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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Jul 28. 2024

공간의 소리를 감각하다

2020년 8월 #5

이곳은 화천입니다.

화천 중에서도 읍내와는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이 작은 마을은 밤이면 온통 새까맣기 때문에 정말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머무는 동안 매일 비가 왔구요. 꽤나 넓은 공간이지만, 현재 저 포함 6명이 머물고 있습니다. 

일과를 시작하기 직전을 포함해 하루 두 번 체온을 재고, 기본적인 컨디션을 확인합니다. 

저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약 0.2-3도 정도 기본 체온이 높게 나오고 있는데, 계절과 비 때문에 더운데 에어컨이 없어서인 것 같고 모두 특별히 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바깥은 풀이 무성하고, 꽤나 덥습니다. 


이곳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만나, 하루 9시간씩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맞습니다. 국가 간 이동 없이 양국에서 워크숍을 이원으로, 하지만 동시에 진행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덕분에 매일 카메라와 대형 스크린, 줌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모두의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이렇게라도 실현할 수 있는 상황과 시설인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구역 밖으로 나가는 일은, 하루 한 번. 끼니를 위해 음식점에 메뉴를 미리 포장 주문해 놓고 차로 나가 픽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한 끼는 워크숍 준비물을 사러 마트에 나간 김에 컵밥을 사다 며칠 해결했습니다. 

토요일인 어제 아침에 여기까지 쓰다가 무슨 일인가 때문에 멈췄습니다. 뭐였더라...


그리고 어김없이 오밤중인 1시를 넘겨 전반부의 마지막 일정이 끝났습니다. 자고 일어나 일요일 아침 10시 출발인데, 그전에 짐도 싸야 하고 숙소 청소도 해야 합니다. 이곳에 대해 얘기하자면... 예전에 발표회 참관이나 회의를 위해 당일치기로 방문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정말 새로운 경험이 한 바가지입니다. 

너무 피곤한데 이런 날은 꼭 잠이 오지 않아요. 


지금은 해남을 향해 가는 차 안입니다.

인원은 적지만, 오가는 길이 너무 먼데다 앞뒤 일정을 생각할 때 자가운전도 무리이고, 여러 차례 환승과 대기 시간을 요하는 대중교통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모든 이동은 전세 미니버스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어젯밤 쓰다만 메일을 보내지 못하고 어제 진행한 워크숍 중 사운드 아티스트가 본인 세션에서 참여자들에게 제시한 과제가 있었는데 그때 적은 글을 더합니다. 아! 전반부 워크숍은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업 영역을 바탕으로 한 가지씩 활동을 계획해 꾸려나가는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있고 싶은 곳을 골라, 10분간 머물며 그 공간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느낌을 적는 과제였습니다.


문화공간으로 들어오는 길 초입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워크숍의 메인 공간인 극장의 사람들과 점점 거리가 벌어지면서, 이곳이 아주 조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익은 풀벌레 소리 몇 개만 제외한다면.

그런데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생각보다 소리가 가득한 곳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낯익은 풀벌레 소리에 더해 점점 더 많은 소리가 귀에 들립니다.  

그것도 서로 다른 강도와 속도로. 그리고 새로운 풀벌레 소리도.

소리의 시작점은 알 수 없지만 들려오는 거리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가끔 새소리가 등장했다 사라집니다.

그보다 더 가끔 지나가는 차소리는 제 근처로 오면 속도를 늦춘다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던 멀리 물 흐르는 소리까지 들리고, 

제가 달리기 시작하니까 점점 선명해지고 커집니다. 제가 왜 달렸을까요?! 


소리의 진공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묵음이 아니라,

사람이 묵음으로 느끼는 주파수의 사운드를 송출해야만 실제 묵음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연의 묵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뭉쳐 있어도 익숙한 소리는 더욱 명료하게 들립니다. 많은 소음 중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알아챌 수 있는 것처럼.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많아서 몸이 압도되는 느낌이었고,

그걸 피해 다시 들어왔습니다.


공간과 소리를 감각하는 워크숍을 해서인지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지난밤에도 그 전날 밤에도 익히 들었던 선풍기 소리가 너무 커서 쉬이 잠들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해남에서는 절에 머물며 수행을 하게 됩니다. 묵언수행과 명상, 산행, 오후불식. 

코로나 상황으로 집을 떠나는 것이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오히려 안전한 곳에서 머물렀고, 또한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시간과 감각을 경험하게 될까요. 

당신도 지금 계신 곳의 소리와 향기, 공기의 움직임...을 감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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