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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Feb 18. 2021

아랫집 아저씨가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19시 30분에 벨이 울렸다. 요즘 한창 빠져있는 우주 영상을 보던 때였다. 살면서 벨은 공식적으로 가스점검이나 택배 등 정해진 일이 아니고서는 울리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조카도 학교가 개학되어 혼자 덩그러니 있던 차였다. 문이 잠겨있다 하더라도 일단 무서웠다. 


"누구세요?"  ‘.............’  ‘딩동 딩동’ 

"누구세요?"  ‘.............’  ‘딩동 딩동’ 


"누구세요?" 

"아랫집에서 올라왔는데요."     


아랫집 아저씨 얼굴도 모르는데 정말 아랫집 아저씨인지, 아니면 나쁜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저씨, 왜 아랫집에서 올라오셨다고 빨리 대답을 안 해주셨나요?”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잠시만요. 마스크 하고 나갈게요.” 

얼마 전에 설치한 안전장치가 정말 든든한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다름 아니라 화장실 환기구에서 물이 계속 떨어져서요. 누수 점검을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때는 좀 되었는데 동절기가 되어 심해졌다. 윗집인 너의 집 누수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쓰읍... 정말 난감했다. 그렇다. 정말로 난감했다. 


‘도대체 왜 물은 떨어지는 것인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저씨가 다녀간 후 누구에게 어떤 점검을 받아야 하는지, 나의 머리는 이미 누수의 세계에 풍덩 빠져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누수 점검업체를 찾아야 하나... 그렇게 찾으면 많이 비싸겠지? 아니 그것보다도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몇 해 전 추위에 옥상 물탱크가 터져 입주민들이 1/N로 수리를 했다. 이웃에게 카톡을 보내 그때 수리해준 사장님 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일전에 화장실을 수리했던 설비업체 사장님께도 전화를 했다. 설비업체 사장님은 너무 간단하게 아마 겨울이 지나가면 물이 안 떨어질 거라고 했다. ‘웽? 이건 어떤 의미지?’       

              

정말 누수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도 안내받았다. 일단 계량기를 5분간 관찰하고 다시 전화를 하면 이후 진행과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쭈그리고 앉아 5분간 타이머를 맞춰 놓고 핸드폰 손전등을 비춰가며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열심히 쳐다봤다. 믿을 것은 계량기밖에 없는 것처럼. 그런데 계량기는 돌아가지 않았다.   

   

두 번째 통화에서 “계량기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마도 옥상으로 연결된 환풍기가 동절기에 언 상태에서 따뜻한 온기가 올라가 얼음이 녹아 그런 것이다. 그리 알아라.” 라며 시원하게 마무리되었다. 설비 사장님은 진정 해결사였다. 정말 두 번의 전화통화로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다. 


살면서 한 번도 몰랐던 현상들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 아닌 아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불안과 안심이 30분 이내로 왔다 갔다 했다. 동시에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일상 전문가들을 알아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구나 생각했다.           

     

원론적으로 누수가 무엇인지, 해결방법은 어떤 것인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바로 나온다. 그러나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일상의 일들이 나의 일이 되고 보니 세상 그 어떤 일보다 해결하기 힘든 일로 다가온다. 


개인이 아닌 업무로서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고 물건을 구매할 때도 2개~3개의 비교견적을 받아가며 꼼꼼히 처리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집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 하나조차 해결을 못할 때가 더 많다.  


직종, 업계를 막론하고 계약직의 비율은 솟구치듯 높아져만 간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더욱더 가중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직장인보다는 개인으로서의 삶의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상에서의 작은 일조차 버벅거리는 나를 보면 정말 한심해진다.              

뜬금없지만 2020년 7월 30일 발사한 퍼시비어런스 로버가 칠 개월의 비행을 마치고 2021년 2월 19일 한국시간 새벽 4시 15분에 화성에 도착한다. NASA에서 착륙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를 해준다고 한다. 


우주에 관한 정보를 자주 보는 이유는 '잘 모름'에서 시작된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이다. 반면 일상생활은 반대로 잘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누수 발견의 시작은 계량기 확인부터'라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아랫집 아저씨의 방문을 통해 정말 일상생활에서는 초보임을 느낀다. 많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더 성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에 필요한 정보를 열심히 모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설비 사장님 전화번호를 잘 저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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