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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Jul 07. 2024

루틴을 깨는 즐거움

2020년 7월 #3

서울 버스투어를 했습니다.

서울이라고 해봐야 서쪽 부분에 위치한 집에서 홍대, 합정을 지나 염창역, 화곡동을 지나 목동과 경기도가 만나는 지점까지, 약 1시간 3분. 정말 신기한 게 일요일이라 교통상황이 괜찮았던 건지 교통 안내 시스템이 정확한 건지 예측시간 그대로 1시간 3분이 걸렸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지하철역을 향해 가다가 발견한 버스가 대략 비슷한 방향으로 어느 지점까지 가는 것 같아 보여 일단 탔습니다.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던 버스였는데, 타고나서 노선을 보니 꽤나 멀리 가더라구요. 

일요일이라 길이 막혀도 평일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

새로운 거리를 지나는 설렘에 대한 기대,

지하철 터널보다는 지상 위를 구경하고 그러다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하고 싶은 바람  

때문에 버스를 타는 것으로 계획을 급변경한 겁니다. 


재미있는 장면까지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뻥 뚫린 길, 갑자기 좁아지는 도로, 높은 건물 또는 낮은 건물에 좁은 구역들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가로수의 높이, 버스를 오르내리는 사람들, 하늘과 햇빛, 한강… 

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강을 건너 출퇴근할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던 것이, 사무실 근처로 집을 옮기고 나서 매일 건너 다닐 일이 없어지니 이제는 한강을 건널 때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르게 반짝이며 움직이거나 얼어 있는 또는 어둡고 무거운 물과 물길을 따라 나 있는 건물들을 의미 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어떤 모습이든 심쿵포인트가 있습니다.ㅎ


가끔 그럴 때 있지 않나요?

노선이 길고 긴 버스를 타고 무작정 앉아 있고 싶은,

출근길에 갑자기 서울역에서 기차를 잡아타고 어디로든 가고 싶은 그런 때. 

얼마 전에 팀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가다가 멋진 하늘에 취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출근길이나 점심시간에, 휴대폰이랑 지갑만 가지고 나왔는데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문자 하나 보내면 휴가원을 대신 내주기로 하자. 고 했습니다. 

그런 황홀한 하늘과 공기, 그런 막무가내의 감성이 불끈 충만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실행해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사실 맘만 먹으면 하루에 땅 끝까지도 다녀올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지난 월요일에는 온다 온다 하면서 제대로 오지 않던 비가 드디어 왔습니다.

거실 탁자에 앉아 듣는 빗소리는 언제나처럼 아늑하고 차분합니다. 에어컨 실외기에 비가 떨어져 따다다닥 거리며 들리는 소리 대신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싶은 게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죠. 이거라도 감지덕지.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다음날 회신 메일을 읽으며 같은 순간, 같은 날씨에, 같은 감성을 지닌 친구가 저어 쪽에 있었구나… 생각하니 메일을 읽는 짧은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지난 메일 회신을 얘기하다 보니 관련되어 하나 더 얘기하자면, 저의 일상은 정돈되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저도 어느새 유튜브를 보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루틴이면서도 정기적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것들이 있죠. 

그중에 하나가 토요일 아침 시간의 청소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청소기를 돌릴 때 청소하는 순서와 그 공간 안에서 청소기 돌리는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일부러 작정한 것은 아닌데, 지금의 가구나 물건 배치상태를 고려해서 가장 효과적이거나 편한 방법이라 그렇게 하다 보니 고정이 됐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 순서와 방향을 바꿔봤습니다. 

그랬더니 새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가끔, 일부러 청소의 순서를 바꾸고는 합니다. 사소한 변화나 차이에도 쏠쏠한 즐거움이 있다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그런데 이 안에서도 나름의 규칙이 발생합니다. 

청소기를 돌리는 방향을 바꾸는 날은 보통 제가 무언가 버릴 것을 찾아 헤매는 날과 같은 날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버릴 것을 찾아 헤매는 날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심난하거나, 견딜 수 없이 심심한 날이거든요. 사실 저는 변화를 그닥 즐기지 않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가 스스로 심심하고 따분합니다. 

다행히(왜지?) 이런 저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순간들을 재미있게 또는 노멀 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약간의 흥미로운 점이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저 자신에게 더 흥미가 없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제가 빠진 드라마가 있습니다.

지난주인가 지지난주에 갑자기 몰아 보기 시작한 건데 ‘사이코지만 괜찮아’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이미지들을 훑다가, 마우스가 닿았는지 갑자기 소리가 재생되는데 수애 배우 목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제가 수애를 좋아하는데, 수애인가? 하며 클릭하고 봤더니 서예지라는 배우였습니다.

목소리도 매력적이고, 화면 속 배우의 캐릭터 모습이 너무 다채롭고 예쁜 거예요. 별 관심 없이 한 번 봤는데, 재미있더라구요. 공포까지는 아니지만 으스스판타지(예상되는 성장)가족로맨스…? 처음 본 서예지는 극 중 너무 다양하게 매력적인 모습을 갖고 있어서 폭 빠졌고, 어느새 제대를 했는지 드라마에 출연한 김수현은 참 안정적이면서 상대배우와의 호흡도 여전히 좋고, 형으로 나온 배우도 찰떡같고, 다른 배우들도 전체적으로 좋았습니다. 사실 김수현은 오래전 ‘드림 하이’ 때부터 좋아했답니다 >.< 드라마 ‘드림 하이’를 좋아했던 건가… 사무실 컴퓨터에 ‘드림 하이’ OST가 있어 아직도 가끔 음악을 듣곤 합니다. 어쨌든 등장인물마다 갖고 있는 과거와 아픔, 현재가 연결되고 연결되는 것에 마음이 가서 현재 방송분을 모두 보았습니다. 


아, 이 얘기를 하려 했던 건 아니고,

드라마에서 아픔을 가지고 사랑을 꽁냥꽁냥하는 남녀 주인공의 나이가 30살이더라구요. 

갑자기 감격스럽게도 30세 여성 주인공이 처음(?) 등장했던 드라마 ‘삼순이’가 생각났습니다. 삼순이도 극 중 꽁냥꽁냥했지만, 그보다는 ‘아직도 결혼 못 한 노처녀’가 캐릭터의 키포인트였습니다. 

어느새 등장인물들의 나이대도 자연스레 많이 올라가고, 30대 남녀의 성장기와 로맨스가 당연한 시대가 된 것을 갑자기, 어쩌면 뒤늦게 느끼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는 것보다 저의 시간은 더 빨리 흘러 다시 그들을 상회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저에게 뒤늦게 찾아온 현타였습니다. 그냥 현실 직시라고 할까요? 지금에라도 인식한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현실에 굳이 맞기까지 할 이유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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