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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날의 안녕 May 06. 2023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전생이든 현생이든 난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던 걸까?

내가 극한 통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뒤늦게 알게 되셨다.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시고 있는 엄마의 일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작년 여름에서야 내가 거의 누워서만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알게 되었다.


늘 바쁘게만 살고 있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집에만 갇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엄마는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병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했다.

암에 걸려도 사는 사람이 많은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병이 어딨냐며 난치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다.

나는 이미 통증으로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쳐서 자포자기하고 누워만 있었다. 

마치 자발적 식물인간이라도 되려는 듯이... 


병의 원인도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고 치료제도 없다는 병에 걸려 누워만 있는 나를 본 엄마는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려고 고생만 하다가 이제 좀 살만하니까 세상 몹쓸 병에 걸린 딸이 너무 불쌍해 

내 손을 붙잡고 통곡을 했다.


정말 나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부모 속을 어지간히 썩이며 살고 있다.


엄마는 내게 전국에 있는 병원을 모두 찾아다녀서라도 

내 병을 꼭 고치게 만들 거라며 누워있는 내 손을 잡고 다짐을 했다.


그 뒤로 엄마는 경동시장이니 각종 약재상들을 찾아다니며

기력회복이나 통증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매일 같이 구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이미 난 한의원도 다녀서 침도 맞고 한약도 먹어봤지만 차도는 없었다.

오히려 이미 독한 병원약을 먹고 있었기에 한약까지 같이 먹으면 거의 모든 것을 토해 버렸다.


엄마가 가져온 각종 약재들과 거금을 들여 구입한 흑염소까지

모두 소용없었다.




다른 병원에 가보자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난 다른 병원을 예약했다.

나는 명의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유명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환우 카페에서 평가도 좋았고 유명한 프로그램에 나온 권위자이니 뭔가 다른 치료법을 

나에게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내가 치료받은 그동안의 기록들을 가지고 갔다.

나의 이전 병원 기록을 보던 의사가 나에게 처음 말을 건넸다.


"왜 오셨어요?"


왜 오셨냐 하니... 너무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4년째 진단을 받고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견디기가 어려워서 왔어요."


나의 대답에 의사는 한숨을 쉬며 내 자료를 보고 있었다.

작년 여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 사람의 한숨, 표정 모든 것이 그대로 기억이 난다.


의사는 말을 시작했다.

"지금 드시는 약으로 통증이 해결되지 않나요? 지금 보면 통증을 억제하기 위한 모든 약은 다 드시고 있어요. 지금 이 약들로 통증이 해결이 안 된다면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는 환자들 많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병은 고치기 힘들어요. 어느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냥 다니던 병원 다니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머리를 한대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정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대답... 


의사는 이어서 다시 말을 했다.

"이 병에 대해서 먼저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몸이 많이 아파도 산책 정도의 운동은 꼭 해야 합니다. 지금은 40대이니 근육이 있어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지만,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 50대가 되면 근육이 모두 빠져나가 휠체어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다리 근육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내가 그동안 다니던 병원에서는 막연한 희망을 줬었다. 

괜찮아질까요?라고 물으면 좋아질 거라는 희망고문만 계속해왔는데...

이렇게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얼이 빠진 상태로 주차장으로 걸었다.

병원에서 꾹 참았던 눈물이 차 안에 들어오자마자 폭발을 해버렸다.

이제 고작 마흔넷인데... 앞으로 계속 이렇게 인생을 살라고?

차 안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감정을 터뜨리기 좋은 곳이다.

난 정말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억눌린 서러움이 폭발하고 그동안 참았던 감정을 모두 쏟아냈다.


그리고 집으로 갔다.




내가 방문한 병원 근처는 부모님이 사시는 본가가 있다.

진료를 마치고 본가에 들른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를 기다릴 엄마를 위해 집에 들를 생각이었다.

이렇게 안 좋은 소식을 들을 것이라 예상을 전혀 못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얼굴을 마주하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연락도 안 드리고 난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엄마도 내가 집에 들를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한참을 울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우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수는 없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목소리를 정리하고 정신을 차리고 말씀을 드렸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또박또박 말하고 싶어도 내 목소리는 자꾸만 흔들렸다.

급기야 서러움이 폭발해 울고 또 울었다.




내 병을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에게는 다른 병원을 간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와 통화를 마친 엄마는 그래도 사위가 의사니까 딸을 어떻게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나 보다

남편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내가 읽고 또 읽어 본 네이버 지식백과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말하며

"원래 그 병은 완치가 안된다는 거 몰랐던 것도 아니고 세상 끝난 것처럼 울고 난리야!" 

남편의 말이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잘 정도인데,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참고 살아야겠다 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20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일을 해오면서 그동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성과도 얻으면서 

이제야 세상이 나를 알아주나 보다 싶기도 하며 정말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이제 그 모든 일을 접고 환자로써 남은 일생을 병과 싸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내게는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이때는 남편이 나에게 이혼을 요구하기 두 달 전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건강이 안 좋으니 산골지역에 가서 요양을 하라고 했다.

그냥 들어보면 참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녀야 하고 혼자서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일상생활도 스스로 하기 힘들다. 

그런데 자신이 케어를 할 테니 함께 자연 속에 살자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를 데리고 

나 혼자 시골로 내려가서 살라니...

어이가 없었다. 


남편의 제안은 그저 징징거리는 내가 꼴 보기 싫으니,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말로 들렸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나는 두 달 뒤에 알게 되었다.





제가 브런치에 작성한 글은 소설이나 허구가 아닌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내용을 모두 사실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21세기에도 이런 여자가 있구나 생각이 들어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모두 제가 경험한 일들입니다.


변호사에게 전달한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거짓이나 과장 또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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