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얼굴들
페루 남서부, 안데스의 서쪽.
태평양과 맞닿은 이카 지역의 사막은
모래 파도가 끝도 없이 밀려든다.
그 한가운데, 전설이 내려오는 오아시스 ‘와카치나’가 있다.
공주가 흘린 눈물이 고여 만들어졌다는 호수.
이야기 속 비늘을 닮은 호수 주변엔
야자수, 호텔, 음식점, 그리고 여행사 간판들이 빽빽하게 서 있다.
5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호수에 들어가 놀았는데,
지금은 자연보호구역이 되어
입장료를 내야만 가까이 갈 수 있다.
버기 투어가 시작된다.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사막을 가르며 달린다.
언덕 꼭대기로 급속히 치고 올라가더니,
순간의 정적 뒤에, 그대로 곤두박질친다.
모래 위를 미끄러지듯, 굴러가듯,
비명은 웃음으로 바뀌고,
드라이버는 그 아우성을 즐긴다.
고운 모래는 언덕을 이루고,
그 언덕 위에서 우리는 아이가 된다.
신발을 벗고, 뛰고, 구르고,
팔짝거리며 웃는다.
그러다 문득 멈춘다.
샌드보딩은 누가 봐도 혼자만의 무대다.
다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뒤집히면 어쩌나,
모양 빠지면 어쩌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친다.
결국, 내려간다.
멋있든, 우습든, 내려가고 나면 시원하다.
그걸로 충분하다.
해가 지고 있다.
누군가 맥주 캔을 딴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마음이 덜컥 열린다.
“오늘 하루 잘 놀았다.”
“이번 한 해 잘 버텼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태양은 노른자처럼 지평선 너머로
쏙, 빨려 들어간다.
그 아름다움을 붙잡고 싶지만,
시간은 늘, 붙잡히지 않는다.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는다.
사람들은 조명 아래로 모여든다.
드라이버들이 고기를 굽고,
우리는 옷을 갈아입는다.
방금 전의 흥분을 하나씩 정리한다.
바비큐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
다시, 건배가 오간다.
굽는 속도보다 먹는 속도가 빠르다.
그때서야 서서히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모닥불 옆으로 둘러앉아
마시멜로를 굽는다.
누가 더 노릇하게 구웠는지,
시시한 내기를 하며 소박한 밤을 보낸다.
바슐라르는,
“공간은 상상력과 상호작용하며 내면을 바꾼다.”라고 하였다.
사막은 묻는다.
너, 오늘 진짜 잘 놀았느냐고.
너, 이 삶을 네 몸으로 기억하고 있느냐고.
우리는 태고의 인간처럼,
놀고, 쉬고, 멈추고,
그 시간을 통째로 살아냈다.
우리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뛰고, 구르고, 기어오르며,
마치 오늘이라는 시간을
태워 없애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