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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Feb 08. 2021

입시생과 함께하는 하루

정말 희한한 일이다. 쉬는 기간이 생기면 무언가 일이 생긴다. 가장 먼저는 몸이 어찌 알았는지 병원 진료다. 이번에도 밥을 먹다 20년 넘게 사용한 금니가 술러덩 빠지고 반려견의 다리마저 급작스러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원래 생겨야 할 일이 쉴 때 생겨 다행이라는 마음까지 생긴다.      


금번 쉼의 큰 이벤트는 입시생과 함께다. 다섯 명의 조카 중 한 명이 중국 대학 입시 막바지다. 중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다 코로나로 입국한 조카는 한국에서 1년 넘게 줌으로 수업을 받으며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가장 집중력 좋아지는 공간으로  나의 거주지를 택했다. 지내는 공간은 종일 고요하고 조용하다. 공부하고 책을 읽기에 최적이다.      

입시생과의 하루는 기상과 동시에 방문을 닫아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루 15시간 이상 공부한다. 코로나로 인한 수험생의 필수품은 노트북, 아이패드, 핸드폰이다. 이미 줌으로 수업을 진행한 지 1년이 넘었고, 밤낮 없는 입시상담 역시 그렇다. 핸드폰에서 손을 뗄 수 없다. 학급 인원이 모두 들어간 위챗에 수시로 공지 및 입시정보가 올라온다. 밤이건 새벽이건 수시로 알림이 뜬다. 대학마다 다른 입시전형으로 어떤 대학은 영상으로 자기소개를 만들어 발송해야 한다.       


한 반에 모여 함께 자율학습을 하거나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닌 종일 줌을 틀어놓고 이어폰을 낀 상태에서 아이들은 모니터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공부한다. 더 철저한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다면 수험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      


입시생 관리는 영양가 높고 맛있는 식사를 고민하지만 실력이 없으니 정성만 넣어준다. 중간중간 믹스와 내려먹는 커피를 챙겨주며 일정한 카페인 강도를 유지해준다. 간식을 챙겨준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하게 지낸다. 그냥 그 정도다. 요 정도만 해도 괜찮을지 고민되지만 최선은 거기까지다.      


한참 전 나의 입시 생활이 생각났다. 교사가 되고 싶어 교대에 원서를 넣었던 기억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너무 외로웠던 기억으로 모서리 구석에 서 있는 학생에게 관심을 보이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교대 입시에 실패 후 재수를 하고 현재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당시 인생의 흐름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입시생에게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 이후 어떤 삶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니 최선만 다 하면 된다는 이야기는 꼰대나 하는 이야기다. 입시생의 입장에서는 오금이 저린 시기다. 재수까지 경험한 나로서는 성적이 안 나왔을 때 정말 생의 마지막 같이 느껴졌다. 


재수를 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음' 순서는 끝났다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시 입시철이 되어 알지도 못했던 과에 성적을 끼워 맞춰 들어갔고 현재의 직업을 가지게 된 걸 생각해보니 정말 운명이 있는 건가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운명보다는 간절히 원하고 생각하며 행동하면 본인도 모르게 그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 근래 그녀가 주변 아이들이 하나 둘 대학에 붙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줄 때마다 목소리에는 부러움과 불안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녀가 생에 큰 첫 관문을 잘 통과하기 바란다. 지금은 와 닿지 않겠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면 더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서의 다음 과정이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조카의 첫걸음이 잘 내딛을 수 있도록 가만가만 잘 도와주고 싶다. 때가 잘 맞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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