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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공연 이야기

공연인가 공연장인가

by 올디너리페이퍼

집 근처 자연사박물관을 가려고 오픈 시간 즈음에 나와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어라, 파란 하늘이 보이는 첫날이다!

이런 금쪽같은 날 차마 실내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베를리너 마인드? >.<는 아니고 짧은 며칠 동안 해가 너무 그리웠다) 정처 없이 걸었다.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두고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까지 더해져 복닥거리는 프리드리히 거리의 두스만 서점, 베를린 디자이너 숍이 많이 있다고 들은 물락 거리, 좋아하는 음식점(아악! 굳이 굳이 찾아갔는데, 연말 며칠 동안 내부 공사한다고 안내문 붙이고 퇴근하는 장면 목격)이 있는 로젠탈러 플라츠 역까지 계속해서 걸어 다니며 구경하고, 간신히 음식점 브레이크 타임 직전에 늦은 점심식사 후 귀가했다.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안 가봤던 공연장도 관심이 있고 작품설명이 흥미로워 볼까 말까 고민했던 공연을 보기로 결심하고 해가 떨어졌지만, 집을 나섰다. 현장에서 티켓이 있으면 보고, 없으면 아쉽지만(과연 아쉬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돌아오는 것으로. 하지만 공연장 가는 길에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 작품을 남겨 기억하는 곳(East Side Gallery)이 있어, 겸사겸사로 생각해도 손해는 아니다. 흠... 겨울밤에 걷기엔 꽤나 긴 거리라는 것은 예상을 못한 게 현실이었지만.

유명한 Lord Help Me To Survive This Deadly Love by Dimitrij Vrubel/인상적인 puttets of a remote piece by Marc Engel


라디알시스템(Radialsystem)

"Careening Weave"

슈프레강 동쪽에 자리 잡은 펌프장을 2006년 공연장으로 리모델링 한 공간으로, 건물 자체가 독특하고 예쁜데다 공연장 내벽도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모든 공연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번에 관람한 공연은 무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운이 좋았다. 비록 강변 쪽 외관은 너무 어두워서 볼 수 없었지만.

그리고 우연히 엄청 좋은 자리를 겟해 댄스공연 관람.

(그렇다. 오늘 공연이 프리미어였다. 아마도 공연 첫날이라 오기로 했거나 모니터링하기로 했던 누군가가 보지 않아 발생한 노쇼 좌석인 것 같다. 발권되어 있던 티켓을 권종을 변경해 재인쇄해 주는 것 같은... 나름 근거 있는 눈치)

그랬으나, 공연은 음… 아쉽게도 특별하지 않았다.

음악가, 사운드스케이프, 안무가의 협업이라는 작품설명이 흥미로웠는데, 무용에 다소 무지한 관객입장에서 그저 각자 파트를 나눠 배열한 것처럼 보여 서로의 영역이 조화롭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 작품의 의도가 잘 구현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SNS 관객 리뷰와 평론가들의 리뷰가 너무 궁금했는데,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해당 리뷰가 검색되지 않아 궁금한 상태로 관심 중단.


그런데, 무용수 5명 중 1명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시작은 독특한 외양(중성적인 얼굴, 기이하게 긴 팔, 너무나 마른 몸)이었고,

공연이 진행될수록 손끝과 발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몸의 움직임과 라인, 강렬하지만 동시에 무심한 표정 등이 다른 무용수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에너지로 돋보였다.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시선이 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무용수만 따라다니다가 끝냈다, 심지어 중간에 물 마시는 것까지.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문득 주인공이 있는 원톱 공연이 아닌데 그런 무용수의 존재가 공연에 긍정적인 건지, 부정적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공연이 있다. 단 한 명의 출연자가 무대를 장악하고 끌어가는, 그래서 관객은 그 한 명만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데 또 완전히 반대의 공연이 있다. 전체의 앙상블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완벽해서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은 관객 나름일까, 작품 나름일까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저 나는 다음날 그 무용수의 이름이 궁금해 출연자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해서 사진과 비교해 보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했다.(그저 정보를 조금 더하자면, 검색하면서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그 사람이 바로 이 공연의 안무가였다. 안무가이면서 댄서들에게 테크닉을 가르치기도 했고, 샤샤발츠의 연습감독 또는 협업자로 일하기도 했던 사람이란다. 그(녀)가 독보적인 걸까, 다른 이들이 그렇지 않았던 걸까... 생각해 보면 여전히 궁금하다.)

Radiralsystem 외관, 그리고 커튼콜


샤우뷔네(Schaubühne)

"Yerma" by Simon Stone

Schaubühne

이번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면서 오로지 연극 두 편을 예약해 두었는데, 두 공연 모두 우연히도 샤우뷔네에서 하는 작품이었다. 연극은 최소한으로 보고자 했던 이유도 있지만, 크리스마스 휴가 시즌이라 많은 공연장들이 문을 닫은 것도 한몫했다.

(한국에서도라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서울에서도 꽤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오래도록 예술감독으로 있는 샤우뷔네는 베를린에 갈 때마다 방문할 수밖에 없는 공연장 중 하나다. 부유한(?) 지역으로 설명되는 곳 중 하나인 쿠담에 위치해 있고 확고한 매니아 관객층과 지지자를 가지고 있는 이 극장은, 새로운 공연과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올리는데 또한 그만의 스타일이 확고하여 요즘 베를린의 젊은 창작자들은 잘 찾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난 여행객이니까. 이곳은 갈 때마다 만석에, 로비는 잘 차려입은 중장년층 이상의 관객들이 빼곡하다. 그동안 여러 번의, 감동스러운 공연을 이곳에서 봤다. 물론 100%는 아니었지만.


이번에 관람하고자 한 공연은 몇 년 전 시작된 공연이고 한국에서도 영상을 통해 소개된 사이먼 스톤 연출의 YERMA. 초연 때 관람한 지인의 추천도 있었고, 영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로르카의 비극을 사이먼 스톤이 어떻게 새롭게 써서 연출했는지 너무 궁금했다. 공연은, 좋았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군더더기 없는 세트, 기본적인 극장의 환경과 자본이 뒷받침해 주는 무대 전환과 관객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음악 등. 영문자막 만으로 온전히 따라갈 수 없었지만, 현지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니 지금의 시대로 새로 쓴 작업도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인적 취향으로 잦은 전환을 위한 암전과 이때마다 사용되는 음악(무대세트를 통째로 들여오고 내가고 하기 때문에 완전한 암전과 꽤 큰 음악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예르마의 집착적인 생각과 행동에 감정이입하는 것이 어려웠다.


바로 다음날 예약해 둔 공연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갈매기"였는데 체호프의 작품을 그가 어떻게 연출했을지 너무 궁금했으나, 피아노 콘서트를 가기 위해 과.감.히. 포기했다. 실상은 관람일은 변경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실패.



피아노 살롱 크리스토포리(Piano Salon Christophori)

Shopin Ballade No.1~4, Scherzo No.1~4 by Michael Abramovich


피아노를 수리하는 창고와 같은 공간(실제 공간 구석구석에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피아노의 일부분들이 있다)에서 하우스 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한다. 몇 년 전에는 4-50석 정도의 소규모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좌석이 꽤 많아 보인다. 어림잡아 200석은 되는 듯. 로비도 따로 없고, 객석도 단차가 없이 무대만 단이 설치되어 있고, 의자도 제각각(사실 그래서 더 맘에 들었지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훌륭한, 분위기 있는 공연장이다. 입장권에는 음료가 포함되어 있어, 공연 전과 인터미션에 준비된 와인이나 맥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어 살짝 분위기만 내본다.

1부였던 발라드보다 2부였던 스케르초가 다이나믹하고, 다양해 개인적으로 음악도 더 맘에 들고 집중해서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동행한 음악 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스케르초가 연주자의 테크닉이 더 많이 필요한 작품인데, 연주 자체도 1부 공연보다 2부를 훨씬 잘 쳤고, 어떤 부분의 해석은 흥미로웠다고 한다. 어려운 곡이라고 더 많이 연습하신 듯.


거의 피아노곡을 작곡했다는 쇼팽의 곡, 성격이 다른 발라드와 스케르초, 마이크와 스피커를 타지 않은 날것의 피아노 소리.

바흐(1685-1750)나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의 곡들과는 상대적으로 많은 음을 사용한 쇼팽(1810-1849)의 곡은 피아노의 발전 역사와 함께하고(발전할수록 건반의 수가 많아졌으니),

발라드와 스케르초를 포함 상당히 많은 양식이 쇼팽이 개척한 피아노의 양식이고,

스케르초는 어원이 농담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만큼 익살스럽고 경쾌하고 보다 자유로운 곡이라고.

(피아노곡에서 쇼팽은 넘사벽이라는데, 시골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 시류에 따라 피아노를 맛보기 수준으로 배운 적이 있지만 쇼팽 곡을 치기 한~참 전에 접은 이력.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의 순서는 의도치 않게 머리에 떠올랐다. 대단한 암기식 교육)


악보에 적혀있는 것을 완벽하게 따르는 것이 클래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곡에 악상이 아예 없기도 하고(이 또한 부분적으로 피아노의 발전 역사와 함께 한다고), 연주자들이 본인의 해석과 연주방식에 따라 숨겨진 음(소리)을 찾아내기도 하고, 그게 다양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는 재미라는 것을… 동행한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다른 해석과 다른 표현 양식으로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는 희곡과 같이, 음악도 같은 맥락이라고, 내 나름대로 이해해 본다.

오래 전 음악시간에 이런 거 안배운 건가, 배웠는데 기억이 안나는 건가.

공연 전과 쉬는 시간 백발의 어르신이 피아노 조율을 하시는 모습이 또 하나의 재미이자 감동.

이번 여행 통틀어 오늘이 가장 좋은 '공연의 시간'이었음을 백번 말할 수 있다.

상상도 못한 공연장 입구 / 오늘의 피아니스트 아니고, 매공연 함께 하는 백발의 조율사 / 공연장 내부


슈부츠 퀴어 클럽(Schwuz queer club)

드랙쇼

클럽 안에 붙은 많은 포스터 중 하나

관람 전, 동행하는 친구와 드랙쇼 관람 경험 유무, 드랙쇼의 다양한 형식(?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공연이라는 점에 있어서 형식 또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해 보고 결정할 것 등에 대해 얘기했다. 퍼포머와 관람자 상호 안전한 환경에서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전에 이런 얘기들을 나눈다고 한다. 친구와의 이야기 후, 긴장감이라고 해야 할지, 예의상이라고 해야 할지, 해당 공연장과 드랙쇼 영상을 일부 찾아보기도 했다.


정말 소박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퍼포머들,

드랙쇼라는 장르와 클럽이라는 장소

가 새롭기도 했지만,

단순한 호기심보다 각 퍼포머의 매력과 그에 대한 호감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아마도 다양한 방문자들과 그들 각자가 즐기는 편안한 클럽의 분위기 또한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관람 예정이었던 다른 공연들을 보지 못해, 결국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공연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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