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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Mar 26. 2021

수술실 앞에서

엄마가 안질환 수술을 받았다. 오랜 기간 안과를 다니셨다. 수술 당일 오전 일찍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출발했다.


주차장은 몇 바퀴를 돌았고, 병원은 사람의 물결 가득했다. 담당 인턴을 만나 수술 순번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벽면에 붙 A4지 가득한 당일 명단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미 오전에 수술받은 사람들에게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엄마와 함께 수술 예정인 사람들과 설명을 들었다. 엄마는 양안을 모두 수술 받았다.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큰 수술은 아닐지라도 마음이 흔들흔들했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4층 로비 한구석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두런두런 살펴봤다. 의료가운을 입은 사람들,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사람들, 환자를 부축하고 움직이는 사람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고1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여의사가 호흡이 너무 좋지 않아 기도삽관으로 산소마스크를 했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병실 문 앞에서 이야기했다. 복도는 컴컴했다. 조명을 낮춘 것은 병실 안에 있는 아픈 환자에게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함으로 이해했다. 아버지는 며칠 후 돌아가셨다.

     

남은 가족들은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엄마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를 넘어갔다. 언니들과 나도 아빠가 떠나가던 해의 엄마 나이를 넘어갔다. 엄마가 혼자되셨을 때는 38살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자녀가 4명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세상 풍파를 겪으며 수용과 이해의 색이 진해지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니 고집을 부릴 이유가 크게 없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각자의 삶 속에서 본인이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에 대해 굳이 ‘아니, 근데’와 같은 부사를 쓰며 상대방의 의견을 꺾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깨달음과 이해가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 하여 너의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우기는 것도 의미가 없다.      


엄마가 수술을 마치고 통원수술센터로 이동했다는 병원 문자를 받고 엄마를 모시러 다시 수술실 앞에 서 있었다. 환자용 엘리베이터 앞에 몇 겹으로 대기하며 이동침대에 누워 병동으로 이동하는 환자들을 보며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납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괜찮다고, 엄마는 괜찮다.' 말했다. 어색했지만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마음 38살에 멈춰있다 생각했던 시간들이 꽤 오래 있었다. 엄마는 지금 70살이다.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사람 없는 곳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봄을 맞으러 가야겠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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