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야 말로 번아웃 온 거 이해해.”
상사의 이해한다는 말이 고마우면서도, 반갑지는 않았다.
내가 번아웃이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하지만 지금 나 같은 상태를 퉁쳐 번아웃이라고 일컫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격하게 부정하고 싶지만 나에게도 번아웃이 찾아온 것이다.
15년, 이곳에서 온 마음을 다해 일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언가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나를 바친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은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을 통해 만나 함께 하는 치열한 이들과 발걸음을 맞추어 동행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일이 무작정 좋았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되기도 전, 일과 라이프의 균형을 맞추며 사는 사람이나 출퇴근과 함께 스위치를 자유자재로 온오프 하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탐탁지 않아 했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어느 순간 내심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이 티가 났는지, 안 났는지는 모르겠다. 감정을 애써 숨기고자 노력했으나, 자주 밖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을 허둥지둥 잡아끌며 평생을 살아왔다.
드디어 다음에 대한 계획 없이 퇴사를 결심할 때만 해도 과연 내가 잘 쉬고 더 나아가 잘 놀 수 있을 것인지가 가장 의문이었다.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일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렵게 내린 결정, 처음 맞이하는 시간을 잘 살아내는 것이 내가 나에게 부여한 새로운 과제였고 잘해보고 싶었다. 나도 잘 놀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나 가치 있는 나의 일이지만, 그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갭이어를 보낸 지 6개월이 지났다.
마지막 출근은 퇴사일 1달 남짓 전이었으므로 장장 또는 고작 7개월이 넘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너무 오래 쉬면, 일하기 싫어서 다시 일 못해.”
다시 일을 못하거나 소일거리로 남은 시간을 보내기에 나는 아직 너무 젊다. 더욱이 모아 놓은 돈도 터무니없고 아직 소일거리로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지도 못했는데, 120세 시대라는 말은 가벼이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뭐, 더 푹 쉬어”
동의하고 싶지만, 확신은 없다. 다만 아직 일의 현장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제 나의 결정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꽤나 전부였던 일을 놓고 퇴사를 선택한 그때의 나와
그리고 선택한 갭이어라는 시간을 보내는 지금의 나를.
세상 어마어마한 일처럼 여기며 한없이 나만의 센치한 감상에 빠져 있던 시간도 있었고,
이 세상 직장인 수의 몇 곱절은 되는 숫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깨닫는 시간도 있었다.
때문에 어떤 의미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나의 발자국이고 머잖아 선명하지 않은 기억에 들춰보고 싶은 과거가 될 것이며, 낯선 누군가에게는 레퍼런스의 작은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원래 모든 일은 소소하고 작은 균열이나 결심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잠깐의 반기일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전쟁일 수도 있다. 크든 작든 개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한다.
이 글은 나의 퇴사 감상기이고 갭이어 생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