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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Mar 05. 2024

[오늘의탐색] 출력되지 않는 몸

발레,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

몸의 움직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누구나 어렸을 적 한 번은 했을 법한 학예회나 운동회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명절 때마다 친척집에 모여 신나는 음악에 맞춰 신들린 듯 흔들어대는 사촌들의 모습을 아닌 척 하지만 선망이 담긴 눈으로 쳐다봤던 기억 때문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어떠한 종류든 음악에 맞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현대무용, 재즈댄스, 발레... 뭐든 해보고 싶었다.


마침 발레 스튜디오를 오픈한 지인이 있어 용기 내어 방문했다. 

못 먹어도 고! 야심차게 1달 수강증을 끊으려는데, 일단 한 번 수업을 들어보라는 전문가의 제언. 

한 번 해서 어떻게 알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언제나의 나처럼 믿는 사람의 말을 듣는다.


오.마이.갓.

누가 삼세번은 만나 봐야지, 해 봐야지라고 했던가. 

한 번에 각이 나오는 것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왕초보 기초반, 그것도 고작 50분 수업에,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몸은 음악과 함께 할 수 없음을. 

귀로 입력되어 머리로 이해가 되는데, 몸으로 출력이... 출력이... 안된다. 

(아마도 이해한다는 생각조차 착각이었겠지)

상상 속의 나는 기초반에서 하는 정도는 강사님의 움직임을 보면 그대로 카피해서 구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와- 말로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정말 감탄스럽다. 

발레라는 것이 용어도 생소한데다, 

몸통과 팔, 다리를 따로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동작 하나하나가 인간이 평상시에 취하는 각도와 방향성이 아니다. 최소한 나에게는. 

무대 위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느끼는 감동은 평소에 보지 못하는 생경한 자태에 대한 감탄인가.

처음 시작한 직장생활이 조금 익숙해지면서 두세 달 재즈댄스 수업을 받던 나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많이, 아주 심각하게 제멋대로 미화된 듯싶다. 사람은 착각 속에 산다. 하긴 참 오래도 되었다. 


게다가 마음만 기꺼워 신나게 따라한 스트레칭 덕에 엉덩이가 욱신, 허리가 뻐근하다. 

고질병인 허리가 말썽이다. 

거의 20년 동안 함께 한 허리통증은 최초 부상 후 침이 무서워 별도의 치료를 받지 않고 시간으로 이겨냈는데,

그 다음 해 뭣도 모르고 볼링을 치다가 아예 주저앉은 후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사이로 함께 하고 있다. 

이놈의 허리 때문에 치료 목적으로 운동 중에 유일하게 오래하는 필라테스는 역시 태생적 한계(정말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물론 그 한계를 이겨내고 싶기도 하지만) 때문에 답보 상태. 도대체 코어근육은 생기기는 하는 거냐고! 고양이의 둥근 등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결론... 음악과 함께 긴 목과 팔을 우아하게 뻗고, 아슬아슬하게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은 그저 나의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유연함이 관건이 아니라 동작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근력을 필요로 하는지, 얼마나 코어가 단단해야 하는지, 뇌와 몸이 얼마나 가늘고 섬세하게 연동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외울 것은 얼마나 많은지. 

어쨌든, 그렇게 나의 발레에 대한 도전은 잠정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잠정이라고 하는 이유는... 또 모르니까.

고통을 잊은 내일의 나는 또 어떠한 계기로 다시 댄스플로어가 깔린 선망의 공간에 서게 될지 모르니까.


-2024년 2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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