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라익스 그리고 안네 프랑크의 집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예전에 출장으로 반나절 방문했었다.
오히려,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서 환승을 한 경험이 한 번은 더 많은 기억.
그때의 인상은 사람 정말 많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물길이구나.
매력적인 도시라고는 하지만 정신없음으로 낯설기도 하고 물가도 높다 하여 다소 망설였지만, 이번 여행의 작은 목표 중 하나였던 공연이 한 편 있어 짧은 기간을 들여 방문했다.
반 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
그리고 도착 이틀 전, 이 도시에 간다면 한 번 들려보리라 생각했던 반 고흐 미술관을 온라인으로 예약했다.
입장시간을 정해서 예약해야 하는데, 15분 단위로 예약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관람객이 엄청 많다는 미술관에서 그나마 그런 예약 방법 때문에 사람들이 분산되어 입장하고, 입장하면 적당한 군중 속에서 관람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몰리는 계절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한다. 그렇다. 가능한 불만스럽지 않고 싶다.
현대적으로 지어진 미술관에는
고흐의 작품뿐만 아니라
절대적이고 애달픈 형제애로 이미 너무 유명한 동생 테오를 포함해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있었다.
작품 활동 중 그가 마주했던 환경과 함께
모델료가 비싸 그리고 수없이 많이 그린 자화상,
덕분에 그걸 통해 시도했던 다양한 연습,
때마다 담아내고자 했던, 보여주고 싶었던 자아상,
수많은 그림을 통해 했던 그만의 색과 선에 대한 실험,
애정하고 남기고자 했던 인물과 자연이라는 대상들,
고갱과의 인연, 그리고 예술가 동료들의 작품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그에게는 작품과 함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디오 가이드가 한국어로 친절히 들려줬다.(후원기업에 현대***가 있어서 한국어 버전이 있다고 한다.)
나의 엄마보다 딱 100년 먼저 태어나 너무 짧은 시간 살았던 그의 생애를,
그중에서도 또한 짧은 시간 그림을 그렸던 그의 작품 활동을...
작품을 보면서 가이드와 글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되새기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자화상과 해바라기, 고흐의 방 등 너무나 유명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하얀 포말이 이는 거친 파도와 푸른 바다 그리고 작은 배를 그린 '생트 마리 드 라 메르의 바다 풍경'과
테오의 아이인 조카를 위한 선물이라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해외의 미술관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 중 하나인 어린이들의 단체 관람 수업은 언제 보아도 새롭고, 부럽다.
안네 프랑크의 집 Anne Frank House
베를린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유대인 관련 장소 방문과 정보를 습득하지 않을 수 없다.
감탄스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상상되지 않기도 하는 그런 역사와 그 안의 사람들.
암스테르담에서 뭘 할까 고민하던 중 친구 두 명에게 안네의 집을 제안받았다.
안네의 일기를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충분한 기억이 있지 않고
몇 년 전 새로 발견된 페이지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베를린에 있는 동안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한국문화원에 문의했지만 마침 대여중.
궁여지책으로 책 읽어주는 유튜브 듣고, 그러다 관련 정보를 조금 더 검색하고.
그러다가 가지 말아야겠다... 하다가 결국 방문.(아니 암스테르담 일정은 왜 이렇게 망설임이 많았던 건가)
아무리 외부 공개를 위한 단장을 거쳤더라도, 숨과 손이 닿아있던 공간은 녹록지 않다.
좁은 공간과 까맣게 칠해 가려버린 창, 난간을 잡고서야 간신히 오르내릴 수 있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 각종 실제 메모들…
상상 이상의 거대한 규모와 방문했던 날의 찬란한 햇살과 초록빛의 이질감이 컸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떠올랐지만,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감각이다.
줄지어 이동하면서(워낙 공간 좁고 특히 통로가 협소해 관람객들은 시간에 맞춰 입장하고, 순서대로 줄지어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동하면서 주요 스폿마다 오디오 가이드가 자동으로 재생되면서 장소와 생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침묵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관람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마주치는 청소년의 건강한 웃음과 바깥의 흐린 날씨가 또한 생경하다.
안네는 갑작스레 끝나버린 일기에 두려움과 불편함과 막연한 기대의 시간들을 적고 있지만,
분명한 건 아이가 살아낸 그 시간이 매 순간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번 기회를 통해 지금 알고 있는, 알게 된 내용을 언제 잊어버릴지 모르겠지만,
가장 최근 버전으로 출판된 안네의 일기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라익스 뮤지엄(Rijks Museum)
면적면에서나 작품면에서나 엄청난 규모인 현대미술관인데,
전 날의 당일치기 여행과 저녁일정을 고려해 고민하다가 하이라이트 중심으로 관람했지만 안갔으면 큰일 날 뻔.
클래식(현대미술관인데 클래식?! 하지만 고전이 맞다) 작품들 중에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관람한 램브란트의 회화 및 판화 작품을 포함해서 감탄과 재미가 있었던 수많은 작품들,
주요 작품들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치되어 있는 안내문(작품의 사회적 배경, 작가의 의도, 작품 부분 부분마다의 예술적 가치, 특이점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스터디 가이드처럼),
영화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하지만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도서관이
시간을 꽉꽉 채워주었다.
하이라이트 중심으로 관람했지만,
워낙 작품이 많은 데다 실제 공간과 안내지도를 매치해 가면서 길을 찾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구조로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된다. 몇 달 전 방문으로 조금은 공간이 익숙한 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다녔는데, 혼자 갔으면 헤매다 상당히 많은 작품을 놓치고 왔을 듯싶다. 그마저도 깨닫지 못했겠지만.
작품을 먼저 보고 혼자 상상 또는 오해를 하다가 안내문을 참고하는 나와
텍스트 및 정보를 숙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탐색하는 친구의
서로 다른 관람 방식이 미술관을 도는 내내 작품의 관람과 이해와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를 풍성하게 해 줬다.
혼자 또는 각자 관람하는 방식에 익숙했던 나는 이렇게 함께 하는 활동의 흥미로움을 깨닫는다.(나만 그런 게 아니었길...)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이었던 저녁 시간 공연관람은 배우의 illness로 당일 취소되었다.
(당일 오후 안내 메일이 와있었는데 나는 극장 가기 2시간 전 메일을 확인했고, 홈페이지나 SNS에서는 어떠한 공지도 찾을 수 없었다.)
운명이다. 다시 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