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도시 _ 마추픽추

문명과의 조우

by 딸리아

Agricultural Terraces

누군가에겐 인생의 버킷리스트일지 모르지만, 나는 마추픽추에 두 번이나 오게 됐다. 첫 방문은 5년 전, 친구와 함께였다. 철저히 준비했음에도 친구는 고산병에 걸려 병원 신세를 졌다.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을 때까지는 괜찮았다. 다행히 올라오기 전 사둔 산소통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페루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도중, 친구는 기절했고, 우리는 급히 택시를 타고 동네 의원으로 향했다. 뚜렷한 치료법은 없었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다음날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실이 10층이라는 점이 더 아이러니했다. 결국 리마행 비행기를 타자마자 증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때 택시 안에서 본 밤하늘의 별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친구는 혈관이 터질 것 같다고 죽을 듯 호소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번에 다시 오게 됐지만,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경외감도, 설렘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어쩌면 위치, 규모, 기술적인 측면에서 특별히 새롭거나 감탄할 만한 요소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델피 신전도 깊은 산속에 있고, 그 규모도 압도적이지 않았다. 마추픽추의 석조 기술도 15세기 수준이면 구현 가능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잃어버린 도시’라는 낭만보다는, ‘충분히 가능한 건축물’이라는 현실이 먼저 다가왔다.


1. 가이드를 통해 본 마추픽추

마추픽추는 자연과 역사가 겹쳐진 독특한 공간이다. 안데스 산맥 깊은 능선 위에 자리한 이 고대 도시는 거대한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도시처럼 보인다. 처음 왔을 땐 구름에 가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반면 이번에는 날씨가 맑아, 도착하자마자 도시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잉카인들은 마추픽추를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천문학적·종교적 의미를 지닌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겼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로 지은 건물들은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특히 자연 지형에 건축물이 완벽히 어우러진 모습은 그들의 지혜를 실감하게 한다. 태양의 위치를 고려해 설계된 구조물은 잉카의 천문학 지식을 보여주고, 건물 간 기하학적 배치는 수학적 정밀함을 드러낸다. 돌과 돌 사이의 틈이 거의 없는 맞물림 구조는, 지진에도 끄떡없을 듯한 안정감을 준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걷는 내내, 잉카 문명에 대한 그의 지식과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마추픽추를 살아 있는 공간처럼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그의 말투, 자세, 눈빛까지 이 문명에 대한 깊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설명이 끝날 무렵, 자연스럽게 팁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마추픽추는 약 1450년경, 잉카 제국의 황제 파차쿠텍 치세 시기에 건설된 고산 도시로 알려져 있다.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종교적 중심지이자 왕족의 휴양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1532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하면서 제국은 빠르게 무너졌고, 정치·경제 중심지들은 스페인에 의해 장악됐다.

그럼에도 마추픽추는 정복자들의 손길을 피한 채,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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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복자의 시야에서 벗어난 도시

첫째, 마추픽추는 해발 약 2,400미터의 깊은 산악 지대에 있어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정치·경제 중심지에 집중했기 때문에, 외딴 고지대 도시까지 일부러 진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둘째, 스페인의 침입이 시작되면서 마추픽추의 거주자들이 자발적으로 도시를 떠났거나 폐쇄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마추픽추에서는 스페인 점령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정복자들이 이 도시에 아예 접근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셋째, 잉카는 문자가 없는 문명이었고, 정보는 키푸(quipu)라는 매듭 기록 방식으로 전달됐다. 이 방식은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고, 마추픽추의 존재를 알았던 후손들이 침묵했을 가능성도 있다. 도시가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거나, 외부로부터 보호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추픽추는 규모나 위치 면에서 잉카의 수도도, 경제 중심지도 아니었기에 스페인 입장에선 전략적 관심 대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마추픽추는 정복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수 세기 동안 잊힌 도시로 남을 수 있었고, 파괴되지 않은 채 보존될 수 있었다.

20241226_마추픽추_c_153714.jpg 마추픽추 Sacred Rock

3. ‘잃어버린 도시’라는 마케팅 전략에 대한 의구심

20세기 초 서구 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마추픽추는, 정교한 석조 건축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유로 “잃어버린 문명”의 상징처럼 포장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곳은 초자연적 신비와 전설이 깃든 장소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잡한 수로, 지진에 강한 구조물, 정교한 건축 기술 등은 당시 잉카 문명이 충분히 구현할 수 있었던 수준이었다. 마추픽추가 외부에 오랜 시간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숨겨진 도시’라는 환상을 강화했고, 서구 탐험가들의 서사가 이 신비를 더욱 부풀렸다.

오늘날 마추픽추는 페루의 대표 관광 자산이자 국가 이미지를 떠받치는 브랜드가 되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잃어버린 도시’ 같은 과도한 마케팅은 비판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추픽추는 신비로운 전설보다, 잉카 문명의 기술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게 더 정확하고 의미 있다.

20241226_마추픽추_b_145729.jpg 마추픽추 Temple of the Three Windows

4. 15세기 잉카 문명이 고대 문명으로 불리는 이유

학술적·역사적 맥락에서 "고대 문명"이라는 표현은 기원전 문명, 예를 들어 황하, 나일,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과 같이 서구 전통에서 고대라고 분류하는 문명들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이들은 기원전 3000년경에 시작되어 고대 문명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반해 잉카 문명은 15세기,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조선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잉카 문명이 15세기에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이룬 건축, 사회 조직, 기술적 성취 등은 현대의 기준에서 볼 때도 매우 독특하고 깊이가 있는 성취로 평가된다. 서구 역사학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난 문명, 즉 현대와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세계관을 지닌 사회를 "고대"라고 칭한다. 잉카 문명은 유럽 중세 이후의 세계 질서 속에서도 현대적 국가 체제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와 기술, 사회 시스템을 보유했기 때문에 "고대 잉카 문명"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이는 잉카 문명이 외부 문명의 이기에 크게 노출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문화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20241226_마추픽추_c_153155.jpg 마추픽추 Agricultural Terraces & Guardhouse

5. 유럽 중세 국가와 잉카 제국의 구조

① 정치 구조와 중앙집권

유럽 중세는 여러 봉건 영주와 교회 권력이 서로 분산되어 있는 체제였다. 각 지방의 영주가 상당한 자치권을 행사했고, 중앙 정부의 통제가 미흡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잉카 제국은 “사파 잉카”라는 절대 권력자가 모든 행정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했으며, 제국 전역에 걸쳐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과 도로망(취푸 혹은 미타 시스템 등)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② 기록과 의사소통 방식

중세 유럽은 라틴어나 각국의 언어로 문서와 기록이 남아, 역사적 연속성이 비교적 잘 유지된 반면, 잉카는 체계적인 문자가 없이 키푸라는 매듭 기록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했다. 이로 인해 잉카의 사회와 제도는 외부에 덜 알려졌고, 후대에 '잃어버린' 신비한 문명으로 인식되는 데 일조했다.

③ 종교와 이데올로기

유럽은 기독교,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향 아래 사회 전반에 깊은 신앙과 도덕 체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비해 잉카는 태양신을 중심으로 한 다신교적 종교관을 갖고 있었으며, 종교와 정치가 밀접하게 결합된 독특한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

20241226_마추픽추_c_151606.jpg 마추픽추에서 내려다 본 우루밤바 강(Río Urubamba) 계곡

스페인 침략과 식민지 체제 변화로 인해 잉카 제국은 여러 국가로 분열되었지만, 그 문화와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날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잉카 제국의 후손들은 국경을 넘어선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어오고 있다. 쿠스코, 우루밤바, 푸노, 라파즈, 지리적으로는 흩어져 있어도, 문화적으로는 하나의 ‘잉카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 리마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내가 어느 나라에 와 있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수 세기를 넘어 전해져 내려오는 잉카 정신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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