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디너리페이퍼 Jul 03. 2024

나이 드는 시간에 기대어 II

2020년 7월 #2

또다시 빠르게 한 주가 지났습니다.

이번주는 월/화/수요일 재택근무, 목/금요일 사무실 출근을 했더니 목요일이 월요일 같고, 금요일은 금요일이라 한 주가 더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라고 팀 동료들과 얘기했습니다. 그런 느낌이지 않으셨나요? 

요즘은 이 메일을 쓰는 것으로 한 주 한 주 시간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월요일과 목요일 출근 전 아침의 운동, 토요일 엄마집에서의 점심식사, 토요일 밤의 메일 쓰기가 저의 루틴이 되었습니다. 아, 화요일 아침마다 하는 재활용쓰레기 분리배출도 포함시켜야겠습니다.


이번주에는 엔니오 모리꼬네 할아버지의 사망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유럽에, 이탈리아에 코로나가 미친듯이 퍼지고 있을 때, 문득 연세 많은 엔니오 모리꼬네 할아버지가 생각나 걱정하면서 기사를 검색했던 기억이, 그리고 검색되지 않는 기사에 다행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 갑자기? 라시겠지만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의 일부가 그분 음악이거든요.  

향년 93세. 기준은 저마다 달라도 흔히들 얘기하는 호상에 속하는 나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망 당사자에게 호상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어도 괜찮은 나이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남기고 떠나신 길이니 평안하시길 기원했습니다. 


보내신 답장을 읽으며 지난주 토요일부터 내내 머리에 남아있던 사연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식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조카 책상을 구경하러 백화점에 갔었거든요. 컨디션이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백화점이 너무 춥더라구요. 동생네 식구들과 헤어지고 백화점에서 이어진 지하철역을 찾아 걸으며 추워했더니, 엄마가 여기가 유난히 추운 건 아니야 라고 하시더라구요. 속 뜻은 여기가 유난히 추운 게 아닌데 그리 추워하는 것을 보니 너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냐…일 수 있겠지만, 아마도 분명 그랬겠지만 이건 나중에 생각한 거고 당시에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내가 춥다고! 라고 발끈하며 말해버렸습니다.

사람들도 많고 백화점 지하층이란 곳이 소리가 퍼지는 곳이다 보니 엄마가 그 말을 명확히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을 내뱉은(정말 내뱉은 말이라고 할 수밖에...) 뒤로 계속해서 머리 한 꼭지에 그 말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추워…라고 그냥 평범하게 얘기했어도 충분했는데, 내가 춥다고!… 라니. 여기가 춥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가 담뿍 들어 있는 뉘앙스로. 

결국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하고, 돌아오는 길 그리고 한 주 내내 혼자서  자책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출연하시는 공연을 준비하던 겨울, 갑자기 잔 눈이 내리던 날이 있었습니다.

연세 드신 선생님들 길 미끄러운데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미끄러운 길 다닐 엄마아빠 걱정은 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저 혼자 미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도 나이가 들고,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간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저 과거의 어느 시점에 항상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과 달리 화장실 하얀 세면대에 물 얼룩이나 머리카락이 한두 올 남아있고, 식사를 하면서 입술에 양념을 묻히고, 부엌 바닥에 쌀이 서너 알 떨어져 있는 걸 보면서 왜 할아버지할머니들처럼 지저분해지나.. 생각합니다. 목이나 얼굴 피부가 늘어진 것을 발견하고 순간 나의 엄마아빠가 언제 저렇게 늙었나… 깨닫습니다. 하지만 느려지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야 하고, 반복해야 하고, 감각이 조금씩 둔해지는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또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지난 한두 달 사이 아빠의 몸무게가 3-4킬로그램 빠졌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작스러운 몸무게의 변화는 병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가 많기에 서둘러 건강검진을 했습니다. 다행히 문제 되는 이상은 없었고, 겉으로 보이는 얼굴빛은 좋아서, 거의 반 자연 명의인 엄마는 어깨수술 후 쉬지 않고, 너무 많이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적극적으로 잔소리를 해서, 운동과 움직임도 줄이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도 좀 줄였다고 합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아빠 또한 당신이 할아버지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저는 또 어땠는지 아시나요?

어제 양치를 하다가 갑자기 담이 걸려 참고 참다가 결국 약을 먹고, 지금은 독한 약기운에 조금 몽롱합니다. 저도 저의 몸이 노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양치하다가 걸리는 담은 아무리 생각해도 다소 굴욕적입니다. 


저는 오늘도 엄마아빠와 함께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이 메일을 씁니다. 너무 좋고, 조금 울적합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이전 11화 나이 드는 시간에 기대어 I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