원주민과 양팔 벌려 춤추고, 어르신들을 존중하며 따르던 모습. 참 예뻤어요, 20대 여러분. 즐거우셨죠?
이립(而立, 30세): 스스로 서서 도덕적으로 단단해지는 시기
→ 상황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분위기를 이끌던 30대. 여러분 덕분에 여행이 훨씬 단단해졌습니다.
불혹(不惑, 40세):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시기
→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내면의 갈등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 40대. 이상과 현실은 참 다르지만… 괜찮아요. 그 애씀만으로 충분합니다.
지천명(知天命, 50세): 하늘의 뜻을 깨닫는 시기
→ 아랫세대를 바라보며 삶을 되돌아본 나를 포함한 50대. 무엇을 느꼈고, 앞으로 무엇을 하시렵니까?
이순(耳順, 60세): 남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기
→ 조언도 아끼지 않고, 유쾌하게 존재감을 발산하셨던 60대. 남의 말도… 잘~ 들어주시는 거 맞죠? 그쵸?
그런데 말이다,
공자님 말씀대로만 된다면 세상 얼마나 평화롭겠나.
실제로 여행을 하다 보면, 웃지 못할 일도, 마음이 쓰이는 순간도 생긴다.
가령, 60대 팀만 해도 그랬다.
- ‘주황잠바 팀’은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세상 조용~해져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알고 보니 서로 싸우셨단다. 헐...
- ‘착한 아저씨 팀’은 샤워실에서 미끄러져 신장에 출혈이 생겼고, 결국 여행을 조기 종료하고 귀국하셨다.
- '여행을 많이 다녀보셨다는 어르신'은 30대 룸메이트와 도저히 맞지 않아, 추가 비용을 내고 결국 혼자 방을 쓰셨다. 그 마음, 백 번 이해된다.
역시 인생은, 공자님 말씀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여행은, 교과서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부딪혀 봐야 안다.
모든 것이 예측불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