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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

알렉산더 광장, 붉은 시청사 앞

by 올디너리페이퍼

어느 날의 아침, 술과 음식에 진심인 친구가 크리스마스 마켓 한정 잔을 갖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 크리스마스 마켓은 알겠는데, 잔을 가져온다고? 그게 뭐야?

지나가다가 보면 잠깐 들를지는 모르겠지만, 계획에는 없던 크리스마스 마켓을 검색했다.


크리스마스가 너무나 중요한 이벤트이자 휴가인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도시의 군데군데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연다. 마켓마다 12월에 시작해 12월 31일까지 하는 경우도 있고, 다음 해 1월 첫 주까지 하는 경우도 있고, 시작일과 종료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아주 작고 예쁜 마을이 생겨난다. 예쁜 장식품 같은 소품과 기념품, 먹거리를 판매하는 부스들이 있는 컨셉은 모두 같지만 아이스링크나 놀이공원처럼 다양한 탈거리가 있어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을 위한 곳, 튜브썰매와 같은 액티비티를 위한 곳, 오래된 성에서 하는 조명쇼가 유명한 곳 등 즐길거리가 조금씩 다르다. 또한 입장이 무료인 곳도 있고, 유료인 곳도 있는데, 입장료라고 해도 2-3유로 수준이라 한 번쯤 입장료를 감수하고라도 방문하기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겨울철 마실거리의 대표주자 글루바인과 핫초코가 있는데 해마다, 마켓마다 잔의 디자인이 다르다고 한다. 음료를 주문하면 200미리 잔에 담아주는데 음료값과 함께 잔 보증금(5유로)을 받고, 음료를 마신 뒤 잔을 킵하고 싶으면 가져가면 되고, 반납하면 다시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음료 마신 잔을 기념으로 킵하기 위해 새 잔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그 또한 사용하지 않은 잔으로 바꿔준다. 화장실을 찾아 설거지해서 가져갈 순 없으니.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사실 해가 기우는지도 모르겠다. 날이 흐려서. 그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구름 위 해가 기우는구나... 짐작한다.)

알렉산더 플라츠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방문했다. 혼자.

실패다. 고작 3일째, 홀로 하는 여행의 외로움을 진하게 느꼈다.

음... 나 벌써 이래도 괜찮은 거니.

글루바인 한 잔도 아니고 반 잔 간신히 마시고 잔 하나 챙겨 귀가했다.

검색을 통해 봤던 컬러풀하고, 반짝이는 그런 잔이 아니었다.

200미리의 불투명한 맥주잔. 바닥이 두터운 맥주잔이라 친구들과 건배하기는 좋겠지만 무게는 사이즈에 비해 꽤 나간다.

그래도 어쨌든 2023년, 올 해의 크리스마스 마켓 잔이니까. 미션 클리어가 유일한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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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플라츠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
드디어 영접한 크리스마스 마켓 잔. 너로구나...


며칠 뒤 크리스마스, 로테스 라트하우스(붉은 시청사) 앞에 있는 다른 크리스마스 마켓에 다시 방문했다. 친구들과.

아... 이거지! 찐이다. 마켓은 친구들과 와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먼저 갔던 마켓에서 마셨을 때 생각보다 알콜이 많이 남아있고 조금 밍밍했던 기억에 이번에는 글루바인 대신 핫초코를 마셨는데... 또 실패. 글루바인을 마셨어야 했다.

한 모금 나눠마신 글루바인이 상당히 맛있는데, 마켓마다 다 맛이 다르다더라. 몰랐다.

하지만 괜찮다. 친구들이 있으니.

함께 있으니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어도 외롭지 않고, 신이 난다.

함께 있으니 간식도 사 먹고, 부스 구경도 하고, 꺅꺅 거리며 타는 회전그네도 구경한다.

아! 이 마켓에서는 마찬가지로 200미리이고 불투명하지만 머그잔 형태의 잔을 사용한다.

날 위해서도 하나 킵할까도 생각했지만, 짐 된다는 친구의 말에 수긍되어 반납.


유튜브 검색에서 봤던 쨍하고 예쁜 잔은 득템하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크리스마스 저녁.

예쁘고 빛나는 저녁이다.


덧. 예전에 파리 출장 중 우연히 마주쳤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좀 더 아기자기했던 기억이다. 독일의 도시들마다도 조금씩 다르다고 하니, 파리와 베를린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파리의 마켓에서 가장 좋았던 건 수많은 종류의 누가와 치즈였는데, 어렸을 때 아주 가끔 뭔지도 모르고 먹었던 미색의 그 누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종류와 맛으로 한동안 누가에 홀릭했더랬다. 반면에 베를린의 마켓에는 물론 간식류도 있지만, 특별한 먹거리가 많지 않은 독일(누군가는 뭐라 하겠지만, 실제로 독일의 대표 음식은 종류가 많지 않음)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소시지를 포함한 고기류, 버섯볶음, 감자 등 식사이자 안주류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날 우리의 픽은 군밤과 다양한 견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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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진짜 많다. 관광객이 절반 이상일거라는 소문/다양한 먹거리가 있는데 오늘의 픽은 군밤과 캬라멜 코팅 아몬드와 캐슈넛/회전그네를 타는 귀염 티켓
생각 이상으로 높이 올라가고 아주 빠른 회전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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