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의 조우
이 미소를 어디서 보았던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아름답고 따뜻했다. 나를 알고 있는 듯,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다. 이 대륙 전체를 품고 있었다.
TV 속 예수상은 늘 하늘에서 찍은 장면이었다. 뻥 뚫린 푸른 하늘 아래, 예수상이 두 팔 벌린 채 서 있고, 발 밑에는 빼곡한 점처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곳엔 꼭 한 번 오고 싶었다. 신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발밑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느끼고 싶었다.
남미 대륙 인구의 대다수는 천주교도다. 그 믿음은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15세기,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은 대서양 건너편으로 함대를 보냈고, 콜럼버스는 그 여정을 ‘신대륙의 발견’이라 불렀다.
세종이 한글을 반포하던 무렵에, 그들은 칼과 십자가를 들고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은 1492년, 조선은 성종이 제위하고 있었고,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복은 1532년으로 중종이 유교적 이상 정치를 한창 해보려던 시기였다.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피사로는 몇 년 되지 않는 지배 기간 동안에도 곳곳에 성당을 세웠다. 성당은 정복의 증거이자, 신의 이름으로 행한 당위적 장치였다.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곳곳에 그 시절의 성당이 남아 있다. 도시 한복판엔 아르마스 광장이 있고, 그곳엔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축제를 열고, 기도를 드린다.
하늘을 섬기던 이들에게, 이제는 마리아의 아들을 섬기게 한 셈이다. 자연과 조화 속에 살던 이들이, 이제는 신의 초상화 앞에 무릎을 꿇는다. 사람에게 눈을 돌려야 했고, 정복자에게 복종해야 했다. 그건 단순한 종교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전복이었다. 그들은 종교를 전파한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변형을 꾀하였다.
수 세기 동안 그 변화는 일상 속에 뿌리를 내렸다. 축제, 성당, 이름, 교육, 심지어 음식에 이르기까지, 천주교는 남미인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신은 존재하고 있었다. 더 이상 정복자의 신만은 아니었다. 언어를 빼앗긴 자들이 그 언어로 다시 노래를 부르듯, 신도 그렇게 그들의 방식으로 다시 쓰였다.
페루에서는 검은 피부의 예수가 민중의 신으로 떠올랐고, 멕시코에서는 토착 여신의 얼굴을 한 과달루페 성모가 민족의 상징이 되었다. 피부색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고, 기도하는 방식이 달라졌지만, 그 안에는 그들이 다시 만든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거대한 예수상은 그 상징 중 하나다. 1931년, 브라질은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코르코바도(Corcovado) 언덕 위에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웠다. 이 구상은 19세기말부터 이어져왔고, 브라질 시민들과 가톨릭 신자들이 직접 모금해 세운 조형물이었다.
왕관도 없고, 십자가도 들지 않은 예수. 그는 두 팔을 벌린 채, 이 상처 많은 대륙을, 이 고단한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 미소를 닮은, 낯익은 얼굴을 찾고 싶었다. 아무래도 한 달 가까이 남미 여러 도시를 다니며 성당마다 마주친 예수의 모습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에게조차, 리우의 예수상은 이상하리만치 친근하게 다가왔다. 어쩐지 삼존불의 미소까지도 닮은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