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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날의 안녕 May 06. 2023

남편이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 의해 유기되었다.

남편이 집을 나간 지 두 달이 지났다.

현관 앞에는 수신자가 부재중인 관계로 등기를 발송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나에게 올 등기가 뭘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내가 아는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그 순간까지는 남편을 믿고 싶었다.


다음날, 등기가 온다는 시간에 맞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발신인은 법원, 남편이 변호사를 통해 접수한 이혼소장이라는 것이 내게 왔다.


변호사가 작성한 글에서 나는 참 무능한 인간으로 묘사되었다.

남편은 결혼의 피해자로 둔갑해 있었고 남편이 늘 자랑스러워하는 단어로 남편은 빛이 나게 표현되어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숨이 턱 막혔다.

재산분할로 나에게 약 2억 원이 넘는 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남편이 집을 나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합의점을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쉽게 이혼이라는 것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소장을 받고 이혼에 대한 정보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혼 방법에 대한 설명에서는 대부분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소송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간의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에 가급적 두 사람이 합의를 하고 이혼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돈을 잘 버는 남편은 돈 자랑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나와는 대화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

로펌을 통해 소장을 보내왔다.


내가 변호사를 통해 대응할 돈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내 불행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2019년 봄, 희귀성 난치병인 섬유근육통을 처음 진단받았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

이름이 너무 낯설어 허둥지둥 메모장에 적어서 외우게 된 병 이름이다.

섬유근육통은 전체 인구의 약 5% 정도가 앓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섬유근육통 환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왜.. 하필 내가 그 5%에 들어간 건지...


섬유근육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죽을 만큼 아프지만 죽지는 않는 병

그래서 환자 스스로가 목숨을 끊는 병


처음 내가 진단을 받았던 당시에는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운영하는 회사일도 예전과 동일하게 했었고 주말이면 하루 9시간씩 강의를 했었다.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었지만 나는 이런 병 정도는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때 내 몸을 덜 혹사시켰더라면, 지금처럼 내가 아프지 않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지만

다 소용없는 생각이다.


내가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2021년도 여름 즈음부터였다.

피로도가 점점 높아져 체력적으로 힘든 일을 하기 어려워졌었고 어느 순간에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집에 돌아와 쓰러져서 앓아누워야만 했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운동도 해봤지만 병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양 날개뼈를 칼로 베어낼 것 같은 통증으로 밤새 잠을 못 자고 

팔을 들기 힘들어 혼자서 옷을 갈아입는 것도 쉽지 않았다.


통증은 어느 순간 내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모든 곳이 다 아팠다.

어깨에서 팔까지, 허벅지에서 다리까지를 절단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 못 할 고통이 계속 이어졌다.

몸통만 남겨두고 팔, 다리를 절단하면 좀 더 덜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내가 먹는 약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개수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은 계속 늘어나기 시작했고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으로도 통증 억제가 되지 않을 때

비상으로 먹는 다른 마약성 진통제까지 용량이 무한대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약의 용량이 늘어나면서 간 수치가 올라가기도 하고 

약물 부작용으로 갑자기 15kg의 살이 찌기도 했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통증이 아니었다.

아픈 사람에 대한 공감이나 존중이 전혀 없는 남편의 태도였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난 전업주부가 아니었다.

저녁에 강의가 있어서 나가게 될 때에는 남편이 저녁에 먹을 음식을 해두고 나갈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남편과 나, 둘 다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을 해도 청소는 늘 나의 몫이고 남편은 피곤하다며 누워서 유튜브를 보기만 했었다.


남편의 그런 태도로 인해 결혼 초부터 잦은 다툼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사람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집안일은 그냥 혼자서 했다.


내가 건강할 때는 아무렇지 않던 일들이 내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자 

집은 쓰레기 장이 되어 버렸다.


통증이 심해지고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세탁기를 돌리는 것조차, 혼자서 밥을 차려먹는 것도 

나에게는 큰 마음을 먹고 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남편은 세탁기 한 번을 돌리지도 않고 나의 밥을 차려주기는 커녕 '왜 밥을 시간에 맞춰 먹지 않느냐며 이러니까 아픈 거라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잔소리까지 더 했다.


아프기 전에는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했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는 통증으로 약에 취해 하루종일 잠을 잘 때가 많았다.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나도 너무 싫었는데 거기에 더해 남편은 나에게 폐인 혹은 은둔형 외톨이 아니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투병을 하고 있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병원에 동행한 적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나를 집안에 없는 사람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싸운 것도 아닌데 대화는 단절되기 시작했다.


나는 투병기간 동안 부부로써 존중은커녕 그 어떤 케어도 받지 못했다.

투명인간이 되어 홀로 투병을 하며 집안에 갇힌 채,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의 시간을 하루하루 축내고 있었다.


아프다고 공주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난 그저 내 아픔에 대해 공감을 받고 싶을 뿐이었다.




남편이 나와는 더 이상 못 살겠다며 이혼을 요구하며 한 말을 정말 충격적이었다.

"나는 너를 어떻게 간호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간호라는 걸 해본 적도 없고 그런 걸 배운 적도 없어서 못해!"


남편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아파서 누워만 있는 이 여자를 평생 책임질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끔찍했었나 보다.


난 왜 결혼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토록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 긴 시간 동안 왜 몰랐던 걸까...


남편은 스스로가 '그래 나 쓰레기다... 다 내 잘못이다...'라는 말을 

여러 번 외치면서 화를 냈다.

그리고 작은 쇼핑백에 태블릿과 충전기만 챙겨서 집을 나갔다.


간호를 배운 적이 없어서 아내의 병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한 남편...


내 남편의 직업은 의사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의대 교수이다.


모르는 사람이 쓰러져도 도와야 하는 의료인이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아내와 함께 살기 싫다고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남편이 집을 떠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생활비를 끊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변론서에 다음과 같은 글로 나를 표현했다.


신청인은 부부간의 동거, 부양, 협조 의무를 저버리고 일방적으로 집을 나가 

피신청인을 유기했습니다.


나는 남편에 의해 유기되었다.





제가 브런치에 작성한 글은 소설이나 허구가 아닌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내용을 모두 사실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21세기에도 이런 여자가 있구나 생각이 들어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모두 제가 경험한 일들입니다.


변호사에게 전달한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거짓이나 과장 또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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