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4
한 주 동안 저의 일상에 크고 작은 균열들이 생겼습니다.
그중에 오늘은 기분 좋은 것만 전하려고 합니다.
어제 갑작스럽게 떠난 짧은 1박 2일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회의하러 갔던 건데, 거리상으로는 하루 만에도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지만, 해외팀이랑 밤 10시에 회의를 해야 해서 숙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차에 버스에 택시까지 갈아타며 가야 하는 길이었지만, 코로나라는 변수 때문에 불가피하게 급 회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거지만, 그래도 예기치 않은 길을 떠난다는 건 나쁘지 않았습니다.
출장지를 방문하면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에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했는데 택시정류장 벽에 유선전화기가 걸려있고, 그 전화기로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면 배차가 된다는.ㅋㅋㅋ 대부분의 집에 전화기 한 대씩 놓여 있던 시절 마음이 후한 부모님이 다 큰 자식들 방에 따로 하나 걸어주었을 법한 전화기(저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입니다만)도 추억이 돋거니와, 생전 처음 보는 시스템이라 처음에는 이용 방법을 몰라 한참 헤매다가 알아차렸을 때 동행자와 얼마나 신기해하며 웃었는지 모릅니다. 낯선 곳에서 구체적인 택시 탑승위치를 설명하지 않고 목적지만 얘기하면 택시가 찾아온다는 점에 있어서 나름 편리했습니다. 코로나로 도시 간 이동과 건물마다 입장하는데 소독약이 비치되어 있는 세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는 이 전화기는 사용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나중에 아마도 이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게 될 것 같은데 그때는 다른 이야기들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출장에서 돌아와 저녁에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3주 전인가 예약한 <라스트 세션>이었습니다. 올 초에 뵐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코로나로 그러지 못했던 신구 선생님이 출연하시는 공연입니다. 2인극으로 상대역이 더블 캐스팅인데, 이석준 배우 공연은 다른 걸 몇 번 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상윤 배우 회차를 선택했습니다.
공연은 흥미롭고 좋았습니다.
등장인물도 그렇거니와 인물 간 논쟁의 갈등이 연극을 통한 개인의, 저의 지적갈망 또는 지적허영심을 풀어주는 매력이 담뿍 담긴 공연이랄까요.ㅎㅎ 정신분석학자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유명하지만 극 중 시점상으로는 대학교수로 학자였던 C.S.루이스가 만나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공연입니다. 전쟁 상황, 죽음을 앞둔 노년의 학자와 한창 젊은 학자가 나누는 신과 인간과 종교에 대한 논쟁. 내용도 그렇지만, 여든이 넘으신 선생님께서 비슷한 연령대의 프로이트 역할을 하시는 모습을 본다는 것도 감동이었고, 이상윤 배우도 첫 무대 공연이었는데 충분히 좋았습니다.
결론은 공연 보고 쌤이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셔서 네! 했는데, 선생님의 다른 지인들도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선생님이랑 아주 가끔 평양냉면을 먹거나, 또 아주 가끔 술 한 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런지 기회가 그렇게 됩니다. 어제는 그렇게 우연찮은 자리를 함께 하면서, 공연 회식에서나 술을 조금 입에 대는 정도인 제가 술도 많이 마시고, 쌤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바라보기도 하고… 12시 넘어 귀가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쓰러져 잤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10시쯤 일어난 것 같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오늘은 그렇게 저만의 루틴을 깨면서 하루를 보내야겠다 마음먹어 봅니다. 가끔, 제가 만들어 놓은 루틴 따위 깨뜨리거나 깨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도 기분 좋고 영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에서라면 더더욱. 어디에서든, 누구에게서든, 어떠한 거든 영감이라는 걸 느껴보고 싶은 1인입니다.
오늘은 게을러지기 위해,
일상의 틈을 비집고 찾아드는 순간의 흥미로움과 여유를 대면하기 위해 짧게 적습니다 ;)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