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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미술관 이야기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 베를린 주립미술관

by 올디너리페이퍼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Hamburger Bahnhof-Nationalgalerie der Gegenwart)

기차역이 오랜 시간과 역사를 거쳐 현대미술을 위한 미술관이 되었다.

덕분에 높지 않은 건물이지만 기차역 특유의 플랫폼으로 사용되었던 꽤 크고 멋진 공간이 작품을 위한 장소로 사용된다. 이는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을 보는 관람자에게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 작가에게도 매력적이고 흥분되는 공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꽤나 도전적이기도 하겠지만.


Eva Fàbregas “Devouring Lovers”

그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작품은 처음 공개됐을 때 관람객이 만지고 기대고 앉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Don’t Touch.

위생이나 훼손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느끼겠지만, 유럽의 많은 곳이 예상 또는 기대 이상으로 지저분하다. 베를린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예전에 아주 잠깐 노르웨이 오슬로를 방문했다가 베를린으로 건너간 적이 있었는데, 오슬로는 천상계, 베를린은 인간계라 느꼈다.)

실제로 작품에 해진 부분이 간혹 눈에 띄어서 실화인가 했는데, 아마도 이런 상처들이 전시를 시작했던 초반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코로나 시대 이후 대중들의 간접적 접촉을 허용한 야심찬 작품의 컨셉 또는 전시 기획이었을 텐데, 아마도 작가는 또는 기획자는 사람들에 의한 마모까지는 염두에 두지 못했나 보다. 관람하면서 소재가 궁금해 정말 만져보고 싶었는데, 터치가 가능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으니 더 아쉽다.

어쨌든, 거대한 작품의 부분 부분에 이따금 눈에 띌락말락한, 예기치 않은 진동이 킬포!

어디에서, 언제, 얼마큼의 움직임이 다시 나타날는지 계속해서 눈으로 더듬게 된다.


이우환 특별전

한국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이 반가운 이우환 화가의 특별전이 있었다.

돌과 선, 면. 사실 첫인상은 뒤샹의 변기와 같은 작품인가 했다.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미알못이라고 하나?

(나는 미술관은 좋아하나 미알못으로서 뒤샹의 변기는 뒤샹이기 때문에 작품인가, 작품인데 뒤샹의 것인가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 식견 있는 이들은 기함할 노릇이고, 물론 거기엔 또 다른 의미와 해석이 있겠지만. 그리고 나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 그 궁금증을 해결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지도 의문이다. 미술책에서 배운 것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고, 미술관에서 봐도 유명하다니까 우와~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에 감동을 느껴야 하는지, 놀라워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또한 신기한 것은 이번 여행에서의 미술관 관람은 자체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사실이다. 여러 면에서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퇴사로 인해 내가 무조건 행복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든지. 어쨌든.)


그런데, 같은 소재(붓과 물감, 돌, 쇠, 유리)와 간결하지만 반복적이고 거대한 사이즈의 작품"들"을 보며 의문과 단편적인 생각이 완벽한 감동까지는 아니지만 대단하다는 쪽으로 주춤주춤 움직인다. 그리고 어느새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구석구석.

누가 그랬던가. 작가의 아이디어와 결과물이 시리즈가 되면 작품이라고.

쉬워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거라고,

수천수만 번의 시도가 있은 후 붓질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드디어 한 번에 쓰-윽 그려낼 수 있었을 거라는 한국인 커플의 얘기를 스치듯 훔쳐들은 것이 도움이 되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보인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라데이션을 유지하는 것, 붓의 결 하나하나에 흔들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깊이와 무게로 선을 긋는다는 것.

그가 들였을 시간과 땀. 정말 상투적이지만 때론 상투적인 것이 가장 명확하게 이해될 때도 있다.

또한, 한국작가의 특별전, 외국어 자막 달린 한국어 인터뷰 영상은 반가운 덤.


이렇게, 저렇게 생각지도 못한 현대미술관에서 거의 3시간을 머물다 나왔다.

미술작품들 뿐만 아니라, 공간이 변화하는 역사를 담은 사진, 영상, 실제 사용됐던 귀여운 기차표의 변천사 등 전시물까지 하나하나 공들여 봤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Edvard Munch "Jealousy" Hannah Höch "Lamenting Women"

베를린 주립미술관(Berlinische Galerie)

그리고, 다른 날.

주립미술관에 뭉크 특별전이 있다 하여 갔다.

뭉크 작품 중에는 ‘jealousy’(거칠고 간단하게 표현되었으나 신기하게도 남자의 오묘한 감정이 잘 보이는, 그런데 질투하는 건지 민망한 건지 약간 헷갈리는 표정이 인상적인 데다, 질투의 대상이 또한 참 인간적이라서. 그런데 그는 저 남자를 질투한 걸까, 저들의 관계를 질투한 걸까)와 ‘eye in eye’라는 작품만 인상적이고(세상에, 제목 외울 정도) 오히려 다른 작품들이 더 흥미로웠다.

우울하고, 무겁고, 암울한 표정과 문양만으로도 알 수 있는 나치 시절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 시대 사람들, 최소한 작가가 느꼈을 우울과 섬뜩함이 이해되었고, 모나리자를 비꼰 다다이즘 작품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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