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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Jul 31. 2024

고요하고 수선스러운 템플스테이

2020년 9월 #1

어제 서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떠날 때 그대로인 집이 좋기도 하고, 지난 10일간 머물던 환경과 사뭇 달라 고작 10일 만임에도 불구하고 그새 낯섦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역시 너무너무 좋습니다. 


지난 한 주는 해남에 있었습니다. 템플스테이. 

수행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휴대폰은 모두 반납하고, 기간 중 묵언수행을 기본으로 합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업무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본진과의 불가피한 연락 가능성을 설명하고 사정해서 저는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눈에 띄는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와이파이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5:5로 프로그램 참여와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으로 아티스트들과 동일하게 공식적인 일정에 모두 참여해야 했습니다. 


많은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혹시나 궁금하실까 하여 간단히 하루 일과를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5시에 일어나 눈은 떴으나 잠든 몸으로 대웅전에 모여 아침예불을 드리고, 

6시부터 짧은 좌선을 한 후,

6:30 아침공양을 하고 휴식합니다. 아침은 죽입니다.

8:00 주지스님과의 다도와 말씀, 첫날은 108 염주 만들기를 했어요.

9:00-11:00 좌선수행, 이후 30분까지 몸풀기. 좌선이란 가부좌나 반가부좌로 명상을 하는 건데, 쉬워 보이지만 처음엔 그 자세로 다리가 저려 10분도 채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11:30 점심공양. 점심은 밥인데, 발우공양입니다. 첫날은 정말 눈물이 날뻔했습니다. 음식은 제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서요. 하지만 다행히, 아주 다행히 요령껏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노력은 정말 눈물과 웃음 없이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발우공양이라는 행위 자체는 힘들어도, 사찰음식이 채식이고 맵고 짜지 않은 순한 양념이라 제 입맛에 맞아 매 끼니 음식을 대하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4시까지 자유시간입니다.

14:00-17:00 산행과 휴식

17:00 108배

18:00 오후불식으로 저녁 대신 토마토주스를 마시고, 청소를 합니다. 

19:00 저녁예불

20:00-21:30 법문좌선으로 주지스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이후 정리하고 씻고, 잠자리에 듭니다.

이런 시간을 반복하고 왔습니다. 주변이 어두운 시간에 일어나야 하고, 아직 몸이 한창 깨어있을 시간에 잠을 자야 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솔직히 과하게 힘든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시간을 과연 '나로서' 어떤 의미 있는 과정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과 활동이 사람이 거의 없는 산사에서 묵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너무나 차분하고 고요합니다. 주위에 자연적인 에너지의 흐름 말고는 어떠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 같달까요. 말을 듣지 않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스님들의 말씀은 어떤 주파수를 타고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공기처럼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느낌적 느낌이지만 말입니다. 참여자들은 불가피 질문을 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필담을 활용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묵언을 하고자 노력해도 규칙을 깨고야 마는 저를 포함한 한두 명은 침묵 속의 놀람과 호들갑, 그래서 삐져나오는 키득거림을 감추기 어려웠음을 고백합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정리 시간은 짧은데 공동 샤워장을 마주쳤을 때, 숙소에 살아있는 지네가 등장했을 때, 예기치 않게 맞닥뜨린 엄청난 사이즈의 지네를 보았을 때,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감동스러울 때, 산행 중 젖은 숲길을 걷다가 큰 비를 만났을 때... 

제 피부를 경계로 바깥은 이성에 따라 평정심과 고요를 찾으려고 하나, 그 안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든 격하게 고동치는 심장과 세포들의 움직임이 피부를 뚫고 나올 것 같은 그런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때는 바깥의 평온함과 이에 부응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내부의 미세한 움직임과 감정들이 상대적으로 더욱 요란스럽게 느껴집니다.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그런 시간들로 템플스테이를 마쳤습니다. 

제가 그럴 깜냥도 아닌지라

스님의 말씀을 곧바로 이해하거나 엄청난 깨달음을 얻지도,

명상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지도, 

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지도 않았지만,

명상이라는 것과 온전히 나를 향한 시간의 의미를 다소나마 느낄 수 있었고,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던 경험을 이번 기회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지금의 생각은 하루 20분이라도, 아니면 일주일에 40분이라도 좌선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실천여부 미지수.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붙잡히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자는 평범한 생각이 듭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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