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4
지난주 공연이 하나 시작하고, 이번 토요일과 일요일에 몸만큼은 일과 떨어져 지냈습니다. 스멀스멀 생각이 기어들어올 때, 애써서 지우고 몸을 다른 데로 움직이는 거지요. 물론 가끔 다시 생각에 빠져 멍 때리게 되기는 하지만요. 실패해도 계속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가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요.
일요일에는 김한내 연출의 <호모 플라스티쿠스>라는 공연을 봤습니다. 오픈했을 때 매진이었는데, 며칠 전 다시 들어갔더니 매회차 4-5석씩은 자리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관람하는 날 빈자리는 더 많아서 안타까웠습니다.
환경운동가 출신의 동화작가, 열혈 환경운동가, 동화작가가 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동화 속 플라스틱 세상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사람인지, 플라스틱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를 어떤 생명체.
작년에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에서 새로운 갑각류가 발견됐는데, 이 갑각류의 소화기관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검색해 봤더니 마리아나 해구는 에베레스트산(8848m)이 들어가고도 남을 깊이(1만 1034m)라고 하네요. 이 갑각류는 6-7000m 깊이에서 잡혔는데, 인류에게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이름을 플라스티쿠스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공연은 이 플라스티쿠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연히 너무나 연상되리만치 인류의 게으름과 편안함에서 비롯해 이제는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는 플라스틱과 인간의 삶,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다소 교육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내용이 교육적이지 않기는 꽤 어려울 것 같고, 나름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문제를 지적하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인간의 미래가 그런 걸까요. 현실과 동화 속 모두 너무나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 교육으로라도, 캠페인으로라도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제시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를 절감하고 공감하면서, 동시에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는 일상의 예외조항들을 찾느라 머리가 바빴습니다.
갑작스레 너무 추웠던 며칠이 지나고, 요즘은 날이 참 좋습니다.
나무의 잎들이 여전히 진한 초록인데 너무 추운 계절은 심하잖아요.
다시 찾아온 날씨는 깔끔하게 차갑고 찬란한 가을의 느낌이 납니다.
이제 곧 11월이고, 그러면 머잖아 올 해가 끝이 납니다.
놀랍기도 하면서 올해 내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들과 내년으로 이어져야 하는 정리할, 정리되어야 할, 정리될 것들을 생각하느라...
머리는 깔끔해지지 않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