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
약속으로 꽉 찬 한 주였습니다.
첫 번째는 아는 언니와 함께 한 1박 2일의 군산여행이었습니다.
몇 년 전 군산에 사진 찍을 겸 한 번 다녀왔었는데, 이번엔 꽉 찬 이틀을 보내고 올라왔습니다. 갈 때는 차로 가고, 올 때는 기차를 타고 왔답니다.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 해가 있는 느긋한 시간을 보내니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지고, 사람 많은 기차를 타는 것이 소심한 마음에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역시 기차와 기차역은 여행 기분을 내는데 최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욱이 군산여행은 은근히 먹부림 하기 좋습니다.
두 번째는 당신과 저의 메일링 10회 기념 오프라인 모임이었습니다.ㅎ
당일 예정에 없던 일 때문에 그 저녁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 저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저의 편지를 읽으면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조금 쑥스럽고 그보다 훨씬 기쁜. 다른 이가 그렇게 느끼는, 어느 날의 무언가 그림이 그려지는 글…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길에 알려주신 인스타 계정에 들어가 글을 몇 편 읽었는데, 이런 게 정말 글이다… 싶었습니다. 제가 너무 현상을, 주변을 있는 그대로 읽어주기 때문에 그림이 그려지는 글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시 글쓰기의 길은 참 멉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오늘, 일로 만난 친구와의 저녁 약속입니다.
6,7년 전 공연에서 조연출과 피디로 만난 사이입니다. 공연할 때 따로 밥을 한 번 먹은 적이 있었지만, 오늘은 일과 별개로 그냥 개인적인 약속을 제가 청해서 잡았습니다. 젊은 이들에게 친한 척하지 말라는 친구의 조언을 잊고. 거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친구 한 명이 가끔 저에게 하는 말이거든요.ㅋㅋㅋ
광화문 경희궁의 아침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세종문화회관 블록을 커다랗게 돌아 역사문화공원을 지나, 서대문역을 지나, 충정로역을 지나, 애오개역을 지나, 공덕오거리까지 와서 그 친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저는 다시 집까지 걸어왔습니다.
2시간 반을 어슬렁어슬렁… 조용히 느릿느릿 얘기하며, 숨 쉬며, 물안개로 질퍽한 공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땀을 내며 그렇게 시간을 걸었습니다.
그냥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뭘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낸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뭘 주고받을 것도 아닌데 그냥 반갑고 좋은 사람. 서로 많이 알지 않아서 할 얘기가 많았던 걸 수도 있고, 의외로 편해서 할 얘기가 많았던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은 방향을 보며 걸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기억하는 저에 대한 얘기를 해줬습니다.
세 개의 에피소드인데 이야깃거리로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나는 공연할 때 그 친구가 급체를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얘기를 들으니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분장실에 매트를 깔고 그 친구를 엎어 놓은 뒤, 배우 한 명이 등을 주무르고 저는 손을 주물렀습니다. 엄지와 검지 사이 바로 거기! 그런데 제가 너무 힘을 줘서 열심히 주물렀나 봅니다. 다음날 만나 제가 속 괜찮냐고 물어봐서 괜찮다고 했지만, 실상 속은 괜찮은데 손이 너무 아팠답니다. 다음날 일어났더니 손이 너무 아파서 왜 그러나… 싶었다고.
투 머치… 상당히 많은 경우에 정신을 놓고 투 머치가 됩니다. 그렇잖아도 그런 저 자신에 대해 자주 돌아본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본인이 워낙 걷는 걸 좋아해서 그날도 대학로에서 명동까지 걸었답니다.
극장에서 만나 제가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기에, 걸어왔다고 했더니
제가 너무 걱정스러운 눈으로 돈이 없어요...? 라고 물어봤대요. 오.마이.갓. 대략 난감 플러스 민망.
당시 그 친구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했다는데,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며 아, 엄청난 실례를 했구나... 했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 시절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연극 제작비나 사례비라는 게 뻔한 사정인 데다, 시간도 많이 들이고 너무나 많은 일을 하는 조연출 사례비가 적어 상당히 미안해하던 시기… 너무 구차한 변명… 맞습니다. 사죄합니다 ㅠ.ㅜ
세 번째는 같이 로비인지 분장실 복도에 있었는데 공연을 보러 온 배우와 제가 얘기를 하다가 옆에 있는 본인을 배우에게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 배우가 너무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하길래,
본인은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라고 얘기했는데,
제가 눈을 똥그랗게, 동그랗게 아니고 정말 똥그랗게 뜨고(그 친구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공연은 우리가 다 같이 만든 거라고. 했답니다.
하하하…………….
이 세 가지 장면이 저랑 연상돼서 떠오른다며 얘기해 주더라구요.
흣, 웃으셨나요?
지금 만나 함께 일하는,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나중에 저의 어떤 모습을 기억할까요, 떠올리기는 할까요. 저는 또 어떤 기억을 남기게 될까요. 그리고 저는 어떤 기억을 하게 될까요.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좋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