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에 창문을 열어놓고 있자니 바깥소리가 잘 들어온다.
바깥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나 무리지은 학생들의 알아들을 수 없지만 서로 의지 다니는 것과 같은 소리, 옆 학교 체육시간 운동장에서의 웅성거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함성 소리,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옆 아파트의 벽분수 소리, 가끔 차 때문에 벌어지는 소란스러움이나 긴장감을 주는 사이렌 소리.
요즘은 날이 좋아서 야외 활동이 잦아진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길 건너 작은 놀이터에 단체로 나왔는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이야기에 대답하는지 네~ 네~ 하는 아이들의 한껏 신난 목소리.
한 아이가 쫑알거리는 소리도 듣기 좋지만,
벌써 단체생활을 시작한 조금은 안타깝고, 그보다 훨씬 많이 기특한 아가들이 단체로 재잘거리는 소리 또한 예쁘다.
출근길에 매일 지나는 좁은 골목에 어린이집이 하나 있었다.
겨울에는 창이 닫혀 있지만, 봄이 되면 창문이 열리고
맑은 된장국이 나오는 날이면 국 끓이는 냄새나 약하게 달큰한 반찬 냄새가 나고,
때로는 음악시간인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어느 날 선생님의 선창에 따른 아이들의 떼창이 연이어 들려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아이들의 말에는 왜 항상 즐거운 리듬이 실려있을까.
그보다 더 맑을 수 없는, 그래서 듣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
그런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가?
예전에 나도 배웠고, 당연스레 읽거나 듣고 넘어가던 문장이 갑자기 머리에 걸렸다. 왜?
흐르는 물의 속성 상 윗물은 상류를, 아랫물은 하류를 의미하나? 검색해 보니 그러했다.
그래. 흐르는 물을 평면도로 바라보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하지만 물을 단면도로 바라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을 수도 있고,
윗물은 맑지만, 아랫물이 맑지 않을 수도 있고,
윗물은 맑지 않지만, 아랫물은 맑을 수도 있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말장난 같지만, 그렇다.
오랜 세월 저 문장으로 가르침을 주고받아온 사람 사는 세상도 실제 그렇지 않은가.
먼저 난 이, 어른, 부모, 선생, 선배가 좋을 본을 보여야,
나중 난 이, 아이, 자식, 학생, 후배 역시 잘 배우고 이를 따른다고 하지만,
그리고 많은 경우 분명 그렇겠지만,
역시나 그렇지 않은 많은 경우를 본다.
주변만 봐도 그렇다.
당신들이 살아낸 시간, 삶의 모습 또는 일궈내신 것들에 감탄하고 그를 존중할지언정,
나이듦이 어른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이들이 있다. 좀 많이?
반면에 다부지고 야무지게 일상이며, 일이며, 현재와 미래의 삶을 꾸려나가는 젊은이들이 참 많다.
그런 이들을 만나거나 함께 하다 보면 참 부끄러운 때가 많고,
때로는 그들의 치기 어림과 철없음 마저 사랑스럽다.
맑은 윗물이 맑은 아랫물을 담보하나.
맑은 아랫물은 맑은 윗물이 담보되어야 하나.
만약 정말 그러하다면
어쩌면 세상은 조금 더 소소한 근심만으로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